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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내 정신 좀 보아. 벗은 갑자기 소리치고 자기가 이 시각에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음을 말하고, 그리고 이제 구보가 혼자서 외로울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전찻길을 횡단하여 저편 포도 위를 사람 틈에 사라져 버리는 벗의 뒷모양을 바라보며...(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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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치제과 경성지점(왼쪽 건물)

 "종일 집이 계시다 마악 나가셨죠. 여자한테서 전화가 와서요. 여자한테서 전화가 왔에요." 

구보는 밤거리를 혼자 걸으며, 고개를 모로 흔들었다. 집에서 부리는 아이에게까지 업신여김을 받아 가며, 하웅은 이 밤에 여자를 또 만나러 갔다……

문득, 이틀 전에, 그 극장 가까운 찻집에서 천박한 젊은것들이 하던 이야기를 생각해 내고, '대체 하웅 같은 사나이가 그 총명하고 또 분별 있는 사나이가, 그렇게도 쉽사리 여자의 유흑에 빠질 수 있었나……’ 

몇 번을 되풀이 생각하여도 모를 일이었다. 명치제과明治製菓 아래층 그중 구석진 박스에서, 여자가 외운 한편의 시.그것이, 이를테면, 하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용'의 「가모가와鴨川」를 읊은 여자의 고운 목소리. 바로 옆 박스에 앉아, 하웅은 저를 배반한 계집 생각을 그치고 귀를 기울였었다. 그 날 밤 하웅은 분명히 감상적이었다. 잉크가 번져서 펜이 잘 나가지 않는 냅킨 위에다 자기를 배반한 계집의 얼굴을 그는 그리고 있었다.

[..]

경성지방법원 앞까지 와서, 본래 같으면 이화학당梨花學堂 앞을 지나 서대문으로 나가는 길로 들어섰을 것을, 그러나 오늘 밤은 바로 조금 전의 행동화할 수 없었던 그 흥미 있는 감정도 도와, 그 둘은 기약지 않고 좀더 은근한 방송국[정동 경성방송국] 넘어가는 길을 택하려 들었다. 

"난 이 길이 좋아. 여기하구, 원남동 신작로하구" 

갑자기 여자는 꿈꾸는 듯이 또 자못 감격을 금할 수 없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러한 거리는, 딴은, 남녀가, 특히 밤늦게 산책하기에 좋은 곳들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는 일찍이 이 여자와 그런 곳을 같이 걸어 본 일이 없었다. 

'이 여자는 정말 부랑소녀나 아닐까?' 

▲ 경성방송국(오른쪽 위)

남자에게 대한 언동이 지나치게 대담함을 볼 때마다, 그가 이 여자에게 느끼지 않으면 안 되는 의혹을 그는 지금 또 느꼈다. 그는 새삼스러이 여자의 눈을 본다. 그러나 여자의 눈은 그렇게도 맑고 또 깨끗하였다. (박태원, '애욕',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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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 넘어가는 길 성벽에 가 기대선 순영의 얼굴은 월광 속에 잇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항라적삼 성긴 구멍으로 순영의 소맥 빛 호흡이 드나드는 것을 나는 내 가장 인색한 원근법에 의하여서도 썩 가쁘게 느꼈다. 어떻게 하면 가장 민첩하게 그러면서도 가장 자연스럽게 순영의 입술을 건드리나-나는 약 삼분 가량의 지도를 설계하였다.

[...]

송 군과 결혼하지 응? 그야말루 송 군은 지금 절벽에 매달린 사람이오-송 군이 가진 양심, 그와 배치되는 현실의 박해로 말미암은 갈등, 자살하고 싶은 고민을 누가 알아주나- 

송 선생님이 불현듯이 만나 뵙구 싶군요. 

십분 후 나와 순영이 송 군 방 미닫이를 열었을 때 자살하고 싶은 송 군의 고민은 사실화하여 우리들 눈앞에 놓여져 있었다. 

[...]

▲ 경성의학전학교부속병원(의전병원)

순영은 쩡쩡 천장이 울리도록 코를 골며 인사불성된 송군 위에 엎뎌 입술이 파르스레하다. 어쨌든 나는 코고는 '사체'를 업어 내려 자동차에 실었다. 그리고 단숨에 의전병원으로 달렸다..... 독약은 위에서 아직 얼마밖에 흡수되지 않았다.

[...]

오후 두시쯤 해서야 겨우 병실로 돌아와 보니 두 사람은 손을 맞붙들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는 당장에 눈에서 불이 번쩍 나면서, 망신-아니 나는 대체 지금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냐. 순간 나 자신이 한없이 미워졌다. 얼마든지 나 자신에 매질하고 싶었고 침 배앝으며 조소하여 주고 싶었다.

[...]

결혼한 지 한 달쯤 해서. 암만봐두 여편네 얼굴이 왼쪽으로 좀 삐뚤어진 거 같단 말야 싯? 처녀가 아닌 대신에 고리키 전집을 한 권도 빼놓지 않고 독파했다는 처녀 이상의 보배가 송 군을 동하게 하였고 지금 송 군의 은근한 자랑거리리라. 결혼하였으니 자연 송 군의 서가와 부인 순영 씨(이순영이라는 이름자 밑에다 씨氏 자를 붙이지 않으면 안 되는 지금 내 가엾은 처지가 말하자면 이 소설을 쓰는 동기지.)의 서가가 합병 할 밖에- 합병을 하고 보니 송 군의 최근에 받은 고리키 전집과 순영 씨의 고색창연한 고리키 전집이 얼렸다. 결혼한 지 한달 쯤 해서 송 군은 드디어 자기가 받은 신판 고리키 전집 한 질을 내다 팔았다. (이상, '환시기',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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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5년 정인택('송 군', ③)과 권순옥('순영', ④)의 결혼식에 참석한 이상李箱('하웅', ①)과 박태원('구보', ②). 뒷줄 맨왼쪽은 정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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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 작가 박태원의 의붓딸이 그의 북한 내 활동을 기록한 글이 <문학사상> 8월호에 전재되었다. 박태원의 친구였던 정인택의 딸 정태은씨가 북한의 문학 계간지 <통일문학> 제44호와 45호(각각 2000년 봄·여름호)에 기고한 <나의 아버지 박태원>이 그것이다. 정인택이 가족과 함께 월북한 직후 사망하자 박태원은 정인택의 부인 권영희[권순옥]와 재혼하게 되고 정태은씨는 의붓아버지가 된 박태원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이 글에서 정씨는 박태원이 백내장으로 인한 실명과 뇌출혈의 고통 속에서 <계명산천은 밝아오느냐> 1·2부와 <갑오농민전쟁> 1~3부를 집필하고 1986년 숨지기까지를 소상히 전하고 있다. (한겨레 2004.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