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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해협 (7)] 노다피복공장

category 영화와 경성 2022. 5. 9. 17:53

영화 장면에 노다피복공장野田被服工場의 간판이 보이고 긴슈쿠는 브라더 미싱을 돌리는 여공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출산을 전후로 하여 긴슈쿠는 에이코의 권유를 따라 노다피복공장에 취직하고 셋집을 정리하여 갓난 아이와 함께 광희장[각주:1]으로 거처를 옮긴다. 


노다피복공장은 1938년경, 당시 25세의 조선인 청년 사업가 김흥배(野田勝弘)가 설립한 회사이다. 1914년 여주 출생인 김흥배는 보통학교를 졸업한 직후 어린 나이에 무작정 상경하여 일을 배웠고 1932년 불과 18세에 기업을 일으켰다. '조선해협'이 한창 촬영중인 1943년 5월 경성부회 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고[각주:2] 조선 내 일본의 전쟁지원단체인 국민총력 경성부연맹 이사를 맡는 등 일제말기에 재계와 정관계에 두루 이름을 알린 인물이었다. 당시 그의 영향력은 1943년 2월에 조선총독부 총독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가 필운정 278번지 공장을 방문한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동아전쟁에 이겨갈 전력을 증강하고자 고이소小磯 총독은 19일, 부임 이래 처음으로 진두지휘에 나서서 묵묵 증산에 정신감투하는 산업전사들을 격려하였다. 이날 총독은 오후 1시 오노大野 비서관, 혼다本多 학무국장을 대동하고 경성제대 예과를 시찰한 후 계속하여 동 3시20분 부내 필운정 278 노다피복공장을 찾아 공장주 노다野田勝弘 씨 이하 남녀 종업원의 마중을 받으며 응접실로 들어갔다. 여기서 약 40분간 노다 씨로부터 산업전사의 활약하는 작업상황의 보고를 듣고 이어서 노다 씨의 안내로 제단부를 비롯하여 미싱부, 특수미싱부, 기계수선부, 검사부 등 공장의 구석구석을 두루 돌아다니며 4백여명의 남녀 직공이 한눈 한번 팔지 않고 제 맡은 일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부지런히 해라 부지런히" 하고 격려하며 만족한 웃음을 금치 못하였다. 그리고 일동을 앞에 모아놓고 "나는 고이소 총독이다. 지금 노다 사장의 안내로 공장 안을 두루두루 돌아보았는데 노다 사장의 세밀한 주의와 따뜻한 지도와 정당한 가르침을 잘 지키고 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매우 마음이 기쁘다. 여러분은 제일선 장병의 마음을 신의 마음으로 하고 이 대전쟁을 이겨내도록 싸워주기 바란다" 하는 뜻으로 순순히 훈시하고 동 4시30분 귀청하였다. [각주:3]

 

영화에서 노다피복공장 관련 장면들은 전장에 투입된 남편 세키를 따라 아내 긴슈쿠도 미싱을 돌리는 산업전사로서 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지원병제를 찬양하고 1944년부터 시행될 징집병제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기획되었다고 보면 될 듯하다. 김흥배의 입장에서는 조선총독부의 비호 아래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적극적으로 영화제작에 협조했을 것이다. 필운정 278번지 인근에는 사직공원이 있다.  노다피복 필운정 공장 종업원들이 휴식시간에 사직공원을 이용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장면이 영화에 나오기도 한다. [각주:4] 

 

 

한편 노다피복공장은 필운정 278번지 외에 아현정에 제2공장이 있었다. 

 

명랑감투의 새해를 맞이하여 반도는 전력증강에 정신감투를 전개하고 있는데 2일 오후 세토瀨戶 경기도지사는 부내 노다피복공장 아현정 제2공장을 시찰하고 정초부터 쉴 사이 없이 분투하고 있는 공원들의 노고를 위문하며 아울러 금후부터 한층 노력할 것을 격려하였다. [각주:5]

 

해방 후 임시정부 요원이었던 해공 신익희가 이끄는 행정연구회가 노다피복 필운정 공장에서 1945년 12월 발족하였다[각주:6]는 기록을 볼 때 해방 전후로 공장 기능을 상실하였고 아현정 제2공장 역시 문을 닫은 것으로 보인다. 

 

 

  1. 권농정 소재 노다피복공장 여직공 숙소를 모델로 한 것으로 보이나 확실치 않다. [본문으로]
  2. 매일신보, 1943.5.23. [본문으로]
  3. 매일신보, '고이소 총독 진두지휘 - 노다피복공장 방문 산업전사들 격려', 1943.2.20. [본문으로]
  4. https://gubo34.tistory.com/303 참조 [본문으로]
  5. 매일신보, '세토 지사 노다피복 공원 격려', 1945.1.3. [본문으로]
  6. 월간조선, '제헌헌법과 최영하', 2010.8.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