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끼짱ㅡ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취성醉聲이 들려왔다. 구보는 창 밖 어둠을 바라보며, 문득, 한 아낙네를 눈앞에 그려보았다. 그것은 '유끼'ㅡ 눈이 그에게 준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광교 모퉁이 카페 앞에서, 마침 지나가는 그를 적은 소리로 불렀던 아낙네는 분명히 소복을 하고 있었다. 말씀 좀 여쭤 보겠습니다. 여인은 거의 들릴락 말락한 목소리로 말하고, 걸음을 멈추는 구보를 곁눈에 느꼈을 때, 그는 곧 외면하고, 겨우 손을 내밀어 카페를 가리키고, 그리고,
"이 집에서 모집한다는 것이 무엇이에요."
카페 창 옆에 붙어 있는 종이에 女給大募集. 여급대모집. 두 줄로 나뉘어 쓰여 있었다.
[...]
구보가 말을, 삼가, 여급이라는 것을 주석할 때, 그러나 그 분명히 마흔이 넘었을 아낙네는 그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혐오와 절망을 얼굴에 나타내고, 구보에게 목례한 다음, 초연히 그 앞을 떠났다.
[...]
구보는 고개를 돌려, 그의 시야에 든 온갖 여급을 보며, 대체 그 아낙네와 이 여자들과 누가 좀더 불행할까, 누가 좀더 삶의 괴로움을 맛보고 있는 걸까, 생각하여 보고 한숨지었다.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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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소년[이발소 재봉]은 신사의 뒷모양을, 그가 배다리를 건너 골목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헛되어 바라보고 나서, 고개를 돌려 천변 너머 맞은편 카페로 눈을 주었다. 밤이 완전히 이르기 전, '이 '평화'라는 옥호를 가진 카페의 외관은, 대부분의 카페가 그러하듯이, 보기에 언짢고, 또 불결하였다. 그나마 안에서 내비치는 전등불이 없을 때, 그 붉고 푸른 유리창은 더구나 속되었고, 창밖 좁은 터전에다, 명색만으로 옹색하게 옮겨다 심은 두어 그루 침엽송은, 게으르게 먼지와 티끌을 그 위에 가졌다.
소년은, 그러나, 이루 그러한 것에 별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 바로 조금 아까부터 그 밖에 서서, 혹 열려 있는 창으로 그 안도 기웃거려보며, 혹 부엌으로 통한 문의, 한 장 깨어진 유리 대신, 서투른 솜씨로 발라놓은 얇은 반지가 한 귀퉁이 쭉 찢어진 그 사이로, 허리를 굽혀 그 안을 살펴도 보며 하는, 이미 오십 줄에 든 조그맣고 늙은 부인네에게 호기심을 가졌다. 그이는 그 카페의 여급 '하나코'의 어머니다.
'하나콘, 아까, 목욕을 가나 보던데..'
소년은 속으로 그러한 것을 중얼거리며, 분명히 동대문 안인가 어디서 드난을 살고 있다... 모처럼 틈을 타서 딸을 좀 보러 나왔던 것이 그만 가엽게도 허행이 되고 만 것을 애달파 하였다. (박태원, 『천변풍경』, 문학과 지성사, 2005[1936], 34-35)
▲ '돈 없이 술 먹고 카페에서 폭행, 다옥정 평화카페에서 소동..' (조선중앙일보, 1934.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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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성부 토지조사부(1912) 다옥정 1번지 소유자 한성은행
어쨌든 한성은행은 1903년, 공립 한성은행으로 개편하면서 안국방 소안동, 지금의 종로경찰서 건너편 자리(안국동)로 이사하고 영업을 했으며 그 당시 영업소의 모습은 방 두개에 마루방이 있는 20평 짜리 기와집으로 ㄱ자형 한옥이었다고 한다. 서쪽방은 은행장실로 사용되었고 좌총무와 우총무, 그리고 행원은 동쪽방을 사용했으며 마루방은 손님들이 대기하는 객장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소안동 영업소가 주택지에 위치하고 협소한 관계로 어려움을 겪자 1905년 12월 10일, 남서 다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자리는 일제시대 때에는 `평화까페`가 있었고 60년대에는 유명한 `풍년제과`가 그 자리에 있었는데 지금은 관광공사의 오른쪽 날개가 되어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1912년 자본금이 3백만원으로 대폭 늘어난 한성은행은 본점 영업소를 다동에서 지금의 자리[주:남대문로 1가 5번지]로 신축하면서 이전했다. (한국금융사박물관 http://bitly.kr/KZ6lW)
▲ 한성은행 다동 영업소(1905-1912). 일제강점기 때 평화카페 건물로 사용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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