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저는 평양이나 한번 갔다가 오려 합니다. 가서 오래간만에 아버지 성묘도 하고 좀 바람도 쏘이게……" 하였다. 노파는 그 슬퍼하고 고집하던 마음을 고친 것이 반갑고, 어젯저녁에 월향을 안고 울 때에 얼마큼 애정도 생겼고……자고 나서는 사분의 삼이나 식었건마는……또 조고마한 일이면 제 소원대로 하여 주는 것이 좋으리라 하여,
"그래라. 석 달이나 넘었는데 한번 가고 싶진들 않겠느냐. 가서 동무들이나 실컷 찾아보고 한 삼사 일 놀다가 오너라" 하고 몸소 정거장에 나가서 이등 차표와 점심 먹을 것과, 칼표 궐련까지 넉넉히 사주고, 가거든 아무아무에게 문안이나 하여라. 분주해서 편지도 못 한다고 하는 부탁까지 하였다. 그러므로 대체 월향은 이삼 일 후면 방글방글 웃으면서 돌아오려니만 믿고 있었더니, 지금 우선과 형식 양인이 이 편지를 보고 대단히 놀라는 양을 보매, 월향이가 이번 평양에 간 것에 무슨 깊고 무서운 사정이 있는 듯하여 가슴이 뜨끔하다. 노파는 불현듯 오 년 전 월화의 생각을 하고, 월향이가 항상 월화가 준 누런 옥지환을 끼고 있던 것을 생각하고, 어젯저녁 청량리 일을 생각하고 눈이 둥그래지며, 월향이가 왜 평양에 갔을까요 하고 두 사람이 노파에게 물으려던 말을 노파가 도리어 두 사람에게 묻는다. (이광수, 『무정』, 1995[1917], 동아출판사, 155쪽)
▲ 영국 담배 회사 윌스[W.D. & H.O. Wills]에서 생산 판매한 "파이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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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것은 낮뿐이다. 어둑어둑하면 그들은 이부자리를 걷어들인다. 전등불이 켜진 뒤의 18 가구는 낮보다 훨씬 화려하다. 저물도록 미닫이 여닫는 소리가 잦다. 바빠진다. 여러가지 냄새가 나 기 시작한다. 비웃 굽는 내, 탕고도오랑내, 뜨물내,비눗내.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도 그들의 문패가 제일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이다. 이 18 가구를 대표하는 대문이라는 것이 일각이 져서 외따로 떨어지기는 했으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 번도 닫힌 일이 없는, 한길이나 마찬가지 대문인 것이다. 온갖 장사치들은 하루 가운데 어느 시간에라도 이 대문을 통하여 드나들 수 있는 것이다. 이네들은 문간에서 두부를 사는 것이 아니라, 미닫이를 열고 방에서 두부를 사는 것이다. 이렇게 생긴 33번지 대문에 그들 18 가구의 문패를 몰아다 붙이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들은 어느 사이엔가 각 미닫이 위 백인당이니 길상당이니 써 붙인 한곁에다 문패를 붙이는 풍속을 가져 버렸다. 내 방 미닫이 위 한곁에 칼표 딱지를 넷에다 낸 것만한 내─ 아니! 내 아내의 명함이 붙어 있는 것도 이 풍속을 좇은 것이 아닐 수 없다. (이상李箱, '날개', 1936)
▲ 1907년경 홍콩 시내 사진엽서. 그림 가운데 갈색 건물 벽에 '칼표' 옥외 광고가 보인다.
불행히 시대에서 비켜 선 지고至高한 효녀 그 새악시 그래 돈 삼원에다 어느 신문 사회면 저 아래에 칼표딱지만한 우메구사[埋め草]를 장만해 준밖에 무엇이 소저小姐의 적막해진 무명지 억울한 사정을 가로맡아 줍디까. 당신을 공경하면서 오히려 단지를 미워하는 심사 저 뒤에는 아주 근본적으로 미워해야 할 무엇이 가로놓여 있는 것을 소저 그대는 꿈에도 모르리라. (이상李箱, '조춘점묘',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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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다시 칼표 구경은 못해
연초전매국에서는 전매령을 실시[1921.4.1.]한 이래로 시장에도 아무쪼록 전매국에서 제조한 권연을 판매하도록 여러가지로 운동을 하는 중이나 칼표와 기타 '뉴욕'같은 외국 권연을 먹는 사람이 많이 있는 까닭에 23일부터 전매국원 수십명이 시내에 있는 연초 소매상에게 있는 칼표를 전수 매입하였고 안합호安合號와 기타 도매상에게 있는 칼표도 전부 매입하여 시장에는 다시 칼표를 구경할 수 없는데 지금부터 절대로 외국 권연을 드려오지 못할 터이며 매입한 칼표는 얼마 동안 쌓아두었다가 다시 한꺼번에 방매할 터이라더라. (동아일보, 192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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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주新義州에는 무엇이 제일 많은가?
상금이라도 걸어 놓으면 좋겠다만은 급한 성미에 참을 수 있나. 신의주에는 무엇이 제일 많을가? 곡물? 화물? 어물? 아니다. 그러면 빼갈[중국술]? 칼표? 분탕[당면]? 아니다. 그러면 사기꾼? 노름꾼? 난봉? 아니다. 다 아니다. 밀수업자密輸入者하고 밀정密偵이다.
밀수입자가 어찌나 많은지 여기것을 저기로 저기것을 여기로 인삼 아편 연초 주류 기타의 것을 불알에 차고 발바닥에 넣고 된장통에 꽂고 밥그릇에 깔고 하여 어찌도 교묘히 수속을 해서 빼어 돌리는지 그 수도 많거니와 그 재주도 능하다고. 그러니까 의례로 밀정도 많겠지. 국경이고 하니까. 경찰 밀정, 관세 밀정, 전매국 밀정, ....
신의주 부윤府尹 모는 어느 때 안동현安東縣을 갔다가 칼표刀票를 한통 사서 그대로 들고오기는 좀--무엇 하니까 중국 인력거를 불러 타고 인력거 하대下臺 발디딛는 밑에다가 칼표통을 감추어가지고 다리를 건너는데 경험많고 찬찬한 세관관리는 몸을 뒤져보다가 인력거 발디딘 밑을 뒤졌다나. "빠가난다-"하고 욕을 건너며 칼표를 압수하려니까 그는는 "복구와-"(나는) 하고 '신의주부윤'이라 직책이 적힌 명함을 내밀었다나. 그러닛가 세관은 얼굴을 뚜러지게 보더니 "돈이 각구 고례와오- 슈"(돈 가지구 오슈) 하고 빼앗고 말았다 한다. 그래도 체면을 보아주었던지 동족끼리닛가 사정을 두엇든지 벌금문제까지는 가지 안았다고. 아- 창피-대창피. ('국경에서 얻은 잡동사니', 『개벽』, 192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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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표' 파이러트 중국내 광고포스터(1910년경)
"중국에서 수입되던 '파이러트Pirate' 담배는 해적이 칼을 들고 선 그림이 있다고 하여 일명 '칼표'라고 불렀는데 값이 비싸서 좀처럼 입에 대기가 힘들었다' [이서구 1899-1981, 종합예술인]
"내가 어렸을 때 홍콩에서 들어왔던 '칼표'가 아주 멋이 있어 맨 처음 친교를 맺었으나 학생 신분일 때는 주머니 사정으로 '투구표', '새표', '골든벨' 정도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양주동 1903-1977, 국어학자]
"하이칼라라고 불리던 멋쟁이는 금니와 금테 안경에 '칼표' 담배를 피워야 행세를 할 수 있었다. [이숭녕 1908-1994, 국어학자] (김정화, 『담배이야기』, 지호출판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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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garette cards are trade cards issued by tobacco manufacturers to stiffen cigarette packaging and advertise cigarette brands. Between 1875 and the 1940s, cigarette companies often included collectible cards with their packages of cigarettes. Cigarette card sets document popular culture from the turn of the century, often depicting the period's actresses, costumes, and sports, as well as offering insights into mainstream humor and cultural norms. ("Cigarette Cards", Wiki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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