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바른생활 사나이 구보씨

category 친절한 구보씨 2019. 2. 7. 14:43

거리에 자주 나오는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차를 탄다. 그리고 차 속에서 나는 거의 언제든 우울하다. 승객의 대부분이 좌석을 사양하는 미덕을 갖지 않는 까닭이다.


물론 나는 부녀가 아니요 또 그렇게 노쇠하지도 유약하지도 않다. 나의 우울은 그러니까 결코 사욕에 말미암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좀 우울하여 한다고 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격분하기조차 한다고 아무 승객도 겁내지 않는다. 그들은 좌석을 구하지 못하여 애쓰는 노인을 소년을 또는 아이 업은 아낙네를 눈앞에 두고 그들이 용하게 구한 행운의 좌석 우에 그 몸가짐이 자못 안연晏然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은 일찍이 그러한 예법을 배우지 않았고 따라서 그들은 자기의 위치를 고집함에 있어 제법 떳떳한 까닭이다.


그들은 제 자신 남에게 좌석을 사양할 줄 모르는 까닭에 남이 간혹 자기를 위하여 자기를 내어주더라도 그것에 감사할 줄 모른다. 그는 필연코 창 밖에 내리쪼이는 별이 목덜미에 따가웠든 또는 다음 정류장에서 내리기 위하여 지금부터 승강대 가까이 가 있을 필요를 느꼈든 그런 까닭이라 하고 똑 그러하게만 생각한다.


그러한 그들 앞에서 젊은 여인을 위하여 자리를 일어섬에는 비상한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충분한 공석이 준비되지 못한 차중에서는 언제든 승강대 가까이 서서 되도록 창외窓外의 정경을 사랑하기로 방침이다.


- 박태원 「차車중의 우울」, 조선일보, 1939.4.18.

'친절한 구보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가 구보씨의 집은 어디?  (0) 2019.03.06
[피로 (1)]의료기기 의수족義手足  (0) 2019.02.07
노랫말을 지은 구보씨  (0) 2019.02.07
노래를 듣는 구보씨  (0) 2019.02.07
편지 쓰는 구보씨  (0) 2019.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