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이스'류의 정신분석학精神分析學에 기초를 둔 심리주의 문학이 한창 떠들고 있는 듯 합디다. 현대는 누구나 고민하고 있고 그 고민하는 현대인의 히스테리칼한 정신상태의 분석은 확실히 흥미를 끄는 문제지요. (김기림, '최근의 외국문단 좌담회', 『삼천리』, 1934.9.)
구보는 그저 『율리시즈』를 논하고 있는 벗을 깨닫고, 불쑥 그야 제임스 조이스의 새로운 시험에는 경의를 표하여야 마땅할 게지. 그러나 그것이 새롭다는, 오직 그 점만 가지고 과중 평가를 할 까닭이야 없지. 그리고 벗이 그 말에 대하여 항의를 하려 하였을 때, 구보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벗의 등을 치고, 자, 그만 나갑시다. 그들이 밖에 나왔을 때, 그곳에 황혼이 있었다. 구보는 이 시간에, 이 거리에, 맑고 깨끗함을 느끼며, 문득, 벗을 돌아보았다.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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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로운 예술, 영화는, 그 역사가 지극히 새로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일에 그렇게도 비상한 진보를 우리에게 보였다. 그와 함께, 그것은 우리가 배울 제법 많은 물건을─, 특히 그 수법, 그 기교에 있어, 가지고 있다. 나는 그 중에서도 특히 '오버랩'의 수법에 흥미를 느낀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나의 작품에 있어, 그것을 시험하여 보았다. 그러나 물론 그것은 나만이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게다. 최근에, 『 율리시즈』를 읽고 제임스 조이스도 그 같은 시험을 한 것을 알았다. (박태원, '표현.묘사.기교 - 창작여록', 조선일보, 19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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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은 우선 오늘의 문명 속에서 나서 신선한 감각으로써 문명이 던지는 인상을 붙잡았다. 그것은 현대의 문명을 도피하려는 모든 태도와는 달리 문명 그것 속에서 자라난 문명의 아들이었다. [...] 제재부터 우선 도회에서 구했고 문명의 뭇면이 풍월 대신에 등장했다. 문명 속에서 형성되어가는 새로운 감각.정서.사고가 나타났다. (김기림,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 『인문평론』, 1939.10.)
"어느날 갑자기 지구에서 더블린이 사라진다고 해도 내 책을 가지고 완벽하게 재현해낼 수 있을 정도로 이 도시를 표현해 내고 싶다네." (제임스 조이스가 취리히에서『 율리시즈』를 집필하던 때에 그의 친구 예술가 프랑크 부드겐에게 했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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