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희 - 빨강치마를 입던 날
나는 종종 해질 무렵의 본정本町 거리[진고개, 혼마치]를 걷기를 좋아한다. 별반 산보를 좋아해서 그러는 것은 아닌데 차를 타고 어디 멀리 가보고 싶다든가 아는 사람들이 신경에 무거운 때라든지 저녁노을이 붉어서 모든 얼굴들이 곱게 보이려니 짐작되는 때라든지 원고가 쓰기 싫어지는 때라든지 오스시가 먹고 싶은 때라든지 이런 때는 늘상 나는 본정을 걸어야 한다. 본정은 건물들도 크지 않고 또 자동차나 인력거가 다니지 못하리 만큼 도로도 좁다. 본래부터 웅장한 것보다 아담한 쪽을 좋아해서 그런지는 모르나 나는 이 웅장하지 못한 건물과 넓지 못한 도로에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또 그 거리에 맞는 남산의 배경이 더욱 좋다. 미관상이라든가 위생적이라든가 이런 어려운 문구를 다 그만두고라도 우선 하늘이 그 남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