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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서 유학까지

category 친절한 구보씨 2019. 3. 27. 21:00


하룻밤만 자고 나면, 우리 설영이가 유치원에를 가는 날이라, 그래, 우리는 그날 아이를 데리고 백화점을 찾아 가서, 가난한 아비의 넉넉지 않은 예산으로는 그것은, 분명히 신중한 고려를 필요로 하는 정도의 지출이었으나, 가위 있는 집 자녀들 틈에다 우리 딸을 보내는 바에는 결코 그 행색이 너무나 초라하여서는 아니될 것이라, 양복에 구두에 '마에까끼', '사루마다', '카바'는 아직도 성한 놈이 집에 있건만, 그것도 새로이 한 켤레를 사고 나니, 수중에는 남은 돈이 그 얼마가 못되어도, 어린 딸의 두 눈이 자못 자랑스레 빛나는 것을 보고는, 가난한 아비는 가난한 까닭으로 하여 좀 더 그 마음이 애닯게 기뻤던 것이다.
[...]
"너희 집이 어디지?"
"돈암동 사백팔십칠번지의 이십이호에요."
작년까지도 모집인원과 응모자수가 서루 어상반하여 입원入園을 원하는 아동은 이를 전부 수용할 수 있었는데 올해에는 원서 마감 이전에 이미 백명에 대하여 이백명이 초과하는 현상이므로,
"불가불 시험을 봐야만 하게 됐어요."
그러한 말을 보모에게서 듣고 돌아온 뒤로, 아내가 요 며칠동안을 두고 열심히 설영이를 지도하여 온 보람은, 이제, 충분히 있다고 할 밖에 없었다.
[...]

나는 얼굴이 확! 붉어지는 것을 느끼고,

"그, 웬 잔소리야!"

한마디, 꽥! 소리를 질렀던 것이나, 문득, 저편 구석에, 새로 사온 양복을 앞에다 놓고 앉아, 한껏 불안스러운 눈으로 우리들의 동정만 살피고 있는 설영이의 모양이 눈에 띄자, 나는 새삼스러이 당황하여 가지고,

"설영아, 나가서 동무 불러 가지구 놀지 않으련?"

하고, 한껏 부드러운 음성을 지어 한마디 하였더니, 설영이는 금시에 가만한 웃음조차 입가에 띠우고,
"아빠아."
하고 부른 다음에 고개를 얄밉게 갸웃둥하고,
"저어, 새양복 입어 봐두 괜찮우?"
한다.
"응. 입어두 괜찮지만, 내일 유치원 갈 때 입어야 더 좋지. 오늘 입었다 때 묻으면, 내일 선생님이, 잰 때 묻은거 입구 왔네─ 그러지 않어?"
"그럼, 뒀다, 낼 유치원 갈 때 입어?"
설영이가 눈을 반짝거리며 하는 말이 마악 끝났을까 말까 할 때, 아내는 또 소리를 질렀다.
"네까짓게, 그 꼴에, 유치원이 무슨 유치원이냐? 유치원엔 부잣집 아─"
나는 끝까지 듣고 있을 수가 없어 다시 높은 음성으로 그를 꾸짖었다.
"원, 어린것 보구, 그게 무슨 수작이야?" (박태원, '채가債家', 1941)

 

**

가엾은 아이들이다. 그들은 결코 아버지의 사랑을 몰랐다. 그들의 아버지는 다섯 해 전부터 어느 시골서 따로 살림을 차렸고, 그들은, 그래, 거의 완전히 어머니의 손으로만 길러졌다.
어머니에게 허물은 없었다. 그러면 아버지에게. 아버지도, 말하자면, 착한 이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역시 여자에 대하여 방종성이 있었다. 극도의 생활난 속에서, 그래도 어머니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다.
열여섯 살짜리 큰딸과, 아래로 삼 형제. 끝의 아이는 명년에 학령이었다. 삶의 어려움을 하소연하면서도 그 애마저 보통학교에 입학시킬 것을 어머니가 기쁨 가득히 말하였을 때, 구보의 머리는 저도 모르게 숙여졌었다.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934)

**
"이 사람아, 그저 상象만 피하면 심이 핀단 말인가? 내 포장包將을 받아야지, 포장을……"
국면이 매우 자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어가고 있는듯싶어, 한국시대에 경성감옥을 이년인가 삼년 동안 다녔다는 동관 하나가 한편으로 장기를 두며, 또 한편으로는 영감을 돌아다보고,
"참, 자네 끝의 놈, 이번에 학교에 붙었다데 그려"
하고, 문득 생각난듯이 한마디 묻는다. "

들어갔으면 무얼하나? 중학굘세 말이지. 그까짓 고등소학굘, 흥!"
영감은 보고 있던 신문을 방바닥에 놓고 별 까닭도 없이 미닫이에 붙은 유리쪽을 통하여 길 건너 솜틀집의 초가지붕을 멀거니 바라본다.
"거기래두─ 아, 이 사람이 부러 이러나? 왜 이래? 어디건 차車가 오는 게야? 여기었지? 게 있었나? ─ 거기래두 들어간게 다행이지. 그나마 못들어 갔었다면……"
"거기두 못들어가서야 으떡 허게? 허지만 들어갔대야, 그게 학문에 진보가 있는게 아니란 말이야. 고등소학을 졸업 맡으려구, 그래, 들어간게 아니라, 결국은 내년에 다시 중학교 시험을 뵐려구, 그 준비루 들어간게니, 남보다 일년 밑지기야 매한가지 아닌가?"
"흥 졸卒이 또 올라오신다? 이건 덮어놓구 올라만 오면 젤인가? 자아 또 장將 받구─, 아아니, 그런데 효섭이놈이, 밤낮 우등 첫째만 했다며, 어째 그렇게 중학교서 떨어진게야? 역시, 시험 보는 애들이 원체 많아놔서, 그래 그랬나?"
"경쟁자도 많기야 많았지만, 하옇든 효섭이가 학력으루 떨어진건 아니라니까……, 똑 신체 검사루 해서……" (박태원, '골목 안', 1939.)


신설할 고등소학교 원서접수 개시
중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는 아동들을 수용하고자 경성부에서 신설하는 공립고등소학교... [에서는] 21일부터 부[府] 학무과에서 입학원서접수를 개시하였다. 원서마감은 이달 그믐까지이고 추후 시행일자를 결정발표할 터인데 수업장소는 당분간 부내 서소문정 전 정동보통학교자리를 사용키로 되었다 한다. (동아일보. 1939.3.21.)


**

문득 한 사내가 둥글넙적한, 그리고 또 비속한 얼굴에 웃음을 띠고, 구보 앞에 그의 모양 없는 손을 내민다. 그도 벗이라면 벗이었다. 중학 시대의 열등생. 구보는 그래도 약간 웃음에 가까운 표정을 지어 보이고, 그리고 단장 든 손을 그대로 내밀어 그의 손을 가장 엉성하게 잡았다. 이거 얼마만이야. 어디가나. 응, 자네는ㅡ.
[...]
다방을 찾는 사람들은, 어인 까닭인지 모두들 구석진 좌석을 좋아하였다. 구보는 하나 남아 있는 가운데 탁자에 가 앉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는 그곳에서 '엘만'의 '발스 센티멘털'을 가장 마음 고요히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선율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약무인한 소리가, 구포씨, 아니요ㅡ 구보는 다방 안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온몸에 느끼며, 소리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중학을 2, 3년 일찍 마친 사내. 어느 생명보험회사의 외교원이라는 말을 들었다. 평소에 결코 왕래가 없으면서도 이제 이렇게 알은체를 하려는 것은 오직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먹은 술 탓인지도 몰랐다.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934)

**

종수는 새삼스럽게 소개할 것도 없이, 만석꾼 윤직원 영감의 맏손자요, 창식이 윤주사의 맏아들이요, 경손이의 아범이요, 윤씨네 가문 빛내는 큰 사업의 제일선 용사 중 한 사람으로서 군수 운동을 하느라고 고향에 내려가 군 고원을 다니는 사람이요, 그리고 장차 경찰서장이 될 동경 어느 대학 법학과 학생 종학의 형이요, 이러한 그 종숩니다.
[...]
"너 경손 애비, 부디 정신채리라……!"
윤직원 영감이 종수더러 곰곰이 훈계를 하던 것입니다. 안식구가 있는 데라 점잖게 경손 애비지요.
"……정신을 채리야 헐 것이 늬가 암만히여두 네 아우 종학이만 못히여! 종학이는 그놈이 재주두 있고 착실히여서, 너치름 허랑허지두 않고 그럴 뿐더러 내년 내후년이머넌 대학교를 졸업허잖냐? 내후년이지?"
"네."
"그렇지? 응, 그래, 내후년이먼 대학교 졸업을 허구 나와서, 삼 년이나 다직 사 년만 찌들어 나머넌 그놈은 지가 목적헌, 요새 그 목적이란 소리 잘 쓰더구나, 응? 목적…… 목적헌 경부가 되야 갖구서, 경찰서장이 된담 말이다! 응? 알겄어." (채만식, 『태평천하』, 1938.)

**

선형과 나와 약혼한다는 말은 말만 들어도 기뻤다. 영채가 마침 죽은 것이 다행이다 하는 생각까지 난다. 게다가 미국 유학!  형식의 마음이 아니 끌리고 어찌하랴. 사랑하던 미인과 일생에 원하던 서양 유학! 이 중에 하나만이라도 형식의 마음을 끌 만하거든, 하물며 둘을 다! 형식의 마음속에는 내게 큰 복이 돌아왔구나 하는 소리가 아니 발할 수가 없다.
[...]
"왜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앉었니?"
"어째 남대문이라는 소리에 마음이 이상하게 혼란하여집니다그려". 어서 차가 떠났으면 좋겠다 할
때에 벌써 종 흔드는 소리가 나고, "사요나라, 고키겐요우" 하는 소리가 소낙비같이 들리더니 차가 움직이기를 시작한다. 어디서, "만세, 이형식 군 만세!**" 하는 소리가 들린다. 두 사람은 깜짝 놀라 귀를 기울인다. 또 한번, "이형식 군 만세!" 하는 소리가 들린다. 지금 만세를 부르던 사람들이 두 사람의 창 밖으로 얼른한다. 그것은 모시 두루마기에 파나마 쓴 패였다. 병욱은 아까 선형의 곁에 있던 사람이 형식인 것과, 형식이가 선형의 지아빈 줄도 짐작하였다. 그러나 아무 말도 아니하였다.
[...]

이때에 차가 수원역에 다다랐다. 바깥은 캄캄하게 어두웠다.
병욱이 선형을 데리고 돌아와서 자기의 곁에 앉히며,

"영채야, 이이는 김선형 씨라는 인데 내 동창이다. 지금 미국 가시는 길이구" 하고 그 다음에는 선형을 향하여, "이 애는 박영채인데 내 동생이오" 하고 소개를 한다. 소개를 받은 두 사람은 서로 고개를 숙인다. 선형은 박영채가 어떻게 동생인가 한다. 병욱은 영채와 선형을 번갈아 보며 두 사람의 얼굴과 운명을 비교해 본다. 영채도 선형이가 형식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모르고, 선형도 무론 영채가 형식을 위하여 칠팔 년간 고절을 지키다가 마침내 목숨까지 버리려 한 사람인 줄은 알 이치가 없다. 선형은 다만 형식이가 일찍 계월향이라는 계집과 추한 관계가 있었다는 말을 들었을 뿐이니, 이 박영채가 그 계월향인 줄은 무론 알 리가 없다. 세 처녀 사이에는 이러한 말이 있었다. 서로 잘 공부를 하여 가지고 돌아와서 장차 힘을 합하여 조선 여자계를 계발할 것과, 공부를 잘하려면 미국을 가거나 일본에 유학을 하여야 한다는 것과, 또 영어와 독일어를 잘 배워야 할 것과, 그 다음에는 병욱과 영채는 음악을 배울 터인데 선형은 아직 확실한 작정은 없으나 사범학교에 입학하려 한다는 뜻을 말하고 서로 각각 크게 성공하기를 빌었다. 차실 내의 모든 사람의 눈은 이 즐겁게 이야기하는 세 조선 여자에게로 모였다. (이광수, 『무정』, 1917)

**
“그런데.”
하고 갑진은 입에 물었던 밥을 김칫국과 아울러 삼키며,
“그런데 미국 유학생들은 왜들 다 쑥이야요? 그놈들 영어 한마디 변변히 하는 놈도 없으니 웬일야요?
하고 아주 천연스럽게 이 박사를 본다. 이 박사는 하도 의외의 말에 눈이 뚱그래지고, 순례는 제가 창피한 꼴이나 당하는 듯이 고개를 푹 수그린다. 다른 학생들은 픽픽 웃는다.
“이 사람아.”
하고 허숭이가 갑진의 옆구리를 찌른다.
“선생님, 제 말이 잘못되었어요? 이 사람들이 픽픽 웃으니.”
하고 갑진은 더욱 천연스럽다.
“그야 미국 유학생이라고 다 공부를 잘하겠소.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지.”
하고 한 선생도 빙그레 웃는다.
“어디, 미국서 박사니 무엇이니 해 가지고 온 사람치고 무어 아는 사람은 어디 있고, 하는 사람은 어디 있어요? 다들 쑥이지.”
하고 갑진은 이 박사를 바라보며,
“아마 이 박사는 안 그러하시겠지마는.”
하고 그도 웃는다. 다들 웃는다.
“미국도 하버드나 예일 같은 대학은 그래도 괜찮다지요?
하고 갑진은 여전히 미국을 낮추 보는 주의자다.
프린스턴 대학도.”
하고 갑진은 이박사가 프린스턴 출신인 것을 생각하고 한마디를 첨부한다. 다들 갑진의 말을 어떻게 수습할지를 모른다. (이광수, 『흙』, 1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