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생각하니 오늘이 게다가 일요일이다. 그리고 공굘시 내일이 셋째 번 월요일, 쉬는 날이다.
그게 더 안 되었다. 훨씬 넌지시 한 주일이고 두 주일 후라면 차라리 마음이나 가라앉겠는데, 오늘이 일기가 이리 좋아도 못 놀면서 남 감질만 나게시리 바투 내일이 쉬는 날이라니 약을 올려 주는 것 같아 밉광스럽다.
승재나 있었으면, 예라 모르겠다고 오늘 하루 비어 때리고서 잡아 앞참을 세우고 하다못해 창경원이라도 갔을 것을 하고 생각하니, 하마 올라왔기 쉬운데 어찌 소식이 없는가 해서 궁금하다.
"다라라 다라라."
'글루미 선데이'를, 그러나 침울한 게 아니고 명랑하게 부르면서 샛문을 열고 마루로 나선다.
"언니이, 나 다녀와요오."
"오냐, 늦잖었니?"
대답을 하면서 초봉이가 안방 앞미닫이를 열다가 황홀하여 눈을 흡뜬다.
"……아이구! 저 애가!"
"왜애?…… 하하하하, 좋잖우?"
계봉이는 한 손으로 치마폭을 가볍게 치켜 잡고 리듬을 두어 빙그르르 돌아서 형이 문턱을 짚고 앉아 올려다보고 웃는 앞에 가 나풋 선다. (채만식, 『탁류』, 1937-1938 조선일보 연재, 1939 단행본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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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 돌이켜 '글루미 선데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레코드를 걸어 놓고 듣노라면 가사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으되 그 녹슨 청하며 미상불 마음이 저절로 침울해지는 곡조였다. 뭔 말인지 모르나 제 일차 세계 대전[1914-1918] 후 헝가리에서는 그 '글루미 선데이'[1935년 발표]로 인하여 소시민층에 자살하는 사람이 열여덟 명[187명으로 알려져 있다]이나 있었더란다. 전쟁에는 져, 전후의 생활은 괴로워, 명일은 암담해, 이런 절망에다 '글루미 선데이' 같은 노래를 듣는다면 아닌 게 아니라 자살도 함 직했을 것이다... (채만식, '글루미 이멘시페이션', 1946)
1938년경, 우리는 명동의 휘가로[다방]에서 다미아[Damia]의 샹송을 처음 듣고 흥분했다. 진종일 비가 쏟아지는 어두운 날, 흐느껴 울부짖는 듯한 다미아의 노래는 고전음악 감상에 점잔을 빼고 있던 나를 완전히 흔들어버리고 말았다. 더욱이 다미아의 '글루미 선데이'[불어 곡명 Sombre dimanche]는 무서운 노래였다... 글루미 선데이는 첫 줄부터 이 땅의 젊은 정신, 보헤미안들을 사정없이 매혹케 했다. 아침부터 밤중까지 연속해서 듣고 함께 소리쳐 불렀다. (이봉구, 『명동백작』,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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