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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의 구보씨

category 친절한 구보씨 2019. 3. 28. 12:57

[...] '조이스'류의 정신분석학精神分析學에 기초를 둔 심리주의 문학이 한창 떠들고 있는 듯 합디다. 현대는 누구나 고민하고 있고 그 고민하는 현대인의 히스테리칼한 정신상태의 분석은 확실히 흥미를 끄는 문제지요. (김기림, '최근의 외국문단 좌담회', 『삼천리』, 1934.9.)

▲ 더블린의 오코넬 스트리트 (1900년대)


구보는 그저 『율리시즈』를 논하고 있는 벗을 깨닫고, 불쑥 그야 제임스 조이스의 새로운 시험에는 경의를 표하여야 마땅할 게지. 그러나 그것이 새롭다는, 오직 그 점만 가지고 과중 평가를 할 까닭이야 없지. 그리고 벗이 그 말에 대하여 항의를 하려 하였을 때, 구보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벗의 등을 치고, 자, 그만 나갑시다. 그들이 밖에 나왔을 때, 그곳에 황혼이 있었다. 구보는 이 시간에, 이 거리에, 맑고 깨끗함을 느끼며, 문득, 벗을 돌아보았다.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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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로운 예술, 영화는, 그 역사가 지극히 새로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일에 그렇게도 비상한 진보를 우리에게 보였다. 그와 함께, 그것은 우리가 배울 제법 많은 물건을─, 특히 그 수법, 그 기교에 있어, 가지고 있다. 나는 그 중에서도 특히 '오버랩'의 수법에 흥미를 느낀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나의 작품에 있어, 그것을 시험하여 보았다. 그러나 물론 그것은 나만이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게다. 최근에, 『 율리시즈』를 읽고 제임스 조이스도 그 같은 시험을 한 것을 알았다. (박태원, '표현.묘사.기교 - 창작여록', 조선일보, 19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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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은 우선 오늘의 문명 속에서 나서 신선한 감각으로써 문명이 던지는 인상을 붙잡았다. 그것은 현대의 문명을 도피하려는 모든 태도와는 달리 문명 그것 속에서 자라난 문명의 아들이었다. [...] 제재부터 우선 도회에서 구했고 문명의 뭇면이 풍월 대신에 등장했다. 문명 속에서 형성되어가는 새로운 감각.정서.사고가 나타났다. (김기림,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 『인문평론』, 1939.10.)

 


"어느날 갑자기 지구에서 더블린이 사라진다고 해도 내 책을 가지고 완벽하게 재현해낼 수 있을 정도로 이 도시를 표현해 내고 싶다네." (제임스 조이스가 취리히에서『 율리시즈』를 집필하던 때에 그의 친구 예술가 프랑크 부드겐에게 했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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