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沙場은 물새가 없이 너무 너르고 그 건너 포플러의 행렬은 이 개포의 돛대들보다 더 위엄이 있다. 오래 머물지 못하는 돛대들이 쫓겨 달아나듯이 하구河口를 미끄러져 도망해 버린다. 나무 없는 건넛산들은 키가 돛대보다 낮다. 피부빛은 사공들의 잔등보다 붉다. 물속에 들어간 닻이 얼마나 오래 있나 보자고 산들은 물 위를 바라보고들 있는 듯하다.
개포에는 낮닭이 운다. 기슭 핥는 물결 소리가 닭의 소리보다 낮게 들린다. 저 아래 철교 아래 사는 모터보트가 돈 많은 집 서방님같이 은회색銀灰色 양복을 잡숫고 호기 뻗친 노라리 걸음으로 내려오곤 한다. 빈 매생이가 발길에 채이고 못나게 추렁거리며 운다.
커다란 금휘장金徽章의 모자를 쓴 운전수들이 빈손 들고 내려서는 동둑[방죽]을 넘어서 무엇을 찾는 듯이 구차한 거리로 들어간다. 구멍 나간 고의[홑바지]를 입은 사공들을 돌아다보지 않는 것이 그들의 예의이다. 모두 머리를 모으고 몸을 비비대고 들어선 배들 앞에는 언제나 운송점運送店의 빨간 트럭 한 대가 놓여 있다. 때때로 풍풍풍풍…… 거리는 것은 아마 시골 손들에게 서울의 연설을 하는지 모른다.
여의도汝矣島에 비행기가 뜨는 날, 먼 시골 고장의 배가 들어서는 때가 있다. 돛대 꼭두마리의 팔랑개비를 바라보던 버릇으로 뱃사람들은 비행기를 쳐다본다. 그리고 돛대의 흰 깃발이 말하듯이 그렇게 하늘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럴 때에 영등포를 떠나오는 기차가 한강철교를 건넌다. 시골 운송점과 정미소에 내는 신년괘력新年掛曆의 그림이 정말이 되는 때다.
"마포는 참 좋은 곳이여!" 뱃사람의 하나는 반드시 이렇게 감탄한다.
흰 수염 난 늙은이가 매생이에서 낚대를 드리우지 않는 날을 누가 보았나?
요단강의 영지靈智가 물 위에 차 있을 듯한 곳이다.
강상江上에 흐느끼는 나룻배를 보면 '비파행琵琶行'의 애끓는 노래가 들리지 않나 할 곳이다.
뗏목이 먼저 강을 내려와서 강을 올라오는 배를 맞는 일이 많다. 배가 떠난 뒤에도 얼마를 지나서야 뗏목이 풀린다. 뗏목이 낯익은 배들을 보내고 나는 때에 개포의 작은 계집아이들이 빨래를 가지고 나와서 그 잔등에 올라앉는다. 기름 바른 머리, 분칠한 얼굴이 예가 어딘가 하고 묻고 싶어 할 것이 뗏목의 마음인지 모른다.
뱃지붕을 타고 먼산바라기를 하는 사람들은 저 산, 그 너머 산, 그 뒤로 보이는 하이얀 산만 넘으면 고향이 보인다고들 생각한다. 서울 가면 아무뎃 산이 보인다고 마을에서 말하고 떠나온 그들이 서울의 개포에 있는 탓이다.
배들은 낯선 개포에서 본本과 성명을 말하기를 싫어한다. 그들은 머리에다 커다랗게 붉은 글자로 백천白川, 해주海州, 아산牙山…… 이렇게 버젓한 본을 달고 금파환金波丸, 대양환大洋丸, 순풍환順風丸, 이렇게 아름답고 길상吉祥한 이름을 써 붙였다. 그들은 이 개포의 맑은 하늘 아래 뿔사납게 서서 흰구름과 눈빨기를 하는 전기공장의 시꺼먼 굴뚝이 미워서 이 강에 정을 못 들이겠다고 말없이 가버린다. (1936)
마포종점
밤 깊은 마포종점 갈곳 없는 밤 전차
비에젖어 너도 섰고 갈곳 없는 나도 섰다
강 건너 영등포에 불빛만 아련한데
돌아오지 않는 사람 기다린들 무엇하나
첫사랑 떠나간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저 멀리 당인리에 발전소도 잠든 밤
하나둘씩 불을 끄고 깊어 가는 마포종점
여의도 비행장에 불빛만 쓸쓸한데
돌아오지 않는 사람 생각하면 무엇하나
궂은비 나리는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은방울자매 김두수 작사·박춘석 작곡 1967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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