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李箱 - 조춘점묘早春點描
보험保險 없는 화재火災 격장隔墻에서 불이 났다. 흐린 하늘에 눈발이 성기게 날리면서 화염은 오적어烏賊魚[오징어] 모양으로 덩어리 먹을 퍽퍽 토한다. 많은 약품을 취급하는 큰 공장이란다. 거대한 불더미 속에서는 간헐적으로 재채기하듯이 연기 뭉텅이가 내뿜긴다. 약품이 폭발하나보다. 역 송구스러운 말이나 불구경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뒤꼍으로 돌아가서 팔짱을 끼고 서서 턱살 밑으로 달겨드는 화광火光을 쳐다보고 섰자니까 얼굴이 후끈후끈해 들어오는 것이, 꽤 할 만하다. 잠시 황홀한 '엑스타─제' 속에 놀아본다. 불을 붙여놓고 보니까 뜻밖에 너무도 엉성한 그 공장 바락크[Barrack]는 삽시간에 불길에 휘감겨 버리고 그리고 그 휘말린 혓바닥이 인접한 궤딱지 같은 빈민굴을 향하여 널름거리기 시작해서야 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