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걸을 양이면 아스팔트를 밟기로 한다. 서울 거리에서 흙을 밟을 맛이 무엇이랴.
아스팔트는 고무 밑창보다 징 한 개 박지 않은 우피 그대로 사폿사폿 밟아야 쫀득쫀득 받치는 맛을 알게 된다. 발이 한사코 돌아다니자기에 나는 자꾸 끌린다. 발이 있어서 나는 고독치 않다.
가로수 이파리마다 발발潑潑하기 물고기 같고 유월 초승 하늘 아래 밋밋한 고층건물들은 삼나무 냄새를 풍긴다.
나의 파나마[모자]는 새파랗듯 젊을 수 밖에. 가견家犬, 양산, 단장 그러한 것은 한아閑雅한 교양이 있어야 하기에 연애는 시간을 심히 낭비하기 때문에 나는 그러한 것들을 길들일 수 없다.
나는 심히 유창한 프롤레타리아트! 고무볼처럼 퐁퐁 튀기어지며 간다. 오후 네 시 오피스의 피로가 나로 하여금 궤도 일체를 밟을 수 없게 한다.
장난감 기관차처럼 장난하고 싶구나. 풀포기가 없어도 종달새가 내려오지 않아도 좋은, 푹신하고, 판판하고 만만한 나의 유목장遊牧場 아스팔트! 흑인종은 파인애플을 통채로 쪼개어 새빨간 입술로 쪽쪽 들이킨다. 나는 아스팔트에서 조금 비껴 들어서면 된다.
탁! 탁! 튀는 생맥주가 폭포처럼 싱싱한데 황혼의 서울은 갑자기 팽창한다. 불을 켠다. (정지용, '아스팔트',『백록담』,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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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아스팔트」 우에는
사월四月의 석양夕陽이 조렵고
잎사귀를 붙이지 아니한 가로수街路樹 밑에서는
오후午後가 손질한다.
소리없는 고무바퀴를 신은 자동차自動車의 아기들이
분주히 지나간 뒤
너의 마음은
우울憂鬱한 해저海底
너의 가슴은
구름들의 피곤疲困한 그림자들이 때때로 쉬려오는 회색灰色의 잔디밭
바다를 꿈꾸는 바람의 탄식嘆息을 들으려 나오는 침묵沈默한 행인行人들을 위하야
작은 「아스팔트」의 거리는
지평선地平線의 숭내를 낸다. (김기림, '아스팔트', 『태양의 풍속』,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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