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해협 (7)] 노다피복공장
영화 장면에 노다피복공장野田被服工場의 간판이 보이고 긴슈쿠는 브라더 미싱을 돌리는 여공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출산을 전후로 하여 긴슈쿠는 에이코의 권유를 따라 노다피복공장에 취직하고 셋집을 정리하여 갓난 아이와 함께 광희장으로 거처를 옮긴다. 노다피복공장은 1938년경, 당시 25세의 조선인 청년 사업가 김흥배(野田勝弘)가 설립한 회사이다. 1914년 여주 출생인 김흥배는 보통학교를 졸업한 직후 어린 나이에 무작정 상경하여 일을 배웠고 1932년 불과 18세에 기업을 일으켰다. '조선해협'이 한창 촬영중인 1943년 5월 경성부회 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고 조선 내 일본의 전쟁지원단체인 국민총력 경성부연맹 이사를 맡는 등 일제말기에 재계와 정관계에 두루 이름을 알린 인물이었다. 당시 그의 영향력은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