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이 남쪽에 있으므로 남대문이 서쪽으로 치우쳤다는 것은 남산의 허물이 아닐 것이다. 남산이 만일 서쪽으로 치우쳐 올바른 지위地位를 남대문에게 양보하였을진대 남산은 올바른 남산이 되지 못하였을 것이요, 남대문이 만일 이편의 비뚤어진 원망을 남산 보고 할진대 이것은 어린애가 어른 보고 먼저 낳았다고 원망하는 [것과 같다 해도] 지나친 배 없을 것이다.
남산이 남쪽에 가로막히어 서울터가 너무도 좁어졌다고 [하는 것은] ─ 산골 사람들이 들녘을 그리워 한 말이 아니면, 들녘 사람들이 산골을 비웃은 말이 아니면, 자동차, 전차만 타고 다닌 친구가 한 말인지도 모른다. 북악北岳에서 남산을 걸어갈 양이면 과연 그 얼마나 멀고 먼 것을 누구나 걸어본 사람은 느낄 것이다. 서울 북쪽에 사는 내가 남산을 찾아갈 때는 오히려 남산이 더더욱 가까웠으면 좋을 것 같았다. 남산이 북쪽으로 좀더 치우쳐 있어도 좋을 것 같다.
평지밖에 못달리는 전차가 이 남산을 못기어 올라가기로 남산에 해로운 것은 조금도 없을 것이다. 남산의 기슭을 휘돌아 나가는 큰 길을 자동차가 차지하고 갈 때 휘날리는 먼지에 눈을 못뜨는 것은 사람의 심정이 좋을 리 없을 것이다. 남산의 길이 높고 어려워 오직 발로 걷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경치는 오직 건강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건강한 자연일 것이다. 남산의 좋지 못한 점을 구태여 들추어 내고자 애를 쓰지 말지어[다]!
일이 없으니 한가할 수밖에. 두어 친구 짝을 지어 손에 손을 잡고 남산 잠두蠶頭 아랫길을 돌아 내려간다. 노란 개나리 꽃, 붉은 진달래가 새로 파란 잡숲과 묵은 솔새 사이에 곱게 곱게 피었다. 끝없는 바람 소리가 크기는 하였으나 위엄은 없다.
천년 비바람에 깎이고 바서질수록 고아보이는 저 잠두의 석벽 그 위에 내 일찍 올라 본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꽤 오랜 옛날 내 아직 책보를 끼고 학교를 다닐 때 일이었다. 다시는 가볼 수 없는 곳을 가보았던 것이다.
이 모퉁이 저 모퉁이 어서 쉰들 그늘 없고 앉을만한 자리가 없어 걱정이랴, 한만[閑漫]히 턱을 괴고 앉아서 잘 차려논 별장 안에 남들이 잘 사는 구경도 좀 하고, 옛날 남촌의 묵은 거리 이름과 동내 이름을 가르쳐 내보내는 것도 해롭지 않은 일이다.
이것 저것 다 집어치우고 중턱으로 올라가서 서울의 큰집들을 헤어보는 것도 또한 해롭지 않은데 그것도 싫증이 나면 약물터로 내려와 목이야 마르건 안마르건 우선 물 한 그릇씩을 쭉 들이킨다. 여기서 장기 두는 구경을 하고 다리를 실컷 쉬어가고는 머리 위로 뚫린 골작길을 맘놓고 올라간다. 거기를 무엇하러 가느냐고 물을진대 으늑한 길이 그저 가고 싶어 간다면 그만이다.
깊은 고랑을 따라 산비탈로 달린 길이다. 소나무를 돌아 잡숲 사이로 더 올라가나 하고 보면 내려가고, 더 내려가나 하고 보면 올라간다. 이렇게 길을, 결국 사람을 달어 올린다. 결국 다다른 곳은 와룡묘臥龍廟이다. 길은 여기서 막지고 만다. 오던 길이 끝났으니 곱집어 내려와도 다리가 너무 아파 못오고 해가 모자랄 염려도 없을 것이다. 담배를 피어물고 석벽에 의지하여 무한한 솔소리를 듣는 것도 좋으려니와 와룡묘이니 와룡선생[제갈량]을 두고 한번 생각해 보는 것도 과히 해롭지는 않을 것이다. 선생은 훌륭하신 이시다 하고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선생은 왜 중원을 통일하지 못하였소 하고 책략을 다시 한번 묻고 싶은 것도 아니다.
선생은 왜 무당의 밥거리 간판이 되었나 하고 엉터리 없는 포악을 할 이치는 있으랴. 요전은 이땅 백성들도 옳은 일을 한 사람을 숭배할 줄 알았소 하는, 결국은 제 생각 제가 한 것일 것이다. 그따위 멋쩍은 생각은 다 집어치우려면 치워도 좋고 도로 약물터러 내려와 약물을 먹든지 제멋대로 이 기슭 저기슭 어데로 가든지 좋다.
이럭저럭하다 해가 기울거든 어둡기 전에 집으로 돌아와도 좋다. 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왔다. 그러나 남산은 늘 눈앞에 있지 않은가! 지녁 안개[烟霞]에 싸인 남산이 남산이 가물가물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말없이 지켜가며 무한한 고독을 제 아무리 향락한들 과하다 할 사람이 있으랴!
옛사람의 이 남산은 물론 여기에만 그치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살림에 평화와 평안을 엄숙히 일러주는 지표가 되었었다. 이 산 위에 높이 타는 급한 봉화가 과연 그 얼마나 이 서울을 뒤집어 놓았는고! 이때야말로 서울의 남산은 서울의 무서운 산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라하여 허구한 날을 보내고 또 보내는 동안 남산으로 수壽를 빌던 그 아버지가 돌아가고 그 아들이 돌아가고 또 낳고 죽고 하였다.
남산 아래 인간에는 이런 변동이 있는 동안 남산에는 낙엽이 쌓이고 쌓였다가 흙이 되고 그 흙 위에 다시 낙엽이 쌓였다. 울창한 나무 아래 이 낙엽을 깔고 이 시절의 밤은 서울 젊은 자녀들의 연한 웃음 소리로 깨진다. 남산의 깊은 그늘은 오는 사람들의 비밀을 덮어 주고도 남음이 있을 것을 지나치게 믿는 사람들은 가끔 남산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일도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밤에 여자와 남산을 가는 것이 온당치 못할진대 남자와 갈 것이다. 같이 갈 남자가 없을진대 단장을 가지고 가도 좋고 단장도 없을진대 그대로라도 갔다 오는 것이 물건을 사지도 않으면서 상점을 기웃거리고 본정통本町通을 헤매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
달은 가을달이 좋다지만 이 남산의 달밤은 구태여 신선한 가을로만 미룰 것이 없을 것같다. 한종일 더위에 부대끼다가 저녁을 먹은 뒤인데 몇 친구가 작반하여 남산으로 줄달음을 친다. 맥주 몇 병 있으면 더욱 좋고 없으면 물론 별 수 없다. 잠두 아래 넓은 길을 거닐며 잠두 위에 솟은 달을 우러러 잠두 아래로 굴러내리는 송풍松風을 맞으며 하루의 더위를 깨끗이 씻어버리지 않는가. 혹은 노래도 불러보고 시도 읊어 보고 이 두가지에 한가지도 할 줄을 모르거든 산이 쩌렁쩌렁하게 소리를 질러보아도 좋다. 여기에다 술잔이나 있으면야 하고 술이 없는 것을 웃음으로 껄껄 훔쳐넘기는 것도 또한 운치가 있는 것이다. 이러다저라다 서퇴[暑退]가 훨씬 된 후에 집에를 돌아와 누을진대 그야말로 빈대가 웬만큼 물어서는 무는 줄도 모르고 잘 수가 있지 않은가!
남산의 달밤은 잠두에서 시작하여 잠두에서 끝난다고 할 수 있겠다. 전등에 가로질린 달빛을 찾고자 할진대 어찌 북산北山에는 찾을 곳이 없을까마는 남산에 있는 잠두의 절경이 다른데는 없는 것을 어찌하랴! 아무렇든 대도회大都會에서 이만한 자연을 자유롭게 향락할 수 있는 곳으로는 서울 같은 데가 드물 것이다.
봄의 꽃을 지난 남산 여름을 지난 남산 가을 단풍을 지난 남산이 이 남산에 눈이 내린다. 첫눈이 푸근히 온 날이거든 두 말 할 것 없이 남산으로 달음질 칠이다. 서울서 남산처럼 솔이 고루 굵은 데가 별로 없을 것이다. 이 크나큰 솔 위에 쌓인 눈을 천나무 만만 가지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관을 예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나무랄 것 별로 없는 이 남산에 물이 귀한 것은 유감이다. 내가 이 산에서 보고 싶은 것은 삼천 척尺 아니 삼백 척 아니 삼십 척 아니 단 삼 척이라도 폭폭 하나가 있었으면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분수에 넘치는 욕망일 것이다. 그렇게 크지 않아도 좋을 것이니 시냇물 한 만 흘러주었던 들 하는 것이다. 그 무슨 쓸데 없는 소리를! 목마르거든 여기저기 약물이 용솟음치니 이것이나 실컷 먹을 것이지 한다면 더 할 말 없이 그 또한 감사하다고 할는지!
나는 남산이 북부에서 가까운 것을 한恨은 커녕 먼 것을 오히려 한한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혼자 생각일 것이다. 어중이떠중이가 잔뜩 불은 대경성의 복판에 남산은 결국 들어안고 만 것 아닌가. (박노갑, '경성 산보장 로맨스: 남산공원',『조광』, 19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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