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하지 못한 잠을 두 시간씩 세 시간씩 계속될 수 없다. 잠깐 잠이 들었다 깰 때마다, 어머니는 고개를 들어 아들의 방을 바라보고, 그리고 기둥에 걸린 시계를 쳐다본다. 자정ㅡ 그리 늦지는 않았다. 이제 아들은 돌아올 게다.
[...]
다방 옆 골목 안. 그곳에서 젊은 화가는 골동점을 경영하고 있었다. 구보는 그 방면에 대한 지식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하여튼, 그것은 그의 취미에 맞았고, 그리고 기회 있으면 그 방면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생각한다. 온갖 지식이 소설가에게는 필요하다. 그러나 벗은 점(店)에 있지 않았다. 바로 지금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기둥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며,
"한 십 분, 됐을까요."
점원은 덧붙여 말하였다.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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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단벌 다 떨어진 코르덴양복을 걸치고 배고픈 것도 주제 사나운 것도 다 잊어버리고 활개짓을 하면서 또 거리로 나섰다. 나서면서 나는 제발 시간이 화살 닫듯 해서 자정이 어서 홱 지나 버렸으면 하고 조바심을 태웠다. 아내에게 돈을 주고 아내 방에서 자 보는 것은 어디까지든지 좋았지만, 만일 잘못해서 자정 전에 집어 들어갔다가 아내의 눈총을 맞는 것은 그것은 여간 무서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저무도록 길가 시계를 들어다 보고 들어다 보고 하면서 또 지향없이 거리를 방황하였다. 그러나 이 날은 좀처럼 피곤하지는 않았다. 다만 시간이 좀 너무 더디게 가는 것만 같아서 안타까웠다.
경성역 시계가 확실히 자정을 지난 것을 본 뒤에 나는 집을 향하였다.
[...]
어쨌든 나섰다. 나는 좀 야맹증이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밝은 거리로 골라서 돌아다니기로 했다. 그리고는 경성역 일이등 대합실 한 곁 티룸에를 들렀다. 그것은 내게는 큰 발견이었다. 거기는 우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안 온다. 설사 왔다가도 곧들 가니까 좋다. 나는 날마다 여기 와서 시간을 보내리라 속으로 생각하여 두었다.
제일 여기 시계가 어느 시계보다도 정확하리라는 것이 좋았다. 섣불리 서투른 시계를 보고 그것을 믿고 시간 전에 집에 돌아갔다가 큰 코를 다쳐서는 안 된다. (이상, '날개',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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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가 조선은행 앞을 오니 경성우편국이 차창 밖으로 내어다보인다. 불을 환히 켠 유리창 안에 사람이 어른거리는 것을 보자 덕기는 속으로 내릴까말까하며 그대로 앉았다가 사람이 와짝 몰려들어오며 막 떠나려 할 제 뒤로 비집고 휙 내려버렸다.
우편국 옥상 시계를 치어다보니 아직 8시가 조금 지났을 뿐이다. 덕기는 그대로 우편국으로 들어섰다. (염상섭, 『삼대』,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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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로에서 그렇듯 많이 충그리고 길이 터지고 했어도, 회장에 당도했을 때에는 부민관 꼭대기의 큰 시계가 열두시밖에는 더 되지 않았습니다. (채만식, 『태평천하』, 1937)
▲ 경성부민관과 화신백화점 서관(신관)
▲ 구종로경찰서
▲ 대한의원/총독부병원/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서울대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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