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채만식 - 탁류] 글루미 선데이

category 근대문학과 경성 2019. 4. 12. 14:36

마침 생각하니 오늘이 게다가 일요일이다. 그리고 공굘시 내일이 셋째 번 월요일, 쉬는 날이다.

그게 더 안 되었다. 훨씬 넌지시 한 주일이고 두 주일 후라면 차라리 마음이나 가라앉겠는데, 오늘이 일기가 이리 좋아도 못 놀면서 남 감질만 나게시리 바투 내일이 쉬는 날이라니 약을 올려 주는 것 같아 밉광스럽다.

승재나 있었으면, 예라 모르겠다고 오늘 하루 비어 때리고서 잡아 앞참을 세우고 하다못해 창경원이라도 갔을 것을 하고 생각하니, 하마 올라왔기 쉬운데 어찌 소식이 없는가 해서 궁금하다.

▲ 동아일보 1936.5.12.

"다라라 다라라."

'글루미 선데이', 그러나 침울한 게 아니고 명랑하게 부르면서 샛문을 열고 마루로 나선다.

"언니이, 나 다녀와요오."

"오냐, 늦잖었니?"

대답을 하면서 초봉이가 안방 앞미닫이를 열다가 황홀하여 눈을 흡뜬다.

"……아이구! 저 애가!"

"왜애?…… 하하하하, 좋잖우?"

계봉이는 한 손으로 치마폭을 가볍게 치켜 잡고 리듬을 두어 빙그르르 돌아서 형이 문턱을 짚고 앉아 올려다보고 웃는 앞에 가 나풋 선다. (채만식, 『탁류』, 1937-1938 조선일보 연재, 1939 단행본 출간)

 

**

한 시대 돌이켜 '글루미 선데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레코드를 걸어 놓고 듣노라면 가사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으되 그 녹슨 청하며 미상불 마음이 저절로 침울해지는 곡조였다. 뭔 말인지 모르나 제 일차 세계 대전[1914-1918] 후 헝가리에서는 그 '글루미 선데이'[1935년 발표]로 인하여 소시민층에 자살하는 사람이 열여덟 명[187명으로 알려져 있다]이나 있었더란다. 전쟁에는 져, 전후의 생활은 괴로워, 명일은 암담해, 이런 절망에다 '글루미 선데이' 같은 노래를 듣는다면 아닌 게 아니라 자살도 함 직했을 것이다... (채만식, '글루미 이멘시페이션', 1946) 

 


1938년경, 우리는 명동의 휘가로[다방]에서 다미아[Damia]의 샹송을 처음 듣고 흥분했다. 진종일 비가 쏟아지는 어두운 날, 흐느껴 울부짖는 듯한 다미아의 노래는 고전음악 감상에 점잔을 빼고 있던 나를 완전히 흔들어버리고 말았다. 더욱이 다미아의 '글루미 선데이'[불어 곡명 Sombre dimanche]는 무서운 노래였다... 글루미 선데이는 첫 줄부터 이 땅의 젊은 정신, 보헤미안들을 사정없이 매혹케 했다. 아침부터 밤중까지 연속해서 듣고 함께 소리쳐 불렀다. (이봉구, 『명동백작』, 2004)


 

▲ Damia, 'Sombre Dimanche' (1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