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 창의문외彰義門外
창의문외彰義門外 무이밭에 흰나비 나는 집 밤나무 머루넝쿨 속에 키질하는 소리만이 들린다 우물가에서 까치가 자꾸 짖거니 하면 붉은 수탉이 높이 샛더미 위로 올랐다 텃밭가 재래종의 임금林擒나무에는 이제도 콩알만한 푸른 잎이 달렸고 히스무레한 꽃도 하나 둘 피여 있다 돌담 기슭에 오지항아리 독이 빛난다 (백석, 『사슴』, 1936) ** 나날이 더워질수록 여름이란 의식이 뿌리깊이 박히고 여름 의식이 깊어질수록 잊었던 과거의 '여름'이 하나, 둘씩 기억에 떠오른다. 경성의 여름이 답답하다니 말이지 어디 가서 시원한 바람을 쏘일 곳도 없다. 그것[은] 물론 돈 없는 사람의 말이다마는 그렇다니 말이지 나는 경성의 여름을 서늘하게 지내본 기억은 없다. 작년 여름은 세검정에서 보냈다. 그러나 삼각산 속에서 흘러내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