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문외彰義門外
무이밭에 흰나비 나는 집 밤나무 머루넝쿨 속에
키질하는 소리만이 들린다
우물가에서 까치가 자꾸 짖거니 하면
붉은 수탉이 높이 샛더미 위로 올랐다
텃밭가 재래종의 임금林擒나무에는 이제도 콩알만한 푸른
잎이 달렸고 히스무레한 꽃도 하나 둘 피여 있다
돌담 기슭에 오지항아리 독이 빛난다
(백석, 『사슴』,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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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더워질수록 여름이란 의식이 뿌리깊이 박히고 여름 의식이 깊어질수록 잊었던 과거의 '여름'이 하나, 둘씩 기억에 떠오른다. 경성의 여름이 답답하다니 말이지 어디 가서 시원한 바람을 쏘일 곳도 없다. 그것[은] 물론 돈 없는 사람의 말이다마는 그렇다니 말이지 나는 경성의 여름을 서늘하게 지내본 기억은 없다. 작년 여름은 세검정에서 보냈다. 그러나 삼각산 속에서 흘러내리는 물에 몇 번 목욕하던 청량미가 있었을 뿐이요 온 여름을 보내기에는 더위에 볶이고 밤에는 빈대에게 뜯겼다. 더구나 자하紫霞 문턱을 날마다 드나드는 데는 아침, 저녁으로 땀을 여간 흘리지 않았다.
문 안에서는 세검정, 세검정하고 탁족濯足하기 좋고 시원한 곳으로 알지만은 실상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청량미도 모르고 탁족회도 모른다. 청풍명월은 임자가 없어서 누구나 용지불갈用之不渴이요, 취지무궁取之無窮이라 한 것은 언뜻 생각하면 그럴듯한 말이다마는, 그러나 동파東坡선생 당시엔들 어찌 누구나 다 그럴 수가 있었으랴? 그렇다면 누구나 지금에는 만만하지 않다. 세검정에서 탁족하고 소림사少林寺 녹림 밑에서 돗자리를 펴고 가만히 누었으면 얼마나 시원하랴마는 그런 팔자를 누가 가졌느냐 말이다. 도리어 그 근처 사람들은 하루도 때의 공구지계供口之計에 급급하여 요새 같은 하절단야夏節短夜에도 새벽 두 시나 세 시부터 일어나서 오후 일곱, 여덟 시까지 제지운동製紙運動¹을 하지 않으면, 과목果木을 거르랴 문안에서 인분人糞을 퍼 짊어지고 자하문 턱을 하루에도 세 번씩 넘기 때문에 땀은 남[보다] 곱쟁이를 흘리고 사는 터이다. 자하문 밖에는 과수果樹가 많고 그 과수는 대개 산비탈 돌자갈 틈 바구니에 재배裁培 된 것만 보더라도 그곳 사람의 생애가 얼마나 한지를 족히 알지 아니한가? (이기영, '하등만필', 동아일보, 1928.7.25.)
1 세검정이 포함된 종로구 신영동 일대에는 1892년까지 조지서造紙署가 있었으며, 1970년대까지도 가내수공업 중심의 제지공장들이 있었음. 현재의 세검정은 1941년에 인근 제지공장의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77년에 복구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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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시간이 되자 사이렌은 또 울렸다. 그들은 네 시간 노동 후에 한 시간의 아침 휴식시간을 비로소 얻게 된 것이다.
모터와 사이렌! 이것은 이 공장촌의 수백 년의 역사 후에 처음 생긴 것이었다. 이 공장촌에도 비로소 임하여 위선 모터와 사이렌이 들어왔다. 전에 없던 근대식의 공장 사무실과 종이 창고가 덩그랗게 섰다. 양복쟁이가 왔다 갔다 하고 자전거 마차 인력거가 쉴 새 없이 연락부절하였다. 미구에는 또 이 마을 한 가운데에다 커다란 공장을 짓겠다 하며 그때는 전등 전화도 가설된다 한다. 그래 이 마을 사람들은 전에 없던 새 기계가 생겨나 그 공장이 차차 번창함을 따라서 자기네들도 문명의 혜택을 만히 입을 줄 알고 은근히 기뻐하였다. (이기영, '종이 뜨는 사람들', 『대조』, 19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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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문 밖 살림을 차린 뒤로[부암동 325-2] 안잠자기 때문에 여간 머리를 앓지 않았다. 개똥에 굴러도 ‘문안이 좋지 그 두메에 누가……’ 하고 그들은 처음부터 오기를 싫어한다. 일갓집들의 연줄 연줄로 간신히 하나 구해다가 놓으면 잘 있어야 한두 달 그렇지 않으면 단 사흘이 못되어 봇짐을 싼다. 속살 까닭은 여러 가지겠지만 드러내 놓는 이유는 한결같이, ‘뻐꾹새와 물소리가 구슬퍼서…’ 한다. 불행한 인생의 길을 걷는 그들에겐 집을 에두르는 시냇물 노래와 뒷산 속에서 새어 흐르는 뻐꾸기의 울음도 시름을 자아낼 뿐인 모양이다. 어둑어둑한 소나무 그늘 밑에 그들은 하염없는 눈물을 씻게 되고 햇빛에 고요히 깃들인 풀그림자도 까닭 없이 그들의 맘을 군성거리게 하는 듯. 도회의 번잡과 조음이 도리어 그들의 신경을 무디게 해 주고 심장을 지질러 주는 듯.
아무튼 안잠자기가 붙어 있지 않았다. 병약한 안해의 단손으로는 도저히 살림을 꾸려나가는 수가 없고 사람은 있어야 될 판이라, 나이 늙든 젊든, 일을 잘하든 못하든 안잠만 자 준다면 우리는 감지덕지로 위해 올리는 판이었다. (현진건, '서투른 도적',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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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리지리하던 장마가 그치고 난 며칠 뒤 명랑한 달빛이 내려 비치는 초저녁이었다.
창의문 고개를 넘어서까지는 설마 하고 다소 불안을 느끼기는 했지만 장마 뒤끝이라 어느 정도까지 짐작한 일이 있거니와 민촌[이기영]과 송영, 윤기정 삼 인이 일거 대습격을 나왔다.
"아, 이렇게 먼 데서 살아?"
"아, 밤에는 어떻게 다녀?"
"공기는 좋은데…."
"좋다, 달빛 어린 북악산!"
일행은 오기가 바쁘게 웃양복을 벗어부친다.
(중략)
음력으로 정녕 십육, 칠 일 날 밤이었으므로 달은 몹시 둥글다. 장마가 그친 뒤의 달이라 가을 달처럼 한껏 맑다. 푸른 달빛은 마루 끝에 처마 그늘을 던졌다. 울타리 밑으로 흐르는 개울물 소리 이따금 어느 풀포기에선지 나뭇잎에선지 가을도 아니련만 벌레 우는 소리가 들린다. 실로 서울 시내 바닥에선 만금을 주고도 사지 못할 양미만괴凉味萬魁의 것이다. (엄흥섭, '탈모주의자', 조선일보, 1937. 7.9~11)
또 한 코스. 전차를 타십시오. 효자동 종점에서 내려서 자하문 밖을 나서십시오. 능금꽃은 만발하고 맑은 물은 백옥 같은 바위가 깔린 바탕 위로 흘러내립니다. 고개를 넘던 진땀도 이 물소리 한 번이면 맑게 풀릴 것입니다. 세검정도 좋고 석불 뫼신 언덕 밑에 가 두 사람이 '변심않기' 맹세를 드리는 것도 기념될 만한 일입니다. 돌 틈의 가재를 잡다가 옷자락이 젖었다고 걱정은 마십시오. 산들산들 봄바람은 비단 치마자락 젖은 것 쯤은 삽시간에 말려 놓고 말 것입니다. 이 근처에서는 꽃을 좀 꺾어 가지고 와도 큰 꾸지람이 없을 듯 빨갛게 핀 진달래나 철죽을 한 줌씩 꺾어 가지고 돌아오시어도 무방합니다. 밥 파는 곳도 한 집 있습니다. 다만 밥값만은 미리 묻고 사 자시기를 바람니다. 귀로는 홍제원으로 나가시어 버스를 타시면 무학재를 넘어 현저동에 이릅니다. 요금은 시내전차승환권을 껴서 8전입니다. 수석의 운치와 산속의 빛을 즐기시는 데는 만점! 다만 길이 그리 멀지는 않으나 왕복 15리 길은 될까 하니 뒤축 높은 구두를 신으신 아가씨에게는 비장한 결심을 강요하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이 코스는 출발점과 종점을 거꾸로 돌려도 좋습니다. (이서구, '애인 데리고 갈 하이킹 코스', 『삼천리』, 19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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