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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씨의 새해다짐

category 친절한 구보씨 2019. 3. 11. 10:01

▲ 1934년 갑술년 1월1일자 동아일보 1면

                                                              

 

일기


우리가 그날그날의 생활 기록을 갖는다는 것은 온갖 의미로 퍽이나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나는 새해부터 기어코 내 자신의 생활 기록을 가지기로 결심이다.

그러나 그것이 좋은 일임을 내가 요즈음 와서야 안 것은 물론 아니다. 나이 겨우 열아문 살 때, 나는 그것을 배워 알았던 것이나, 어느 해고 꾸준히 써 본 일이 없었다.

매양 섣달 대목에 이르면, '새해야말로-'하고 결심이 자못 굳다. 그러나 고작 달포나 보름을 못 가서 나는 내가 한 권의 일기장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만다.

그러길래, 이즈음 4, 5년 동안은 아주 '새해야말로-' 정도의 분발조차 깨끗이 단념하여 왔던 것이다. 한 달이나 두 달쯤 쓰다 그만둘 것이라면 애초부터 손을대지 않는 것이 상책이리라 하여서다.

그러나 요즈음, 나는 새삼스러이, 비록 보름이나 한 달밖에 계속이 못된다 하드라도, 일기란 하여튼 써지는 데까지 쓰고 볼 일이란 생각을 먹기에 이르렀다.

일기가 본래 띠우고 있는 사명말고도, 나처럼 문필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그날그날의 기록을 남겨둔다는 것이 여러 경우에 있어 많은 편의를 가져다 준다.

나는, 설혹 며칠씩 걸르는 일이 있드라도 그러한 것을 이루 개의치 않고, 참말 '새해야말로-' 다시 일기를 시작하여 보리라고, 마음에 작정이다. (박태원, 「신변잡기」, 1939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