내가 이상을 안 것은 그가 아직 다료 '제비'를 경영하고 있을 때였다.... 누구한테선가 그가 시인이란 말을 들었다.
"그러나 무슨 소린지 한마디 알 수 없지....."
나는 그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시가 보고 싶었다. 이상은 방으로 들어가 건축 잡지를 두어 권 들고 나와 몇 수의 시를 내게 보여 주었다. 나는 쉬르리얼리즘에 흥미를 갖고 있지 않았으나 그의 '운동運動' 일 편은 그 자리에서 구미가 당겼다.
지금 그 첫 두 머리 한 토막이 기억에 남어 있을 뿐이나 그것은
일층 우에 이층 우에 삼층 우에 옥상정원에....
로 시작되는 시였다. (박태원, '이상의 편모', 『조광』, 1937.6.)
▲ 미쓰코시 경성지점 옥상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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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정원. 원후[원숭이]를흉내내이고있는마드무아젤 (이상, '건축무한육면각체', 19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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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로 어디로 들입다 쏘다녔는지 하나도 모른다. 다만 몇 시간 후에 내가 미쓰꼬시 옥상에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거의 대낮이었다. 나는 거기 아무 데나 주저앉아서 내 자라온 스물 여섯 해를 회고하여 보았다. 몰롱한 기억 속에서는 이렇다는 아무 제목도 불그러져 나오지 않았다. 나는 또 내 자신에게 물어 보았다. 너는 인생에 무슨 욕심이 있느냐고. 그러나 있다고도 없다고도 그런 대답은 하기가 싫었다. 나는 거의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히기조차도 어려웠다. 허리를 굽혀서 나는 그저 금붕어나 들여다 보고 있었다. 금붕어는 참 잘들도 생겼다. 작은 놈은 작은 놈대로 큰 놈은 큰 놈대로 다 ― 싱싱하니 보기 좋았다. 내리비치는 오월 햇살에 금붕어들은 그릇 바탕에 그림자를 내려뜨렸다. 지느러미는 하늘하늘 손수건을 흔드는 흉내를 낸다. 나는 이 지느러미 수효를 헤어 보기도 하면서 굽힌 허리를 좀처럼 펴지 않았다. 등허리가 따뜻하다. 나는 또 오탁의 거리를 내려다 보았다. 거기서는 피곤한 생활이 똑 금붕어 지느러미처럼 흐늑흐늑 허우적거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적근적한 줄에 엉켜서 헤어나지들을 못한다. 나는 피로와 공복 때문에 무너져 들어가는 몸뚱이를 끌고 그 오탁의 거리 속으로 섞여 들어가지 않는 수도 없다 생각하였다." (이상, '날개', 1936)
▲ 영화 모던보이(2008)에 묘사된 미쓰코시 경성지점 옥상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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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리고 보니까 우리 조선의 중심인 서울, 또 그 복판이라할 종로 바닥에 큰집이라고는 코큰 사람이 선편을 죄다 한 셈인가. 골부란의 전기회사, 그 다음은 와나메커가 돈주어 지은 청년회관(YMCA), 그리고는 이 예수교서회. 이로구야 조선사람의 얼골이 뜨뜻하지 않을 수가 있겠나. 동아백화점의 건축물[위 사진에서 4층 건물. 문을 연지 6개월만에 화신백화점(왼쪽)과 합병되어 화신백화점 동관으로 부르게 됨]이 그러니까, 단연 종로네거리의 자랑거리가 아니되면 안된다. 건평은 적을망정 사층 양이요, 엘레베터에 스팀히팅에 식당과 옥상정원까지 백화점 모형모양으로 잔잔하게 차려 놓은 것이 누가 무어라 하더라도 조선인을 위해 만장의 기염을 토하는것이겠지" ('종로야화',『동광』, 1932.6.)
▲ 화신상회 동관 (구동아백화점 1932년 1월 완공)의 옥상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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