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전교의 석축 (1930년대)
마전다리 [마전교/마천교/태평교]
그는[순동이는] 매일같이 '마전 다리' 아버지 들어 있는 집에서 구락부[광교 부근 당구장]로 나오는 길에는 으레 잠깐 수표정 누이[금순]에게 들러, 밤낮 만나는 사이에 뭐 이야기 할 이야기가 있을 턱 없었으나, 주고받는 단 한두 마디 평범한 말에도, 동기간의 정의는 역시 나타나, 그래 곁에서 보는 외로운 기미꼬의 마음을 무던히나 감동시켜주는 것이다. (같은책, 316)
어느날 순동이는 다른 때보다 좀 일찍이 누이에게를 들러, 그때 마침 일어나 머리를 빗고 있는 기미꼬를 향하여, 오늘은 누이보다도 바로 그를 만나러 온 것이라고,
"저, 꼭 청헐 말씀이 있어서요"
하고 그러한 말을 그는 웃지도 않고 하였다.
"내게 청할 말이 뭐유"
"저, 다른 게 아니라요……"
그리고 그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아버지와 새어머니 사이가 근래로 좀더 험악해져서 자기가 단칸방에 그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여러 가지로 고통이요.... 그 뿐만 아니라 또 마전 다리와 광교면, 그 거리가 상당히 멀어, 아침에는 괜찮지만 밤중 새로 한 점이나 그렇게 되어 걸어 내려가려면, 정히 귀찮을 때도 많다고,
"그래, 인제버텀은 아주 구락부에서 잘까 허는데, 한 가지 어려운 건 하루 두 끼니 밥이거든요. 그걸 어떻게 이루 사 먹어요? 그래, 오늘 온 건, 나, 밥 좀 해주실 수 없을까 하구요..." (박태원, 『천변풍경』, 문학과 지성사, 2005[1936], 3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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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간수교
▲ 오간수교를 위를 달리는 전차
[...]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양산을 들고 차가 동대문 앞에 정류하기를 기다리어 내려갔다. 구보의 마음은 또 한 번 동요하며, 창 너머로 여자가 청량리행 전차를 기다리느라 그 곳 안전지대로 가 서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자기도 차에서 곧 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여자가 청량리행 전차 속에서 자기를 또 한 번 발견하고, 그리고 자기가 일도 없건만, 오직 여자와의 사이에 어떠한 기회를 엿보기 위하여 그 차를 탄 것에 틀림없다는 것을 눈치 챌 때, 여자는 그러한 자기를 얼마나 천박하게 생각할까. 그래 구보가 망설거리는 동안, 전차는 달리고 그들의 사이는 멀어졌다. 마침내 여자의 모양이 완전히 그의 시야에서 떠났을 때, 구보는 갑자기, 아차, 하고 뉘우친다.
행복은 그가 그렇게도 구하여 마지않던 행복은, 그 여자와 함께 영구히 가버렸는지도 모른다. 여자는 자기에게 던져줄 행복을 가슴에 품고서, 구보가 마음의 문을 열어 가까이 와주기를 갈망하였는지도 모른다.
왜 자기는 여자에게 좀더 대담하지 못하였나. 구보는 여자가 가지고 있는 온갖 아름다운 점을 하나하나 헤어보며, 혹은 이 여자 말고 자기에게 행복을 약속하여 주는 이는 없지나 않을까, 하고 그렇게 생각하였다. 방향판을 '한강교'로 갈고 전차는 [오간수교를 건너] 훈련원을 지났다.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934)
▲ 동대문(구장) 주변 (1958)
▲ 동대문 오간수교~신설동 제2청계교 구간 복개공사 현장(1965). 광교~오간수교 간의 청계천 복개공사는 1958년 5월에 시작, 1961년 12월에 완료. 사진 하단은 복개된 오간수교 자리(부근)의 도로.
▲ 대한뉴스 177호 (1958. 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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