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어느 아침. 날이 맑다. 그러나 대기 중에는 뽀유스름한 수증기가 있다. 첫여름의 빛이다. 벌써 신록의 상태를 지나서 검푸른 빛을 띠기 시작한 감나무, 능금나무 잎들이 부드러운 빛을 발하고 있다.
나는 뚱땅뚱땅하는 소고 소리와 날라리 소리를 들었다.
"오늘이 사월 파일이라고 조의일 하는 사람이 길놀이 떠나는 거야요."
이것이 작은 용이의 설명이다.
다섯 살 먹은 딸 정옥이가 작은 용이를 끌고 소리나는 데로 달려간다.
"조심해서 가!"
하고 나는 돌비탈길을 생각하면서 소리를 지르고서는 여전히 원고를 쓰려 하였으나, 소고 소리와 날라리 소리가 점점 가까와 올수록 나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허, 나도 마음이 뜰뜨는군."
하고 혼자 웃고, 나는 대팻밥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끌고 나섰다.
개천가에는 아낙네들이며 계집애들이 모두 새 옷을 입고 나서서 길놀이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분홍 치마에 노랑 저고리, 자주 댕기, 흰 행주치마를 입고 하얗게 분을 바른 계집애들의 모양도 인제는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언마는, 자하문이라는 문 하나를 새에 둔 여기서는 아직도 옛날 조선 정조를 보전한 것이 기뻤다.
세검정 다릿목 술집 앞에, 흰 겹바지 저고리에 대팻밥 모자를 쓴 패들이 사 오십 명이나 모여섰다. 모두들 벌써 얼굴이 벌건 것은 얼근히 술에 취한 것과 이날의 기쁨의 흥분에서인 듯. 사오십 되어 보이는 이도 있으나, 대부분은 이십에서 삼십 내외의 한창 혈기 넘치는 패들이요, 십 사오 세밖에 안 되어 보이는 소년도 오륙 명 있으나, 그들도 어른들 모양으로 흰 바지 저고리에 대팻밥 모자를 썼다. 더러는 옥색 관사 조끼로 모양을 낸 이도 있고, 모시인가 싶은 양복 외투 모양으로 생긴 두루마기를 걸쳐서 점잔을 뺀 이도 있다.
"좋다."
"얼씨구."
소고를 든 사람, 장구를 메인 사람, 날라리를 부는 사람 한패가 앞장을 서서 소리를 하고 덩실덩실 춤을 춘다.
술집에서 일행이 다 나오기도 전에 춤추는 패는 벌써 행진을 시작한다. 옥색 조끼 입은 애숭이 하나도 제법 멋들어지게 춤을 춘다. 사월 파일과 오월 단오 이것이 그들의 일년의, 큰 명절이다. 조의일은 봄에서 가을까지 밖에 없기 때문에, 설 명절이나 대보름 같은 것은 조의일꾼의 길놀이 기회는 못 된다.
"이번에는 새 절로 간대요. 작년에는 백운대白雲臺까지 가서 들 놀고 왔는데."
"오고 가는 길에 술주막은 그냥 지내지는 않는 거야요. 오고 가는 것이 놀이거든요──. 그러니까 길놀이라는 거야요."
이것이 작은 용이의 설명이었다.
"날날 닐닐."
"뚱땅뚱땅."
소리에 맞추어 덩실덩실, 으쓱으쓱 춤들을 추는 양을 보니. 나도 어깨가 으쓱으쓱하여졌다. 그들은 가난, 고생, 날마다의 노동의 피곤, 기타 인생의 모든 시끄러운 걱정, 근심도 다 잊고, 저 두루마기 입어야 하는 지식계급의 이른바 인사니 체면이니 다 집어치우고 목청껏 소리 지르고, 마음껏 흥 내 어서 익살부리는 것이 기뻤다.
나는 어린 아이들의 손목을 잡고 그들의 틈에 끼어서 행렬이 진행하는 대로 따라 섰다. 그러나 그들이 힐끗힐끗 색다른 나를 바라볼 때에, 나는 나의 존재가 그들에게 파흥이 됨을 느꼈다.
나는 한 번 두 팔을 벌려서 우쭐우쭐 춤을 추어보고 싶었으나, 나의 용렬함이 그것을 허하지 아니하였다.
나는 파흥이 되었다. 나는 아이들을 사오인(그들은 나를 따르는 무리들이요. 또 나와 같이 이 행렬에는 어울리지 아니하는 무리였다) 데리고 가게로 가서 '미루꾸'[밀크]를 사서 그들에게 하나씩을 주어 친선하자 하는 뜻을 표하고, 나도 그들과 같이 '미루꾸'를 먹으면서,
"우리들은 개천 저쪽으로 가서 놀아, 응."
하고 앞섰다.
행렬은 개천 남쪽 큰길로 갈 것이다. 우리 조무라기 일행은 개천 북쪽으로 가자는 내 의견이다.
"저쪽으로 가면 다 보일 꺼 아냐?"
하는 내 설명에 그들은 순순히 나를 따라왔다. 다섯 살, 일곱 살, 여덟 살, 열 살, 열 네 살, 마은 여덟 살, 이것이 우리 일행의 나이 차례였다.
내라는 것은 이 패들에게도 파흥이 될는지 모른다. 과자를 사 주는 것, 이야기를 해 주는 것, 저희들의 동무의 아버지라는 것 밖에는 그네는 내게 아무 흥미를 가질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을 어려워한다. 그들의 비위를 거스를까 보아서, 그들의 흥을 깨뜨릴까 보아서 겁을 내인다.
그들은 또 내가 어른이라고 하여서, 동무의 무서운 아버지라고 하여서 나를 어려워 할 것이다.
"자, 우리, 여기 앉아서 놀자구. '미루꾸' 먹구 놀자구."
나는 가장 모든 어른티를 떼어버리고, 바위 밑 볕 잘 드는 석비레 판에 먼저 달음박질 가서 두 다리 뻗고 펄썩 주저앉았다.
"여기 소꿉장난하기 좋다. 우리 접때에 여기서 소꿉장난하구 놀았어."
하고 점숙이라는 계집아이가 말을 내었으나, 다른 아이들은 나를 힐끗힐끗 바라보고는 아무리 하여도 흥이 나지 아니하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미루꾸'통들을 떼어서 호루라기랑, 팽이랑, 토끼랑, '헤이다이상'[군인]이랑 이런 덤 장난감을 가지고 한참 동안 재깔대고 즐겨하였으나 내게 대하여서는 아무 흥미도 없는 모양이었다. 다만, 내 딸 정옥이가 이따금,
"아버지."
하고 풀꽃이랑 바둑돌이랑을 집어들고는 달려 올 뿐이었다.
길놀이꾼들의 행렬은 물문[홍지문]으로 꾸역꾸역 나오기를 시작하였다. 문루는 다 무너지고 홍예만 남은 옛 성문도 이 자리에는 어울리는 것 같았고, 까치집 있는 늙은 아까시아에 싱겁게 생긴 허연 꽃들이 축축 늘어진 것도 제격인 것 같았다.
"물문 밖 술집에서도 오늘 안줄 많이 만들었대요. 조기랑, 문어랑, 쑥갓 이랑, 미나리랑 많이 사왔어요."
작은 용이는 길놀이꾼들이 물문 밖 술집으로 밀려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설명하였다. 작은 용이도 앞으로 사오 년만 지나면 사월 파일에 하얀 새 옷 갈아입고, 새 벙거지에, 새 운동화에, 옥색 조끼까지도 떨어뜨리고, 소고 들고 춤추면서 마음대로 술집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뚱땅뚱땅. 자 다들 가자, 길 늦어간다."
하는 소리가 개천 건너편으로부터 서 울려 온다. 텁텁한 막걸리를 쭉 들이키고 손등으로 입을 쑥 씻는 광경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여서, 나는 또 한 번 그들의 속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날날날날 날라리."
"두리둥 둥 둥 둥 둥 둥."
"얼씨구 얼싸."
길놀이꾼은 다시 행렬을 시작한다. 두서너 잔 술이 더 뱃속에 들어간 놀이꾼들의 흥은 더욱 높은 것 같아서 팔과 다리가 더 기운차게 너울거렸다. 소고와 장구가 터지라 하고 두들겨대고, 열 댓 살 된 옥색 조끼 입은 소년조차 소고 하나를 얻어 들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 소년은 자라면 훌륭한 놀이꾼이 될 것이었다.
우리 일행인 조무라기 패도 덩달아서 재깔대고 까닥거렸다. 그들은 개천 건너편 어른네가 노래하고 춤추고 가는 행렬과 평행으로 개천 이쪽으로 이동하기를 시작한다. 나는 잊어버리고.
두 패에게서 다 잊어버림을 받은 나는 말없이 조무라기 패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내게는 벌써 흥은 없었다. 다만 어린 것들을 혼자 내버려 두기가 어려워서 보호자의 직책으로 따라선 것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따라서 옥천암玉泉庵까지 갔다.
딸 정옥은 작은 용이가 꺾어 준 아까시아 꽃을 해수관음 앞에 놓고 합장하였다. 나도 합장하고 열 번 관세음보살을 염하였다. 다른 아이들은 내가 하는 양을 보고 납신 절들을 하였다. 해수관음은 개천가 큰 바위에 부조浮彫로 새긴 관세음보살상이다. 작자 미상, 연대 미상. 그러나 그 기상으로 보거나 수법으로 보거나 신라적 제작이라고 한다.
" 선생님, 서양 사람이 말을 타고 이 앞으로 지나가다가 말 발이 붙어서 안 떨어졌대요."
"암만 비가 와도 부처님 몸에 물이 안 뛴대요."
작은 용이는 이 관음상에 관하여서 이러한 설명을 하였다. 관세음보살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만병과 만죄의 근원이 되는 탐진치貪瞋癡의 뿌리를 빼어버리시는 대신통력은 믿을 줄 모르고, 앞으로 지나가는 말발굽 붙이는 그러한 영험을 믿으려 하는 중생의 마음이 슬펐다.
길놀이 패들은 건너편 산기슭을 돌아 해수관음 맞은편까지 와서 머물렀다.
여전히 소고를 치고 춤을 추고하지마는, 누구의 눈이나 다 한 번씩은 관음상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한두 사람 모자를 벗어 분명히 관음상에 경의를 표하였으나, 다른 사람들은 슬쩍슬쩍 힐끗힐끗 관음상을 볼 뿐이요, 특별히 경의를 표하는 행동은 없었다. 어떤 젊은, 얼굴이 흰 사람은 얼른 관음상에 고개를 끄덕하고는, 남의 눈에 뜨일 것을 겁내는 듯이 얼핏 몸을 돌렸다.
'관세음보살.'
하는 생각은 누구의 마음에나 난 듯하였다. 적어도 '혹시나 버력을 받더라도' 하는 생각이라도 있어서 속으로는 한번 비는 모양이었다. 잠시 북 소리와 날라리 소리가 작아졌다. 어떤 사람은 관세음보살이야 있거나 말거나 하는 태도로 여전히 팔다리를 놀려서 춤을 추었으나,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죽음이라든가, 전생이라든가, 내생이라든가, 인과응보라든가 하는 생각이 지나가는 것은 숨길 수 없는 듯하였다. 그만하면 고만이다. 그것이 관세음보살의 대원력이 발한 것이요, 이 관세음상을 조성한 이름 모를 옛사람의 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절에 올라가 보아."
딸은 내 손을 끌었다.
"오늘은 파일이 돼서 손님이 많이 왔어요. 떡도 많이 쩠어요. 모두 안손님들이야요."
중의 집 코 흘리는 아이를 업은 열 네 살이라는 퍽 약아 보이는 계집애가 나를 쳐다보며 설명을 하였다.
절 주지가 돈이 많아서 도둑이 들기 때문에 담을 놓이 쌓고 방방이 쇠방망이를 하여 두고, 설렁줄을 매고, 내의가 번갈아서 잠을 잔다는 말은 작은 용이의 설명으로 미리 알았었다. 법당은 나지막하나 건축도 얌전하고 단청도 새로왔다. 아담한 인상을 주었다.
우리가 약사여래 앞에 만수향을 피우고 절하고 절에서 나올 때에는 길놀이 패들은 채석장 저편 굽이를 돌고 있었다. 관세음보살로 하여서 파흥되었던 것이 회복된 모양이어서 춤추는 팔들이 어지럽게 들먹거리는 젓이 보이고,
"뚜드락 뚜드락."
하고 북, 장구 소리와 날라리 소리가 저 세상에서 오는 것 모양으로 들려왔다. 옥색 조끼들이 더욱 유난히 눈에 띄었다.
"비조비, 조리조비."
하는 꾀꼬리 소리가 아까시아 수풀에서 들렸다.
"우리 뻐꾹대 하러 가, 응."
하고 작은 용이가 앞을 서서 솔밭 속 바윗등으로 다람쥐같이 날쌔게 기어오른다. 아이들의 흥미는 인제 뻐꾹대 꺾으러 가는 용사에로 쏠리고 말았다. 뻐꾹대의 붉은 솔과 그 씁쓸한 맛이 생각킨다. 나도 뻐꾹대를 한 대 먹고 싶었다.
길놀이 패들은 홍제원으로 가는 고갯목을 넘어선 모양이어서, 내가 귀를 기울여도 그 소고 소리와 날라리 소리는 들리지 아니하였다. 마치 영원한 곳으로 지나가버린 것 같아서 천지가 갑자기 고요해진 것 같았다.
내가 다시 아이들에게로 고개를 돌린 때에는 아이들은 갓 핀 아까시아 꽃 들을 한 송이씩 꺾어 들고 맛나게 그 하얀 꽃을 먹고 있었다.
"이거 하나 잡소아 보세요."
약게 생긴 아이 업은 계집애가 내게도 아까시아 꽃 한송이를 주었다. 나도 그 꽃을 따서 먹어 보았다. 달큼하고 날콩 씹는 모양으로 배틀하였다.
나는 몇 갠지 모르게 아까시아 꽃을 씹으면서 옥색 조끼 입고 소고 들고 춤추던 젊은 패들을 생각하였다. (『학우구락부』, 19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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