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맞고 보내며,
전차도 자동차도
이루 어디를 가고 어디서 오는지,
심히 분주하다.
네거리 복판엔 문명의 신식 기계가
붉고 푸른 예전 깃발 대신에
이리 저리 고개를 돌린다.
스텁―주의注意―꼬―
사람, 차, 동물이 똑 기예敎鍊 배우듯 한다.
거리엔 이것밖에 변함이 없는가?
낯선 건물들이 보신각을 저 위에서 굽어본다.
옛날의 점잔은 간판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그다지도 몹시 바람은 거리를 씻어 갔는가?
붉고 푸른 네온이 지렁이처럼,
지붕 위 벽돌담에 기고 있구나.
오오, 그리운 내 고향의 거리여! 여기는 종로 네거리,
나는 왔다, 멀리 낙산駱山 밑 오막살이를 나와 오직 네가 네가
보고 싶은 마음에……
넓은 길이여, 단정한 집들이여!
높은 하늘 그 밑을 오고가는 허구한 내 행인들이여!
다 잘 있었는가?
오, 나는 이 가슴 그득 찬 반가움을 어찌 다 내토를 할까?
나는 손을 들어 몇 번을 인사했고 모든 것에게 웃어 보였다.
번화로운 거리여! 내 고향의 종로여!
웬일인가? 너는 죽었는가, 모르는 사람에게 팔렸는가?
그렇지 않으면 다 잊었는가?
나를! 일찍이 뛰는 가슴으로 너를 노래하던 사나이를,
그리고 네 가슴이 메어지도록 이 길을 흘러간 청년들의 거센 물결을,
그때 내 불쌍한 순이는 이곳에 엎더져 울었었다.
그리운 거리여! 그 뒤로는 누구 하나 네 위에서 청년을 ××긴 원한에 울지도 않고,
낯익은 행인은 하나도 지나지 않던가?
오늘밤에도 예전 같이 네 섬돌 위엔 인생의 비극이 잠자겠지!
내일 그들은 네 바닥 위에 티끌을 주으며……
그리고 갈 곳도 일할 곳도 모르는 무거운 발들이
고개를 숙이고 타박 타박 네 위를 걷겠지.
그러나 너는 이제 모두를 잊고
단지 피로와 슬픔과 꺼먼 절망만을 그들에게 안겨 보내지는 설마 않으리라.
비록 잠잠하고 희미하나마 내일에의 커다란 노래를
그들은 가만히 들고 멀리 문밖으로 돌아가겠지.
간판이 죽 매어 달렸던 낯익은 저 이계二階 지금은 신문사의 흰 기가 죽지를 늘인 너른 마당에,
장꾼 같이 웅성대며, 확 불처럼 흩어지는 네 옛 친구들도
아마 대부분은 멀리 가버렸을지도 모를 것이다.
그리고 순이의 어린 딸이 죽어간 것처럼 쓰러져 갔을지도 모를 것이다.
허나, 일찍이 우리가 안 몇 사람의 위대한 청년들과 같이,
진실로 용감한 영웅의 단[熱한] 발자국이 네 위에 끊인 적이 있었는가?
나는 이들 모든 새 세대의 얼굴을 하나도 모른다.
그러나 “정말 건재하라! 그대들의 쓰린 앞길에 광영이 있으라”고.
원컨대 거리여! 그들 모두에게 전하여다오!
잘 있거라! 고향의 거리여!
그리고 그들 청년들에게 은혜로우라,
지금 돌아가 내 다시 일어나지를 못한 채 죽어가도
불쌍한 도시! 종로 네거리여! 사랑하는 내 순이야!
나는 뉘우침도 부탁도 아무것도 유언장 위에 적지 않으리라.
(조선중앙일보, 1935.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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