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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1)]의료기기 의수족義手足

category 친절한 구보씨 2019. 2. 7. 16:24

▲ 영화 「서부전선이상없다」의 한 장면

"어쨌든 요즘은 매우 훌륭한 의수와 의족이 있어 그것을 사용하면 자기에게 손이나 발이 없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더라. 그런 것을 몸의 근육에 바로 붙이면 돼. 의수를 사용하면 손가락이 움직여 일을 할 수도 있고 게다가 글씨까지 쓸 수가 있어. 그러는 동안에 계속해서 더 좋은 것이 발명될 거야"


[...]

카친스키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것은 포게젠에서 플랑드르까지에 이르는 모든 전선에 퍼진 이야기 중의 하나였다. 어떤 군의관에 대한 것인데 그는 병증검사를 할 때 이름을 부르고선 환자가 앞에 나타나면 쳐다보지도 않고 "출정 가능, 전방에서는 병사가 부족해" 하고 말한다는 것이다. 의족을 한 사나이가 앞에 나타났는데 그 군의관은 또다시 "출정 가능"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하고 카친스키는 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 환자는 군의관을 향해 '나는 이처럼 의족을 하고 있는데, 지금 이대로 전방에 나가 머리에 총을 맞게 되면 나무 머리를 만들어 달고 군의관이 되겠소" 했다는 거야." 우리는 이 대답에 통쾌한 기분을 느꼈다. (에리히 레마르크, 『서부전선 이상없다』, 1929)


 **


“며칠 안이면 퇴원할 테니, 퇴원하거든 서울로 가서 의족을 만들어 가지고 살여울로 갑시다.”

하는 것이 숭의 대답이었다.

“싫어요, 난 서울은 안 가요! 이 꼴을 하고 서울을 가?”

하고 정선은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 끝에는 얼굴이 검은빛으로 흐렸다.

“그럼 의족은 어떻게 하오?”

“여기 불러오지는 못하오?”

“불러오면 돈이 많이 들지. 인제는 당신이나 내나 다 몸뚱이 하나뿐이오. 인제부터는 우리 둘이 벌어먹어야 하오.”

이 말은 정선에게는 무서운 말이었다. 참 그렇다. 돈이 없다. 십여만 원 가치 어치 재산은 숭이가 다 친정아버지에게 돌려보내고 말았다. 

[...]

이날 서울서 의족 만드는 사람이 왔다. 일전에는 그 사람이 석고를 가지고 와서 정선의 성한 쪽 다리를 본떠 갔더니, 이번에 그 본에 비치어서 다리를 만들어 가지고 왔다. 비단 양말을 신기고 구두를 신기고 보면 성한 다리와 다름이 없었다.

정선은 숭에게 겨드랑을 붙들려서 침대 위에 일어나 앉기까지는 하였지마는 고무다리 만드는 사람 있는 곳에서는 그것을 대어 보기를 원치 아니하였다. 그래서 숭은 그 사람을 내어보내고 맞춰 보았다.

아직 끊은 자리가 굳지를 아니하여 좀 아팠다. 그런 아픈 것 때문은 아니요, 고무다리를 대지 아니하면 안 되게 된 것 때문에 정선은 숭의 가슴에 매달려서 울었다.

“이게 다 무어야. 내다버려요!”

하고 정선은 그 고무다리가 보기 싫다고 이불을 쓰고 울었다. 숭은 고무다리를 잘 싸서 정선이가 보지 않는 곳에 가져다가 두었다.

“나는 고무다리 안 댈 테야.”

하고 정선은 떼를 썼다.

“대고 싶을 때에만 대시구려.”

하고 숭은 정선을 무마하였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정선은 하루에 한 번씩 고무다리를 대어 보았다. 그리고 한두 걸음씩 걸어도 보았다. 그리고 나서는 또 울었다. 마치 히스테리가 된 것 같았다.

자나깨나 정선의 머릿속에서는 고무다리가 떠나지 아니하였다. 눈을 감으나 뜨나 고무다리는 눈에 어른거렸다. 그러할 때마다 슬펐다.  (이광수, 『흙』, 1932)


 **

[낙랑파라의:주] 그 창은 ― 6척×1척 5촌 5푼의 그 창은 동쪽을 향하여 뚫려 있었다. 그 창 밑에 바특이 붙여 쳐 놓은 등탁자 위에서 쓰고 있던 소설에 지치면, 나는 곧잘 고개를 들어, 내 머리보다 조금 높은 그 창을 치어다보았다. 그 창으로는 길 건너편에 서 있는 헤멀슥한  이층 양옥과, 그 집 이층의 창과 창 사이에 걸려 있는 광고들이 보인다. 그 광고등(廣告燈)에는,  


醫療機器 義手足 의료기기 의수족

     

이러한 글자가 씌어 있었다. 그러나 그 창으로 보이는 것은 언제든 그 살풍경한 광고등만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늘 그 창으로 안을 엿보는 ... (박태원, '피로', 1933)















▲ 1934년 8월 2일자 동아일보 1면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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