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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해협 (4)] 화신상회 신관

category 영화와 경성 2022. 5. 4. 17:47

긴슈큐의 출산이 임박한 시점에 그의 일본인 친구 에이코(쓰바키 쓰미에 분)는 친구들과 함께 화신상회[각주:1] 를 찾는다. 승강기에서 내린 에이코 일행은 어린이용품 코너에서 이것저것 물건들을 살펴본다.


종로네거리 북쪽 전면의 우측 귀퉁이[각주:2]에 자리잡은 화신상회는 1932년 당시 3층짜리 건물이었다(아래 사진 왼쪽).[각주:3] 이 해에 바로 옆자리에 동아백화점 5층 건물이 들어섰지만 처음부터 경영 미숙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동아백화점 자리의 지주地主는 구한말 관료였던 한규설의 손자 한학수였다. 박흥식은 한학수와 동업관계를 맺고 동아백화점을 인수하였다. 화신상회 동.서관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각주:4]

 

1935년 1월에 화재로 양 관이 모두 피해를 입었다. 동관(구동아백화점)은 1935년말까지 수리 후 재개관하였으나 서관(3층짜리)은 완전히 철거를 한 후 인근 부지를 매수하여 규모를 확장하였고 1937년 10월이 되어서야 문을 다시 열 수 있었다.  신축된 화신상회 서관은 건축가 박길룡 (설계사무소)이 설계하고 일본에 본점을 둔 청수조淸水組 경성지점이 시공하였다. 지하1층과 지상6층으로 철근콘크리트 구조였다. 화신상회 서관이 완성되면서 동관과 함께 화신상회는 종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되었다.  화신상회 서관은 에스컬레이터로도 유명한데 신축 당시에는 없었고 1939년에 들어 서관 1층과 2층 사이, 2층과 3층 사이에 부설되었다.[각주:5]

 

문예봉이 주연한 두편의 영화 '미몽'(1936)과 '조선해협'(1943)에는 공통적으로 화신상회의 장면이 포착된다. '미몽'의 촬영은 화신상회 화재 이후 아직 서관이 완공되기 이전으로 동관임을 알 수 있다. 미몽이 촬영중일 때에 화신은 한창 공사중이었으므로 1936년에는 내내 서관은 공사중의 모습이었을 것이다.[각주:6] 반면에 '조선해협'에 등장하는 1943년의 '화신'은 화재후 새로 지어진 서관에서 촬영된 것이다. 아래 사진은 신축된 서관의 평면도(오른쪽)와 영화장면(아래)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판매공간, 승강기, 계단 등의 시설 배치가 평면도와 일치한다. 아동용품을 파는 장소로 보아 서관 3층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 화신상회 어린이용품 코너에서 촬영된 조선해협 (1943). 뒤로 중앙계단(왼쪽)과 승강기(오른쪽)가 보인다.
▲ 종로의 명물 화신상회 (1937년 이후 일제강점기)

 

  1. 1934년에 이미 화신상회 대신에 (주) 화신으로 명칭을 사용했으나 편의상 시간적 구분 없이 화신상회라는 명칭을 일관되게 사용하기로 한다. 당시의 기사를 보면 1940년대초에도 화신, 화신상회, 화신백화점이 구분 없이 계속 사용되었다 [본문으로]
  2. 기록상에으로는 최초의 화신상회는 종로1정목 3-4번지에 걸친 위치이나 1936년에 간행된 대경성지도를 보면 종로1정목 1번지와 2번지까지 모두 화신상회 서관 위치로 표시되어 있다. 1937년 간행된 <조선과 건축>에 보면 화신상회 서관의  주소는 종로1정목 1번지이다. [본문으로]
  3. 화신상회는 금은상 신태화에 의해 설립되었다. 1920년대말부터 경영난이 심화되면서 1931년 전국의 지물포를 대상으로 종이를 공급하는 사업을 하던 박흥식이 인수하였다. 매각 당시 화신상회는 2층 목조 건물이었고 인수 후에 3층 철근콘크리트 건물로 다시 지었다. [본문으로]
  4. 이들의 동업관계는 1960년대초에 청산되어 동.서 양관이 다시 분리 운영되었고 1980년대 후반 두 건물 모두 매각된 후 철거되었다. [본문으로]
  5. 조선일보 1939. 4.12. [본문으로]
  6. https://gubo34.tistory.com/244?category=1048286 참조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