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 - 행복에의 흰손들] 신여성들의 점심식사
나이도 비슷한 두 처녀, 한 벤치 위에 되도록 서로 마주 앉았다. 서로 얼굴을 뜯어본다. 서로 눈웃음이 넘치면 소리로 웃는다. 웃다가 시계를 본다. 시계를 보고는 큰길쪽을 내본다. 내다보다가는 다시 서로 얼굴을 본다. 웃는다. 그러나 말은 못한다. 세 사람이 한자리에 다 모이기 전에는 한마디도 먼저 이야기를 해선 큰일나기로 짠 것이었다. 꼭 다섯달만에 만나는 것이었다. 삼월 구일 졸업식날 헤어지고는 팔월 구일, 이날 파고다공원에서 만나는 것이었다. [...] 오전 열한시 정각에 팔각정 앞에 모이기로 하였으나, 정각에 마주친 것은 두 사람뿐이었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미처 못올 때에는 서로 인사도 하지 못하기였다. 쌓고 쌓였던 이야기를 첫 한마디부터를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서야 봉절하기로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