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구보씨, '독립獨立'하다

category 친절한 구보씨 2019. 3. 21. 09:48

악박골

'뻐스'의 출현을 나는 참말로 기뻐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서울의 교통 발전을 기뻐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즉 '영천행'의 몇 대가 있음으로 하여서 서우릐 귀한 약물터 악박골을 다만 몇 사람이라도 더 찾아가리라는 것을 생각하고 말입니다. {박태원, '초하풍경', 『신생』, 1930.6.)


**

서대문, 독립문간 전차운전을 개시

경전[경성전기]에서는 일즉부터 연장공사중이던 의주통에서 독립문에 이르는 전차궤도를 완성하고 검사도 마쳤으므로 오는 10월 1일부터 운전을 개시함과 동시에 의주통에서 다니는 뻐스는 독립문을 기점起點으로 하여 다니기로 되었다. (조선중앙일보, 1935.9.29.)


**

▲ 모화관[독립관](왼쪽) 과 일진회건물

이곳 모화관[독립관]으로 살림을 나와 산 지도 이미 일 년이 되어 온다. 십팔 평짜리 여덟 칸 집-물론 옹색은 하다. 그러나 나와 아내와 딸 설영이와 이렇게 세 식구가 할멈 하나를 데리고 가난한 살림살이를 경영하여 가기에는 우선 이만해 좋다. 

[...]

이곳의 어린아이들도 다른 동리의 아이들이나 한가지로 할 장난들은 다 하고 있다. '숨바꼭질' '뜀뛰기' '술레잡기' 또 특히 계집애들은 '공기' '잇센, 도-까, 모모 아다마'...

[...] 

그러나 나는 최근에 그 어린이들이 좀 유다른 장난을 하고 즐기는 것을 발견하고 마음에 좋지 않았다.

분명히 그렇게도 지척 사이에 '감악소'[서대문 형무소]가 있는 까닭이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형리들은 죄인의 손을 얽고 몸을 묶어 이곳으로 안동按洞하여 왔고 또 한결같이 붉은옷을 입은 전중이들은 개인 날 밭에 나와 부지런히 일들을 하였으므로 이 동리의 어린이들은 쉽사리 그것을 볼 수 있었고 본 것은 흉내내는 것이 또한 재미있는 노릇이어서 그래 그들은 곧잘 순검이 된 한 아이가 새끼나 빨랫줄 등속으로 죄수가 된 몇 아이들을 잔뜩 묶어 가지고는 골목 안을 돌아다니는 그러한 형식의 장난을 하며 서로들 매우 만족한 듯싶다.

[...]


▲ 서대문 형무소


▲ 독립문을 지나는 전차 (1935년 10월 영천 노선 신설)

그러나 아름답지 못한 것은 그것에 그치지 않는다. 골목을 나서 큰 길에는 죄수를 실은 것말고 또 시체를 담은 금빛 자동차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무학재[무악재] 고개를 넘나들었다. 대개 고개 너머 홍제원에 화장터가 있는 그 까닭이다. 그래도 자동차는 또 오히려 낫다. 그것은 우선 빨리 달릴 수 있는 수레이어서 잠깐 사이에 우리의 시계를 벗어나 버린다. 그러나 상여라든 그러한 것의 행렬은 느리고 길고 격에 맞추어 부르는 '에-흥' 소리와 또 [...] 악대를 사서 '내 고향을 이별하고'와 같은 통속명곡을 취주하게 하는 등 귀와 눈에 함께 언짢기가 여간이 아니다.

올 정월에 첫돌을 지냈을 뿐인 내 딸[설영]이 아직은 할멈의 등에 업히어 그 장엄한 행진의 내용을 알 턱이 없으나 이제 2, 3년을 못다 가서 늙은이의 잔등이를 비는 일 없이 제 발로 혼자 거리까지 뛰어나와, 그렇게 어린 설영이가 벌써 인생의 무상을 안다든 그러할 것을 나는 물론 마음 깊이 꺼리지 않을 수 없다.

[...]

이른바 도심지대를 향하여 집을 나설 때 원래가 허약한 나는 그것이 별로 급한 볼일이라든 그런 것이 아닌 경우에도 또박또박 전차를 타지 않으면 안 된다. 가난한 내게 있어 그것은 딱한 부담이다. 나는 곧잘 정류장 [현저동 전차정류장, 구舊서대문형무소 앞 독립문역 부근]에가 좀처럼 오지 않는 전차를 기다리느라 지치며 맞은편 언덕진 밭에서 일하는 죄수를 보고 독립문께로 들려오는 '에-흥' 소리를 듣고 참말 어디 다른 곳으로 수히 좀 떠나야... 하고 눈살을 찌푸려 본다. (박태원, '모화관 잡필', 조선일보, 1937.5.)


▲ 1937년경 무악재를 배경으로 늘어선 영천-행촌동 일대 경성 신흥 주택지, 다옥정[다동] 집에서 분가후 첫 살림을 차린 구보 박태원의 집(1936-9)은 관동[영천동] 12-4번지.


**

수부首府의 화장터는 번성하였다.

산마루턱에 드높은 굴뚝을 세우고

자그르르 기름이 튀는 소리

시체가 타오르는 타오르는 끄름은 맑은 하늘을 어질러놓는다

시민들은 기게와 무감각을 가장 즐기어한다

금빛 금빛 금빛 교착交錯되는 영구차

호화로운 울음소리에 영구차는 몰리어오고 쫒겨간다

번잡을 존숭尊崇하는 수부의 생명

화장장이 앉은 황천고개와 같은 언덕 밑으로 시가도市街圖는 나래를 펼쳤다. 

[...] (오장환,  '수부', 1936)


▲ 대한뉴스 154호 (1958.3.4.) (끝부분에 전차 보임)

 


'친절한 구보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변풍경 (2)] 평화카페 하나코  (0) 2019.03.21
시계가 걸린 자리  (0) 2019.03.21
[정동길] 이화학당과 러시아영사관  (0) 2019.03.19
창경원에라도 갈까  (0) 2019.03.19
황금광시대 黃金狂時代  (0) 2019.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