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학기가 되니까 학생들은 십 분 노는 시간에만 모여도 취직이야기였다. 두 사람이 모여도 취직이야기 세 사람이 모여도 취직이야기 수군수군하는 것도 껄껄 웃는 것도 모두 취직이야기였다. 교실에 들어가면 칠판에 쓰인 '라쿠카키'(낙서)도 취직에 관계된 것이었고 선생의 얼굴에도 취직의 두 글자가 어른어른하는 것 같았다. 사실 올해에는 사십 명이나 되는 xx전문학교 졸업생은 삼분의 일도 취직이 되지 못하리라고들 떠드는 것이었다.
[...]
어떤 이유로 경제공황은 이렇게도 오래 끌어나가며 어떤 이유로 취직난은 해마다 이렇게 더 심해가는가. 찬구는 그 잇속을 모르는 배 아니었으나 지금 우선 급한 것은 그런 근본 문제보다도 이떻게 해 취직자리를 하나 얻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는 몇번이나 약한 자기의 의지를 책망하였으나 역시 그에게 취직하기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
그러자 S가,
"참 선생님, 아직도 취직 못한 사람이 반이나 된다지요. 다른 학교들도 모두들 그 모양이니 큰일입니다. 큰 사회 문젠 걸요."
하고 이번에는 점잖게 입을 연다.
"미상불 그렇다네. 학교에서는 최선을 다해 지금도 주선하는 중이지만 어디 마땅한 자리가 있어야지. 이렇게 되고 보면 학교 만든 것이나 되려 원망할 밖에. 학교만 만들면 좋을 줄 알고 덮어놓고 학교만 자꾸 만든 결과가 이 모양이니."
"그렇고말고요. 조선 안에만 해도 관공사립을 통해 전문학교가 아홉이나 되니 그럴 수밖에 있습니까. 거기다가 해마다 내지서 졸업하구 오는 사람은 얼마나 많습니까."
이야기는 여기서 다시 벌어져서 T 선생과 S와는 주거니 받거니 별별 이야기를 다하는 것이었다. (유진오, '5월의 구직자',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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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절 어째서 차차 세상이 살아가기가 어려워만 지나."
이러한 질문을 하는 이도 있었다.
"요새는 대학교 조립[졸업]을 하고도 직업을 못 얻는대."
하는 세상 소식 잘 아는 이도 있었다.
[..]
그렇게까지 해서 전문학교나 대학을 마친다 하자. 그리고는 무엇을 하여 먹나. 놀고 먹어 보자던 소망도, 벼슬깨나, 회사원, 은행원이나 해먹자던 소망도 이 직업난에 다 달하지 못하고, 얻은 것이 졸업장과, 고등 소비생활의 습관과 욕망과, 꽤 다수의 결핵병, 화류병, 자연 속에서 생장한 체질로서 부자연한 도시생활에 들어오기 때문에 생기는 건강의 장애와― 이것뿐이 아닌가. 조상 적부터 해먹던 땅을 파자니 싫고, 직업은 없고, 그야말로 놀고 먹자던 것이 놀고 굶게 되지 아니하는가. (이광수, 『흙』,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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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여 보면 철수가 학교를 나온 지도 일 년이 넘는다. 그 일 년 동안 철수는 무엇을 하였던 것일까. 생각하면 한심스러웠다. 그야 물론 이렇게 아무 일도 하는 일 없니 한평생을 지내갈 생각이야 없었다. 자기에게도 자기가 걸어갈 길과 자기가 하여야 할 일이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다.
그는 때때로 자기가 이미 자기의 갈 길을 찾은 듯이 생각한다. 자기의 할 일을 확실히 알아차린 듯이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들을 새로이 검토하여 볼 때, 그의 눈앞에 보이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에게 있는 것이란 룸펜 인텔리에게 거의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초조'와 '불안'─, 이것들뿐인 듯싶었다. (박태원, '옆집 색시',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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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혹 스물여섯 해를 스물여섯 곱하는 일이 있다더라도, 어머니의 마음은 늘 걱정으로 차리라. 그래도 어머니는 그가 작은며느리를 보면, 이렇게 밤늦게 한 가지 걱정을 덜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참, 이 애는 왜 장가를 들려구 안 하는 겐구."
언제나 혼인 말을 꺼내면, 아들은 말하였다.
"돈 한 푼 없이 어떻게 기집을 멕여 살립니까?"
"하지만…… 어떻게 도리야 있느니라. 어디 월급쟁이가 되더래두, 두 식구 입에 풀칠이야 못헐라구……"
어머니는 어디 월급 자리라도 구할 생각은 없이, 밤낮으로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고, 혹은 공연스레 밤중까지 쏘다니고 하는 아들이 보기에 딱하고, 또 답답하였다.
...
어머니는 역시 글을 쓰는 것보다는 월급쟁이가 몇 갑절 낫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그렇게 재주 있는 내 아들은 무엇을 하든 잘하리라고 혼자 작정해 버린다. 아들은 지금 세상에서 월급자리 얻기가 얼마나 힘드는 것인가를 말한다.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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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아는 집에서 셋방을 얻어 들었을 때에는 두 달이고 석 달이고 세가 밀려도 조르는 법이 없었다.
밀려도 조르지 아니하는 아는 집…… 이것이 P는 도리어 미안해서 이곳으로 옮겨 온 것이다. 옮겨 와가지고 막상 졸림질을 당하니 미안해도 졸리지는 아니하던 옛 집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노인이 문을 가로막고 서서 수다스런 소리로 더 지껄이려고 하는
데 마침 P의 동무 M과 H가 찾아왔다.
"어데 나가나?"
M이 그러잖아도 벌씸한 코를 한번 더 벌씸하고 사이 벌어진 앞니
를 내어 보이며 싱끗 웃는다.
몸집은 M과 같이 통통하지만 키가 적어 M의 뒤에 가려 섰던 H가
옆으로 나서며,
"안녕합시요."
하고 인사를 한다.
P는 싱끗이 웃었다. 이 M과 H는 같은 하숙에 있는데 두 사람은 곧잘 같이 돌아다닌다. 같이 가는 것을 나란히 세워 놓고 보면 하나는 키가 커서 우뚝하고 하나는 키가 작아서 납작 붙어 가는 것 같다.
얼굴도 M은 우둘부둘한 게 정객 타입으로 생겼고―---잘못하면 복싱 링에 내세워도 좋겠고―---H는 안존한 게 사무원 타입이다.
일상의 언행을 보아도 H는 무슨 이야기가 자기 전문인 법률에 관한 것에 다다르면 육법 전서의 조목을 따르르 외우면서 이러고저러고 하다고 설명을 하고, M은 동경서 학생 ××에 제휴를 했던만큼, 그리고 전문이 정경과인만큼 좌익 진영에서 쓰는 어투가 그대로 나온다.
"여전히 모다 동색(冬色)이 창연하군!"
P는 두 사람의 특특한 겨울 양복을 보고, 그리고 자기의 행색을 내려보며 웃었다.
M이 신을 벗고 들어와 먼지 앉은 책상 위에 걸터앉으며,
"춘래 불사춘일세."
하고 한마디 외운다. H도 따라 들어와 한편에 앉으며 한마디한다.
"아직 괜찮아…… 거리에서 보니까 동복 입은 사람이 많데……."
"괜찮기는 무어 괜찮아…… 우리가 길로 돌아다니니까 사방에서 아이구 아야! 소리가 들리데."
"왜?"
"봄이 발밑에서 짓밟히느라고."
"하하하하."
세 사람은 소리를 내어 웃었다.
참 시험 본 것 어떻게 되었소?
P는 H가 일전에 총독부에서 본 고원 채용 시험을 생각하고 물어 보았다.
"말두 마시우…… 이제는 꼭 들어앉어 공부나 해갖고 변호사 시험이나 치겠소."
사람이 별로 변통성도 없고 그렇다고 여기저기 반연도 없어 취직이 여의하게 되지 못하는 것을 볼 때에 P는 가엾은 생각이 늘 들곤하였다.
"가만있게…… 어서 변호사 시험만 패스하게. 그러면 이제 내가 백만 원짜리 주식회사를 조직해 가지고 자네를 법률 고문으로 모셔옴세."
이것은 M이 늘 농삼아 하는 농담이다. M도 일년 동안이나 취직 운동을 하면서 지냈건만 그는 되레 배포가 유하다. 조금 더 재빠르게 했으면 M은 벌써 취직이 되었을는지도 모르나 그는 타고난 배포와 그리고 남에게 아유구용을 하기 싫어하는 성질로 말하자면 취직 전선의 낙오자다.
별로 만나야 할 일도 없다. 그러나 제각기 혼자 있으면 우울해지니까 이렇게 서로 찾으며 자주 만나게 된다.
만나 앉아서 이야기라도 지껄이면 그 동안만은 명랑하여진다.*지금 서울 안에 P니 M이니 H니와 매일 만나 하는 일 없이 돌아다니고 주머니 구석에 돈푼 있으면 서로 털어 선술잔이나 먹고 하는 룸펜의 패가 수없이 많다.
*무어나 일을 맡겼으면 불이 번쩍 일게 해낼 팔팔한 젊은 사람들이다. 그렇건만 그들은 몸을 비비 꼬고 있다. (채만식, '레디메이드 인생',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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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필金萬弼을 태운 택시는 웃고 떠들고 하며 기운좋게 교문을 들어가는 학생들 옆을 지나 교정校庭을 가로질러 기운차게 큰 커브를 그려 육중한 본관 현관 앞에 우뚝 섰다. 그의 가슴은 벌써 아까부터 두근거리기 시작하였다. 오늘은 그가 일년 반 동안의 룸펜생활을 겨우 벗어나서 이 S전문학교의 독일어교사로 득의의 취임식에 나가는 날인 것이다. 어른이 다된 학생들의 모양을 보기만 해도 젊은 김강사의 가슴은 두근두근한다.
[...]
그는 늦잠을 자는 버릇이 생겼다. 점심 때나 되어 일어나서는 밥을 한술 떠넣고 바람부는 거리를 거니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새해라 해도 종로거리에는 장식 하나 없고 살을 에이는 매운 바람이 먼지를 불어올릴 뿐이었다.
피곤하면 뒷골목에 갑자기 많아진 찻집을 찾아들어가 정신나간 사람같이 앉아 있었다. 찻집에는 아무데를 가도 일상 김강사와 같은 젊은 사내들이 그득하였다. 그들은 대개는 김만필과 비슷한 경우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었다. 학교는 졸업했으나 갈 곳은 없고 학문이나 예술상의 기적적인 사업이 하룻밤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상타파의 마음을 굳게 해서 강철이나 불길을 사양치 않을 만한 용기를 제마다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보니 차를 사먹을 잔돈푼이 안즉 있는 동안에 이렇게 찻집에 와서는 웅덩이에 고인 물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활발한 토론의 꽃이 피는 법도 없으며 불길같은 사랑의 피가 타오르는 일도 없고 오직 죽음과 같은 침묵의 시간이 계속될 뿐이었다. (유진오, '김강사와 T교수',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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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에도 예전 같이 네 섬돌 위엔 인생의 비극이 잠자겠지
내일 그들은 네 바닥 위에 티끌을 주우며……
그리고 갈 곳도 일할 곳도 모르는 무거운 발들이
고개를 숙이고 타박타박 네 위를 걷겠지
그러나 너는 이제 모두를 잊고
단지 피로와 슬품과 검은 절망만을 그들에게 안겨 보내지는 설마 않으리라
비록 잠잠하고 희미하나마 내일에의 커다란 노래를
그들은 가만히 듣고 멀리 문밖으로 돌아가겠지 (임화, '다시 네거리에서', 19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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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펜
살자 살아보자
낙망 말고 살아보자
몇 번이나 주먹 쥐고
내 홀로 맹세턴고
허나, 나는 오늘도
거리의 '룸펜'
(작자미상, 『사해공론』, 19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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