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최노인전 초록

category 친절한 구보씨 2019. 3. 14. 13:34

▲ 박영효


 한번 알고 보면 분명히 그들은 신기하게 놀라고 말 것이, 이 최노인은 정녕한 한국시대韓國時代 관비유학생의 한명이었다... 조선 안에서 삭발령이 나린 것이 그게 을미년(1895)이었으니까, 갑오년(1894)에 일본으로 건너가 머리를 깎은 노인은, 그것만으로도 남들보다 일년 먼저 개화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관비유학생으루 뽑힌 사람이 도합 백여명인데, 박영효에게 인솔 받아 서울을 떠날 때가 장관이었습니다. 시방같으면야, 무어 노좀이니, 무어, 히까리니 허구, 급행차가 있는 세상이라, 타기만하면 그대루 뚜루루 부산까지 데려다 주구, 게서 배 타면 그만인게지만, 그떄루 말허면 경부선은 이를것두 없구, 경인선두 개통 안됐을 때니, 천생 제물포까지 걸어가야만 할 밖에...."
 

▲ 후지카와 유키치가 새겨진 일본화폐 1만엔


인물이기로 말하자면 복택유길福澤諭吉[후키자와 유키치]의 존재가 또한 뚜렷한 것이었다. 

"동경으루 건너가자, 한국유학생은 모조리, 경응의숙慶應義塾에 입학을 했는데, 알아보니까, 지금두 그 학교가 있다더군 그래. 헌데, 호옥 아는지 모르겠오만는 당시 총장이 복택유길이라, 이이가 또 인물이거던. 우리 백여명을 하나씩 차례루 불러다가 성명 삼자에 자(字)까지 묻고나서, 다음에 "무엇을 배우러 오셨오?" 그러더란 말이야. "예에, 정치학을 배우러 왔지오.", "예에, 나두 정치과에 들어 가겠오.", "예에, 정치과요.".... 허구, 백여명 유학생이 여출일구로 정치과를 지망하는데는 복택선생도 일변 어이가 없구, 일변 딱허구, 그랬던 모양이라, 후우, 한숨을 쉬구나서, "그야, 나라 정사를 해나가는 사람도 물론 있어야 되겠지만, 당신네들 같이, 모처럼 뽑히온 유능한 청년들이 모조리 정치가가 되기만 원한다는건 옳지 않은 생각이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하여 자고로 선비를 그중 으뜸에 놓고, 장사치를 뒤로 돌렸으니, 선빈즉슨 말하자면 정치가라, 그래 모두 그 까닭에 그걸 원하나 보오마는, 우리 일본이나, 귀국이나 다 함께 구미선진국 따라가려면, 정치만 가지고는 안될 말이라, 똑 크게 공업도 일으키고, 실업 방면으로도 활약을 해야 할 노릇인데, 자아, 경제과 같은데 들어가 공부할 생각은 없오?".... 일껀 일깨주어두 그저 한결같이 "난, 정치과요." "나두 정치과요.".. 지금 생각허니, 딴은 복택선생의 말이 옳은 말이라, 당시에 그처럼 아무것두 모르구 날뛰던 것을 생각헐 말이면 지금두 제풀에 낯이 다아 뜨겁습니다."

▲ 윤치호


▲ 월남 이상재 장례

.....(중략)

 

"아이, 이꼴 저꼴 안보려면, 오늘 밤 안으루래두 죽어버려야..."
하고 그러한 말을 하고 그러는 것이었으나, 그는 그래도 윤치호옹보다는 좀 더 오래 살 것을 은근히 계획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여,

"근대에 사회적 인물로는 내가 월남 이상재 선생을  추앙하였습니다. 월남선생 돌아가셨을 때는 내가 영구를 뫼시구 남문 밖까지 따라 갔었으니까...., 월남선생 돌아가신 후의 인물로는 윤치호선생인데, 그 분 돌아가시면 내 또 영구 따라 나서야지."

하고, 그것도 한두번이 아니다.  (박태원, '최노인전 초록', 문장, 1939.1. 중에서)



 


 


 


'친절한 구보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지노모도  (0) 2019.03.14
물난리에 '꽃 핀 동심'  (0) 2019.03.14
구보씨의 연애관  (0) 2019.03.14
구보씨가 말하는 베스트 영화  (0) 2019.03.13
구인회 九人會  (0) 2019.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