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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듣는 구보씨

category 친절한 구보씨 2019. 2. 7. 15:29


구보는 카운터 가까이 자리를 잡고 앉아, 마침 자기가 사랑하는 스키퍼의 '아이 아이 아이'를 들려 주는 이 다방에 애정을 갖는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 아, 난 못 해, 이 사람아, 하고 디덜러스씨가 수줍은 듯, 마음내키지 않는 듯, 말했다.

완강하게,

- 해봐요, 젠장! 하고 벤 돌라드가 그르렁거렸다. 조금이라도 꺼내 봐요.

- '마파리(사랑이 내게 나타났으니)'를, 사이먼, 하고 카울리 신부가 말했다.

스테이지 아래로 긴 양팔을 뻗고, 정중하게, 괴로운 듯 허리를 펴면서, 그는 몇 걸음 성큼성큼 걸어내려갔다. 목이 쉰 듯 인후골이 조용히 쉰 소리를 냈다. 부드럽게 그는 벽에 걸린 먼지가 내려앉은 한 폭의 바다 풍경화 : <마지막 이별>을 향해 노래했다. 뻗어 나온 곶, 한 척의 배, 파도 위의 돛, 잘 가거라. 귀여운 소녀여, 그녀의 베일이 곶 위의 바람에 물결치고 바람이 그녀를 휘감아,

카울리가 노래를 불렀다.

- '마파리 투타모르(사랑이 내게 나타났으니) :

일 미오 스구아르도 린콘트르(나를 온통 사로잡았다네)……'

풍경화 속의 그녀는 손을 흔들었다. 카울리의 노래를 듣지도 않고, 그녀의 베일을, 떠나가는 사람을 향해,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바람을 향해, 사랑, 달리는 범선, 되돌아가는 이를 향해.

- 시작해, 사이먼.

- 아, 확실히, 내 한창 때도 지나버렸어, 벤…… 글쎄……

디덜러스씨는 파이프를 피아노 소리굽쇠 옆에 놓았다. 그리고 자리에 앉으면서, 순종하는 건반에 손을 가져갔다.

- 아니, 사이먼, 하고 카울리 신부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원곡 대로 연주해요. B 플랫이야.

건반이, 순종하듯, 한층 높이 솟으며, 이야기하며, 주춤거리며, 자백하며, 섞갈렸다.

스테이지 위로 카울리 신부가 성큼성큼 걸어올라갔다.

- 자, 사이먼, 내가 자네 반주를 하지, 하고 그는 말했다. 일어나요.

[...]



- "내가 저 사랑스러운 모습을  처음 봤을 때……"

리치가 몸을 돌이켰다.

- 사이 디덜러스의 목소리다, 하고 그는 말했다.

머리를 곧게 세우고, 뺨에 홍조를 띠며, 모두들 그 정다운 곡조의 흐름이 피부 사지 인간의 마음 영혼 척추 위를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 귀를 기울였다. [...]

- "…… 슬픔이 내게서 떠나가듯 했다네."

[...]

- "희망으로 넘치고 모두들 기뻐하니……"

[...]

- "그러나, 아아, 그것은 부질없는 꿈이었다오……"

[...]

- "……희망의 빛은……"

[...]

- "내 눈을 매혹했다……"

[...]

- "마르타! 아, 마르타여!"

[...]

- "돌아오오라, 너 사라진 자여! 돌아오오라, 너 사랑하는 이여!"

[...]

- "돌아오라……!"

[...]

- "내게로!"

[...]

야, 참 잘 불렀다. 모두들 손뼉을 친다. [...]

- 브라보! 짝짝, 잘했소. 사이먼. 짝짝짝. 앙코르! 짝짝짝. 종처럼 낭랑한 소리. 브라보, 사이먼! 짝짝짝. 앙코르, 손뼉을 쳤다. 말했다, 부르짖었다, 모두들 손뼉을 쳤다.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즈』, 김종건 옮김, 범우사, 1988, 2권 229-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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