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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씨의 연애관

category 친절한 구보씨 2019. 3. 14. 13:23
 


사랑은, 본래 제가 남에게 주는 것이오, 결코 남에게서 받을 것이 아니며, 또 받기를 바랄 것이 아니니라. 그렇거늘, 하믈며, 억지로 뺏기를 꾀하여 옳을까보냐?
품 안의 어린 자식이 문득 배고파 울 때, 어머니의 사랑은 스스로 뜻하지 않고, 그 입에 젖꼭지를 물려주는 도다. 참말 사랑이란 이처럼 상대자에게 이익과 행복을 주되 털끝만한 꾸밈이 없으며, 또한 그에게서 아무런 보수 있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라.
그러나 이성간의 연정은 이와 크게 달라, 저의 진정을 주되, 반드시 상대자에게서 그에 해당한 보상이 있기를 바라니, 이러하므로써, 모든 류類의 '사랑' 가운데서 가장 열등한 것이 아닐 수 없나니라.
연애는 생식의 대업을 강제하기 위하여 조물주가 인류에게 밀매한 마약이라.
이미 마약이매, 인류에게 가저 오는 바 행복은 적고, 해독은 크니, 건전한 연애의 경우에, 그 쾌락은 당사자 간에만 있을 뿐이오, 불건전한 연애의 경과에, 제악諸惡의 근원을 이루는도다.

육정肉慾에서 출발하지 않은 모든 '사랑', 정교情交를 목적하지 않은 모든 '사랑' 어버이의 사랑이나, 자식의 사랑이나, 또는 벗과 벗의 사랑이나... 이들은 모두 가장 높은 경지, 가장 깊은 경지를 바라고 항상 그 발전이 그치려 하지 않으나, 연애는 그 본질에 있어 그러할 수 없으니, 이는 대저 스스로 급히  완성을 요구하여 마지 않는 까닭이라.
또한 그 완성에는 남의 이목을 꺼리는 암실이 필요하니, 표현에 있어서 비밀과 수치감을 동반하는 사랑이 어찌 능히 공명정대한 것이겠느냐?

일찌기 연애를 호랑이 꼬리에 비유한 이가 있었으니, 이는 대개, 그대로 붙잡고 있자니 두렵고, 놓아버리자니 아까운 심정을 가리켜 말함일러라.
연애는 필경 인생의 낭비니라. (박태원, '연애는 인생의 낭비',『삼천리』, 19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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