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보는 쓰디쓰게 웃고 다방 안으로 들어선다. 사람은 그곳에 많았어도, 벗은 있지 않았다. 그는 이제 이곳에서 벗을 기다려야 한다. 다방을 찾는 사람들은, 어인 까닭인지 모두를 구석진 좌석을 좋아하였다. 구보는 하나 남아 있는 가운데 탁자에가 앉은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는 그곳에서 엘만의 '발스 센티멘털'을 가장 마음 고요히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선율이 채 끝나기 전에, 방약무인傍若無人한 소리가, 구포씨 아니오....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934)
Mischa Elman, Valse Sentimentale (F. Schubert; arr. by Sam Fran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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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있을 때다. 지금보다도 더 단순한 그때 나에겐 견디기 어려운 고생이 뒤를 이어 습래하였다. 한번은 사흘이나 두문불출한 나를 은사 B박사가 찾아주었다. 나는 그에게 손목을 끌리어 그의 집 팔라로 갔을 때 B박사는 이내 성경을 내어 읽어 주고 기도를 하자 하였다. 나는 머리를 숙이는 대신 도리질하며 "싫어요" 하였다. 박사는 한참이나 내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이번에는 유성기가 섰는 데로 갔다. 그리고 그떄 B박사가 걸어준 판은 엘만의 바이올린 '오리엔탈'인데 나는 그때처럼 잊을 수 없는 음악을 들은 적은 없었다. (이태준, '음악과 가정', 『중앙』, 1934.6.)
Mischa Elman, Orientale (Cesar Cui,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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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만은 내가 싫어하는 제금가였었는데 그의 꾸준히 지속되는 성가의 원인을 이번 실연을 듣고 비로소 알았오. 소위 엘만톤이란 무엇인지 사도의 문외한인 이상으로서 알 길이 없으나 그의 슬라브적인 굵은 선은 그리고 분방한 데포로마시옹은 경탄할만한 것입디다. 영국 사람인줄 알았드니 나중에 알고 보니까 역시 이미그란트입디다. (이상李箱, 동경 히비야 공원 공회당에서 미샤 엘만의 공연을 감상한 후 김기림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1937.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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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만에 상을 만난 지난 3월 스무날 밤 동경 거리는 봄비에 젖어 있었다. 그리로 왔다는 상의 편지를 받고 나는 지난 겨울부터 몇 번인가 만나기를 기약했으나 종내 센다이를 떠나지 못하다가 이날에야 동경으로 왔던 것이다.
상의 숙소는 구단아래 꼬부라진 뒷골목 이층 골방이었다. 이 ‘날개’ 돋친 시인과 더불어 동경 거리를 산보하면 얼마나 유쾌하랴고 그리던 온갖 꿈과는 딴판으로 상은 ‘날개’가 아주 부러져서 기거도 바로 못하고 이불을 둘러쓰고 앉아 있었다. 전등불에 가로비친 그의 얼굴은 상아보다도 더 창백하고 검은 수염이 코밑과 턱에 참혹하게 무성하다. 그를 바라보는 내 얼굴의 어두운 표정이 가뜩이나 병들어 약해진 벗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보아서 나는 애써 명랑을 꾸미면서,
"여보, 당신 얼굴이 아주 페이디아스의 '제우스 신상' 같구려.”
하고 웃었더니 상도 예의 정열 빠진 웃음을 껄걸 웃었다. 사실은 나는 뒤비에의 '골고다의 예수'의 얼굴을 연상했던 것이다. 오늘와서 생각하면 상은 실로 현대라는 커다란 모함에 빠져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간 골고다의 시인이었다.
암만 누우라고 해도 듣지 않고 상은 장장 2시간이나 앉은 채 거의 혼자서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엘만을 찬탄하고 정돈에 빠진 몇몇 벗의 문운을 걱정하다가 말이 그의 작품에 대한 월평에 미치자 그는 몹시 흥분해서 속견을 꾸짖는다. (김기림, '고故 이상의 추억', 『조광』, 1937.6.)
▲Mischa Elman 1926. (출처: https://url.kr/WGIQ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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