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깨면 바라다보려고 장미 일곱 송이를 샀다.
거리에 나오니 사람들이 내 꽃을 보고 간다. 여학생들도 내 꽃을 보고 간다.
전차를 기다리고 섰다가 Y를 만났다.
언제나 그는 나를 보면 웃더니, 오늘은 웃지를 않는다.
부인이 달포째 앓는데, 약 지으러 갈 돈도 떨어졌다고 한다.
나에게도 가진 돈이 없었다. 머뭇거리다가 부인께 갖다 드리라고 장미 두 송이를 주었다.
Y와 헤어져서 동대문행 전차를 탔다. 팔에 안긴 아기가 자나 하고 들여다보는 엄마와 같이 종이에 싸인 장미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문득 C의 화병에 시든 꽃이 그냥 꽂혀 있던 것이 생각이 났다.
그때는 전차가 벌써 종로를 지났으나 그 화병을 그냥 내버려두고 갈 수는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전차에서 내려 사직동에 있는 C의 하숙을 찾아갔다. C는 아직 들어오질 않았다. 나는 그의 꽃병에 물을 갈아준 뒤에, 가지고 갔던 꽃 중에서 두 송이를 꽂아놓았다. 그리고 딸을 두고 오는 어머니 같이 뒤를 돌아보며 그 집을 나왔다.
숭삼동*에서 전차를 내려서 남은 세 송이의 장미가 시들세라 빨리 걸어가노라니 누군지 뒤에서 나를 찾는다. K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애인을 만나러 가는 모양이었다. K가 내 꽃을 탐내는 듯이 보았다. 나는 남은 꽃송이를 다 주고 말았다. 그는 미안해 하지도 않고 받아가지고는 달아난다.
집에 와서 꽃 사가지고 오기를 기다리는 꽃병을 보니 미안하다. 그리고 그 꽃 일곱 송이는 다 내가 주고 싶어서 주었지만, 장미 한 송이라도 가져서는 안되는 것 같아서 서운하다. (피천득, '장미', 1930년대 추정)
* 현재의 명륜동 3가로 '숭삼동崇三洞'(현재의 명륜동3가)은 1936년 경성부 행정구역 개편 이전까지만 쓰이던 지명이며 개편 이후에는 명륜정 3정목이라 칭함.
이 작품은 피천득 님(1910-2007)이 20대 청년 시절인 1930년대에 작성한 수필로 보입니다. '1930년대 경성과 근대문학'이라는 본 블로그의 주제에 부합하는 귀한 작품으로 생각되며, 글 자체가 짧아 부분이 아닌 전문 인용하였습니다. 비상업적 용도이나 문제가 될 경우 저작권 당사자분들께서 알려주시면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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