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없고 따뜻한 날, 남향한 대청에는 햇빛도 잘 들고, 그곳에가 시어머니와 며느리, 귀돌 어멈과 할멈이, 각기 자기들의 일거리를 가지고 앉아 육십팔 원짜리 '콘서트'로 '제.오.띠.케' 의 주간방송, 고담이라든 그러한 것을 흥미 깊게 듣고 있는 풍경은, 말하자면, 평화- 그 물건이었다. (박태원, 『천변풍경』, 깊은샘, 340쪽)
▲ 1930년 미국에서 발매(350불)된 '콘서트 그랜드'
▲ 경성방송국(J.O.D.K)
▲ 정동길 구세군중앙회관 뒷편 경성방송국(JODK)
▲ 공개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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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오디케이(JODK), 지금부터 동경방송국의 음악을 중계방송하겠습니다. 러시아의 당대 일류 성악가 쿠론스키 씨의 '사랑의 갈등'이라는 세레나데의 독창입니다……"
오후 일곱시 이십분이다. 여기는 식당이다. 경옥이가 미리 경성방송국의 프로그램을 보아두었던지 식탁이 벌어진 뒤에 수프만 먹고 나서 맞은 벽의 시계를 쳐다보더니 살짝 나타나서 라디오의 스위치를 틀어 놓았다.
"야! 동경의 음악을 서울 안에서 밥 먹으며 듣는 세상이 되다니 우리 손자가 우리 낫세가 되면 비행기를 타고 화성이나 금성에 가서 댄스를 하고 거기 모던 걸을 데리고 와서 이 집에서 새벽 잠에 곤드라져 자게 되렸다……"
주인영감은 스푼을 놓고 내프킨으로 입을 씻으며 감개무량한 듯이 이런 소리를 한다.
"그야 이번 독일서 온 체펄린백호에서는 서백리아의 눈이 쌓인 벌판을 날아오면서 식당에서 샴페인을 마시며 무선전화[라디오]를 들었다는데……"
주정방이가 이런 소리르 꺼내니까 주인영감은 말을 자르면서
"응, 참, 이번 동경서 체펄린백호인가 하는 비행선을 구경했겠구려?"
하고 다시 두 자리 걸러 앉은 딸을 고개 빼내서 들여다보고
"너두 보았겠구나?"
하고 웃는다.
"가서 보았어요. 주 선생님하구!"
경옥이는 자기에게 묻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대답을 하며 살짝 나란히 앉았는 계모와 주정방이를 건너다보았다. "주 선생님하구!"라는 한마디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숙정이는 맏딸의 시선이 자기게로 오는 것도 얼굴이 따갑도록 알았고 옆에 앉았는 주정방이가 경옥이의 말에 웃으며 눈을 맞추는 것도 모르는 게 아니었으나 시치미를 뚝 떼고 얼핏 왼편에 앉았는 준섭이에게 무어라고 소곤소곤 말을 붙인다. 경옥이의 말은 귀에 아니 들어왔다는 눈치이다.
쿠론스키의 '사랑의 갈등'은 동경서 날아와서 샹들리에 밑에 화려히 빛나는 이 조그마한 식탁 위에서 낭랑히 춤을 추었다. 그리고 그 아래서는 '사랑의 갈등' 그것이 첫 막을 열려고 하는 것이다. (염상섭, 『광분』,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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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직원 영감은 본이 전라도 태생인 관계도 있겠지만, 그는 워낙 남도 소리며 음률 같은 것을 이만저만찮게 좋아합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깐으로는, 일년 삼백예순날을 밤낮으로라도 기생이며 광대며를 사랑으로 불러다가 듣고 놀고 하고는 싶지만, 그렇게 하자면 일왈 돈이 여간만 많이 드나요!
아마 연일을 붙박이로 그렇게 하기로 하고, 어느 권번이나 조선음악연구회 같은 데 교섭을 해서 특별할인을 한다더라도 하루에 소불하 십 원쯤은 쳐주어야 할 테니, 하루에 십 원이면 한 달이면 삼백 원이라, 그리고 일년이면 삼천…… 아유! 그건 윤직원 영감으로 앉아서는 도무지 생각할 수도 없게시리 큰 돈입니다. 천문학적 숫자란 건 아마 이런 경우에 써야 할 문잘걸요.
한즉, 도저히 그건 아주 생심도 못 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거야말로 사람 살 곳은 골골마다 있다든지, 윤직원 영감의 그다지도 뜻 두고 이루지 못하는 대원을 적이나마 풀어 주는 게 있으니, 라디오와 명창대회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완李浣이 대장으로 치면 군산群山을 죄꼼은 깎고, 계수를 몇 가지 벤 만큼이나 하다 할는지요. 윤직원 영감은 그래서 바로 머리맡 연상硯床 위에 삼구三球 짜리 라디오 한 세트를 매두고, 그걸 금이야 옥이야 하면서 방송국의 마이크를 통해 오는 남도 소리며 음률 가사 같은 것을 듣고는 합니다.
장죽을 기다랗게 물고는 보료 위에 편안히 드러누워 좋다! 소리를 연해 쳐가면서 즐거운 그 음악 소리를 듣노라면, 고년들의 이쁘게 생긴 얼굴이나 광대들의 거동이 눈에 보이지 않아서 유감은 유감이지만, 그래도 좋기야 참 좋습니다.
라디오를 프로그램 대로 음악을 조종하는 소임은 윤직원 영감의 차인 겸 비서 겸 무엇 겸 직함이 수두룩한 대복大福이가 맡아 합니다.
혹시 남도 소리나 음률 가사 같은 것이 없는 날일라치면 대복이가 생으로 벼락을 맞아야 합니다.
"게, 밥은 남같이 하루에 시 그릇썩 먹으먼서, 그래, 어떻기 사람이 멍청허먼, 날마당 나오던 소리를 느닷읇이 못 나오게 헌담 말잉가?"
이러한 무정지책에 대복이는 유구무언, 머리만 긁적긁적합니다. 하기야 대복이도 처음 몇 번은 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그렇게 정했으니까, 집에 앉아서야 라디오를 아무리 주물러도 남도 소리는 나오지 않는 법이라고 변명을 했더랍니다.
한다 치면, 윤직원 영감은 더럭,
"법이라니께? 그런 개× 같은 놈의 법이 어딨당가……? 권연시리 시방 멍청허다구 그러닝개, 그 말은 그리두 고까워서 남한티다가 둘러씨니라구……? 글씨 어떤 놈의 소리가 금방 엊저녁까지 들리던 소리가 오널사 말구 시급스럽게 안 들리넝고? 지상(기생)이랑 재인광대가 다아 급살맞어 죽었다덩가?"
이렇게 반찬 먹은 고양이 잡도리하듯 지청구를 하니, 실로 죽어나는 건 대복입니다. 방송국에서 한동안, 꼭 같은 글씨로, 남도 소리를 매일 빼지 말고 방송해 달라는 투서를 수십 장 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게 뉘 짓인고 하니, 대복이가 윤직원네 영감한테 지청구를 먹고는 홧김에 써보고, 핀잔을 듣고는 폭폭하여 써보내고 하던, 그야말로 눈물의 투서였던 것입니다.
윤직원 영감의 불평은 그러나 비단 그뿐이 아닙니다. 소리를 기왕 할 테거든 두어 시간이고 서너 시간이고 붙박이로 하지를 않고서, 고까짓 것 삼십 분, 눈 깜짝할 새 감질만 내다가 그만둔다고, 그래서 또 성홥니다.
물론 투정이요, 실상인즉 혼자 속으로는, 그놈의 것 돈 십칠 원 들여서 사놓고 한 달에 일 원씩 내면서 그 재미를 다 보니, 미상불 헐키는 헐타고 은근히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또 막상 청취료 일 원야라를 현금으로 내주는 마당에 당해서는 라디오에 대한 불평 겸 돈 일 원이 못내 아까워서,
"그까짓 놈의 것이 무엇이라구 다달이 돈을 일 원씩이나 또박또박 받어 간다냐?"
"그럴 티거든 새달버텀은 그만두래라!"
이렇게 끙짜를 하기를 마지않습니다. (채만식, 『태평천하』,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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