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기가 산해진에를 와보니 문이 첩첩이 닫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럴 염려가 없지 않았지마는, 병화마저 잡혀간 것 같아서 슬며시 낙심이 되었다. 이 밤 안으로 자기에게도 형사가 달려들지 모르겠다는 겁도 난다. 하는 수 없이 돌쳐서려니까, 마침 필순의 모친이 컴컴한 데서 걸어온다.
"누구세요? 밤에 어떻게 나오셨에요?"
하고 반색을 하며 소리를 친다.
"아, 따님이 들어갔대죠? 얼마나 애가 씌시겠나요."
"큰일났에요. 지금 김 선생두 데려갔는데, 집이 비니까 하는 수 없이 날더러
경기도청 앞에서 만나자고 병원으로 전화가 왔기에 가보니 열쇠와 돈을 맡기구 그만 끌려들어가시겠죠. 이거 어떻게 되려는 셈인지 사는 것 같지가 않구..."
고생에 찌들어 퍽 암팡지게 생긴 이 부인도 울상이다. (염상섭, 『삼대』, 1931)
**
다방에 들어오면, 여학생이나 같이 조달수를 즐기면서도 그래도 벗은 조선문학 건설에 가장 열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그가 하루에 두 차례씩, 종로서와, 도청과, 또 체신국엘 들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은 한 개의 비참한 현실이었을지도 모른다.
마땅히 시를 초(草)하여야만 할 그의 만년필을 가져, 그는 매일같이 살인 강도와 방화 범인의 기사를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 이렇게 제 자신의 시간을 가지면, 그는 억압당하였던 그의 문학에 대한 열정을 쏟아 놓는다.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중에서)
▲ 경기도청은 1910년 이후 1967년까지 경기도 소유였다가 이후 건설부, 치안본부, 서울시 경찰국 별관 등으로 쓰였다. 1990년 4월에 철거되어 현재 광화문 열린마당(겸 맞은편 정부종합청사 주차장)이 되었다.
'근대문학과 경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상李箱 - 운동 (0) | 2019.03.19 |
---|---|
[이상李箱 - 환시기幻視記] 뒤얽힌 운명들 (0) | 2019.03.19 |
[이태준 - 무서록] 성城 (0) | 2019.03.18 |
[이태준 - 복덕방] 경성의 개발붐과 문화주택 (0) | 2019.03.14 |
[채만식 - 레디메이드 인생] 광화문통~삼청동길 (0) | 2019.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