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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광시대 黃金狂時代

category 친절한 구보씨 2019. 3. 19. 19:54

시내에 산재한 무수한 광무소鑛務所.  인지대 백 원. 열람비 오 원. 수수료 십 원. 지도대 십팔 전……  출원 등록된 광구, 조선 전토全土의 7할. 시시각각으로 사람들은 졸부가 되고 또 몰락하여 갔다. 황금광 시대. 그들 중에는 평론가와 시인, 이러한 문인들조차 끼어 있었다.

구보는 일찍이 창작을 위하여 그의 벗의 광산에 가보고 싶다 생각하였다. 사람들의 사행심, 황금의 매력, 그러한 것들은 구보는 보고, 느끼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고도의 금광열은 오히려, 총독부 청사, 동측 최고층, 광무과 열람실에서 볼 수 있었다……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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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금값이 자꾸 올라간다는군 그래."

곰방대를 빼어 물며, 민주사 집 행랑아범이 하는 말.

"그저 둔 있는 사람은 을마든지 둔벌어 먹기루 마련된 세상이지."

보기 좋게 가래침을 탁 뱉고, 빨래터 관리인이 하는 말.

"하여튼, 새면 둘러봐야 금점꾼이로군 그래. 그저 금광 거간……"

"아, 그게 헐만 허니까 그렇지. 어떡하다 꿈이나 한 번 잘 꾸어, 노다지나 하나 얻어걸리는 날엔, 최챙액이 부럽지 않으니까……" 

"허지만, 그것도 얼마간 밑천이래두 있어야 말이지. 그저 겅깽깽이루야 말이 되나? 등기만 하는 데두 백여 환이 든다지 않어?"

"그러기에 없는 사람은, 또 수단대루 거간이래두 해서, 그저 매매 계약 하나만 되면 몇백 환씩 구문이 생기니……"

"그저 불쌍허긴, 돈 없구 수단 없구 헌 우리지…… 넨─장헐 둔 한 가지 있담야 지금 세상에 정승 판서 부럴 꺼 있나?"

"옳은 말야" (박태원, 『천변풍경』,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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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실에 같이 탄 사람들은 다 깊이 잠이 들었다. 바로 자기의 맞은 편에 누운 어떤 노동자 같은 소년이 추운 듯이 허리를 구부린다. 형식은 얼른 차창을 닫고 자기가 깔고 앉았던 담요로 그 소년을 덮어 주었다. 이 소년은 아마 어느 금광으로 가는지 흙 묻은 무명 고의를 입고 수건을 말아서 머리를 동였다. 머리는 언제 빗었는지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뭉쳐지고 귀밑과 목에는 오래 묵은 때가 껴 있다. 역시 조고마한 흙물 묻은 보퉁이로 베개를 삼았는데 그 보퉁이를 묶은 종이로 꼰 노끈이 걸상 밑으로 늘어졌다. 형식은 그 노끈을 집어 보퉁이 밑에 끼웠다. 소년의 굵은 베로 만든 조끼 호주머니에는 국수표 궐련갑菊水票 卷煙匣이 조곰 보이고 그 속에는 물부리가 넓적하게 된 궐련이 서너 개나 보인다. (이광수, 『무정』, 1995[1917], 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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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길, 나도 금광이나 나설까.’

하고 최창학이, 방응모를 생각한다.

‘나도 최창학이, 방응모 모양으로 금광만 한번 뜨면 백만 원, 이백만 원이 단박에 굴러 들어올 텐데. 오, 또 박용운이란 사람도 백만 원 부자가 되었다고. 내가 하면야 그깟놈들만큼만 해. 그래서는 그 돈은 떡 식산은행, 조선은행, 제일은행…… 일본은행에다가 예금을 해놓고는. 옳지, 요새 경제 봉쇄니, 만주 전쟁이니 하는 판에 그 백만 원, 아니 이백만 원을 가지고 한번 크게 투기사업을 해서 열 갑절만 만들어― 일년 내에. 그러면 이천만 원. 아유 이천만 원 생기면 굉장하겠네.’

하고 갑진은 바로 눈앞에 이천만 원의 현금이 놓이기나 한 듯이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본다.

‘이천만 원만 가지면야 무엇은 못 해. 제길 한번 정치운동을 해보까. 정우회 민정당을 온통으로 손에 넣어서…… 그보다도 조선의 토지를 살까. 아유 그 이천만 원만 있으면야. 아유 그걸 어떻게 다 써. 한번 서울 안에 있는 기생을 모조리 불러 놓고― 아차 또 이런 비루한 생각. 인왕산 밑 윤자작의 집을 사가지고, 어여쁜 여학생 첩을 스물만 얻어서…….’

갑진은 이천만 원이라는 생각에 일시적으로 과대망상광이 된 모양으로 이생각 저생각 하고 있을 때에, 점심상이 나와서 갑진의 공상의 사슬을 끊었다. 그러나 이천만 원 덕분에 정선이 문제로 생겼던 괴로움은 훨씬 가벼워졌다.

‘요오시, 금광을 해보자. 그것도 자본이 드나?’

하고 금광을 해보리라는 생각은 깊이 갑진의 맘에 뿌리를 박았다.

그러나 금광에는 자본이 안 드는가. 새것을 찾으려면 고생이 안 될는가. 누가 찾아 놓은 것을 하나 얻었으면 좋으련마는, 좋은 것을 왜 내어놓을라고. 이렇게 생각하면 금광도 쉬운 것 같지는 아니하였다.

‘에이, 귀찮어!’

하고 갑진은 담배 한 대를 또 피워 문다. (이광수, 『흙』,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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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時體는 금점이 판을 잡았다. 스뿔라게 농사만 짓고 있다간 결국 비렁뱅이밖에는 더 못된다. 얼마 안 있으면 산이고 논이고 밭이고 할 것 없이 다 금쟁이 손에 구멍이 뚫리고 뒤집히고 뒤죽박죽이 될 것이다. 그 때는 뭘 파먹고 사나, 자 보아라. 머슴들은 짜기나 한 듯이 일하다 말고 후딱 하면 금점으로들 내빼지 않는가. 일꾼이 없어서 올엔 농사를 질 수 없으니 마느니 하고 동리에서는 떠들썩한다. 그리고 번동포농이 쫓아 호미를 내어 던지고 강변으로 개울로 사금을 캐러 달아난다. 그러나 며칠 뒤에는 지까다비신에다 옥당목을 떨치고 쵯자를 뽑는 것이 아닌가. (김유정, '금 따는 콩밭', 『개벽』, 1935.3.)


 




▲연말연시에 쉬고 1935년 1월 7일 새해업무를 시작한 조선총독부의 광무과(광산과)에는 광원출원 신청자들이 3백여명이나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조선일보, 193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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