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 - 무서록] 성城
아침마다 안마당에 올라가 칫솔에 치약을 묻혀 들고 돌아서면 으레 눈은 건너편 산마루에 끌리게 된다. 산마루에는 산봉우리 생긴 대로 울멍줄멍 성벽이 솟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여 있다. 솟은 성벽은 아침이 첫 화살을 쏘는 과녁으로 성북동의 광명은 이 산상山上의 옛 성벽으로부터 퍼져 내려오는 것이다. 한참 쳐다보노라면 성벽에 드리운 소나무 그림자도, 성城돌 하나하나 사이도 빤히 드러난다. 내 칫솔은 내 이를 닦다가 성돌 틈을 닦다가 하는 착각에 더러 놀란다.그러다가 찬물에 씻은 눈으로 다시 한번 바라보면 성벽은 역시 조광朝光보다는 석양의 배경으로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을 느끼곤 한다. 저녁에 보는 성곽은 확실히 일취이상一趣以上의 것이 있다. 풍수風水에 그을린 화강암의 성벽은 연기어린 듯 자욱한데 그 반허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