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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파라

category 친절한 구보씨 2019. 4. 5. 14:27

나는 다시 다방 '낙랑' 안, 그 구석진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두 가닥 커튼이 나의 눈에서 그 살풍경한 광고들을 가려 주고 있었다. 이 곳 주인이 나를 위하여 걸어 준 엔리코 카루소의 엘레지가 이 안의 고요한, 너무나 고요한 공기를 가만히 흔들어 놓았다. 
나는 세 개째의 담배를 태우면서, '대체 나의 미완성한 작품은 언제나 탈고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아마 열한 점도 넘었을 게다. 이 한 날도 이제 한 시간이 못 되어 종국을 맺을 게다. 나는 선하품을 하면서 나의 이제까지 걸어온 길을 되풀어 더듬어 보았다. (박태원, '피로',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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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열한 점, 그러나 낙랑樂浪이나 명치제과明治制菓쯤 가면, 사무적 소속을 갖지 않은 이상이나 구보仇甫 같은 이는 혹 나보다 더 무성한 수염으로 커피잔을 앞에 놓고, 무료히 앉았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내가 들어서면 마치 나를 기다리기나 하고 있었던 것처럼 반가이 맞아 줄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요즘 자기들이 읽은 작품 중에서 어느 하나를 나에게 읽기를 권하는 것을 비롯하여 나의 곰팡이 슨 창작욕을 자극해 주는 이야기까지 해 줄는지도 모른다. 
[...]
바로 낙랑樂浪으로 가니, 웬일인지 유성기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문만 밀고 들어서면 누구나 한 사람쯤은 아는 얼굴이 앉았다가 반가이 눈짓을 해 줄 것만 같다. 긴장해 들어서서는 앉았는 사람부터 둘러보았다. 그러나 원체 손님도 적거니와 모두 나를 쳐다보고는 이내 시치미를 떼고 돌려 버리는 얼굴뿐이다. 들어가 구석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앉는다. 불쾌하다. 내가 들어설 때 쳐다보던 사람들은 모두 낙랑 때가 묻은 사람들이다. 인사는 서로 하지 않아도 낙랑에 오면 흔히는 만나는 얼굴들이다. 그런 정도로 아는 얼굴은 숫제 처음 보는 얼굴만 못한 것이 보통이다. 그런 얼굴들은 내가 들어서면, 나도 저희들에게 그런 경우에 그렇게 하 수 있듯이, 
'저자 또 오는군!'
하고 이유 없이 일종의 멸시에 가까운 감정을 가질 것과 나아가서는,
'저자는 무얼 해 먹고살길래 벌써부터 찻집 출근이람?'
하고 자기보다는 결코 높지 못한 아무 걸로나 평가해 볼 것에 미쳐서는 여간 불쾌하지 않았다. 
커피 한 잔을 달래 놓았으나 컵에 군물이 드는 것이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그 원료에서부터 조리에까지 좀 학적 양심學的良心을 가지고 끓여 논 커피를 마셔 봤으면 좋다. 그러면서 화제 없는 이야기도 실컷 지껄여 보고 싶다. 
나는 심부름하는 애를 불렀다.
"너 이층에 올라가 주인 좀 내려오래라"
"아직 안 일어나셨나 분데요."
"지금 몇 신데 가서 깨워라."
"누구시라고 여쭐까요?"
"글쎄, 그냥 가 깨워라 괜찮다."
하고 우기니깐야 그 애는 올라간다. 

주인은 나와 동경 시대에 사귄 '눈물의 기사' 이군李君[이순석]이다. 눈물에 천재가 있어 공연한 일에도,
"아하!"
하고 감탄만 한번 하면 곧 눈에는 눈물이 차 버리는 친구로 [동경 유학시절] 밤낮 찻집에 다니기를 좋아하더니 나와서도 화신상회에서 꽤 고급[高給]을 주는 것도 이내 고만두고 이 낙랑을 차려 놓은 것이다. 
[...]

영업이 잘 되지 않아 낙랑도 팔아버리고 동경으로나 다시 가 바람을 쐬겠다고 하면서 낙랑 인계할 만한 사람이 있거든 한 사람 소개해 달라고 하는 양이 여러 가지 비관이 있는 모양이었다. [...] 심부름하는 이는 한참만에 내려오더니,
"주인 선생님이 일어나셨는데 어디루 나가셨나 봐요. 아마 댁으로 진지 잡수러 가셨나 봐요."

하는 것이다.
"집에? 집에 가 잡숫니, 늘?"
"어쩌다 조선 음식 잡숫고 싶으면 가시나 봐요."
한다. 구보도 이상도 나타나지 않는다. 비는 한결같이 구질구질 내린다. 유성기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누구든지 한 사람 기어이 만나 보고만 싶다. 대판옥大阪屋이나 일한서방日韓書房쯤 가면 어쩌면 월파月坡[김상용]나 일석一石[이희승]을 만날지도 모른다. (이태준, '장마', 『조광』, 1936.10.)

 

**

김연실金蓮實 - 우리 집에 오는 문사로는 안석영, 최정희, 정지용, 김상용 씨들과 또 저어 함대훈, 이헌구, 김광섭 등 등 해외 문예파 손님들도 가끔 와요, 춘원春園[이광수]씨도 간혹 오시고 팔봉八峯[김기진]도 이하윤 씨도 김기림 씨도 그리고 언젠가 여류 문사 일파가 오셨더구먼. 모윤숙, 장덕조, 최정희, 노천명 씨 등 아마 무슨 집회를 끝마치고 그 길로 오심인 듯. 문사 양반들이 차 마시는 풍경은 퍽 고요해요. 곁에서 누가 신문장 뒤지는 소리 나는 것조차 귀찮은 듯  '침묵의 실室'에 감겨 시상詩想을 닦거나 소설 스토리를 생각하는 듯해요. 간혹 이야기한대야 예술과 영화에 대한 화제가 많드군요. 그분들은 '세레나데' 같은 고요하고 낮은 음악을 좋아하더군요. 

 

기자 - 낙랑은 이름이 조선의 고전 맛古典味이 나고 또 위치가 덕수궁 옆 조선호텔 부근 여러 신문사 지대地帶에 있는 까닭에 일하다가도 산보하다가도 여러분들이 찾아오기 쉬워요. 영화인들은요?

 

김연실 - 김유영, 박기채 씨 같은 감독들이며 문예봉 같은 여우女優며 이명우 [문예봉 주연의 춘향전(1935) 감독], 나운규 씨들이 많이 와요. 와서는  '파리제巴里祭', '서반아광상곡西班牙狂想曲', '모로코' 같은 외국영화 비평을 하고 있지요. 디트리히나 가르보, 롬바드 같은 여우들 비평도 하고요. ('끽다점 연애풍경', 김연실 외 초청 대담, 『삼천리』, 1936.12.)

 


동경미술교東京美術校 출신 이순석李舜石 씨의 끽다점 낙랑파라


대한문大漢門 앞으로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옛 궁궐을 끼고 조선호텔 있는 곳으로 오다가 장곡천정長谷川町 초입에 양제洋製 2층의 엄숙한(潚洒한) 집 한 채 있다. 입구에는 남양南洋에서 이식移植하여 온 듯이  녹취綠翠 흐르는 파초가 놓였고 실내에 들어서면 대패밥과 백사白沙로 섞은 토질 마루 우에다가  '슈베르트', '디트리히' 등의 예술가 사진을 걸었고 좋은 데생도 알맞게 걸어 놓아 있어서 어쩐지 실내, 실외가 혼연조화渾然調和되고 그리고 실내에 떠도는 기분이 손님에게 안온한 침정沈靜을 준다.
이것이  '낙랑파라'다. 서울 안에 있는 화가, 음악가, 문인들이 가장 많이 모이고 그리고 명곡연주회名曲演奏會도 매주 두어 번 열리고 '문호 괴테의 밤' 같은 회합도 가끔 열리는 곳이다.
이 집에서는 맛난 티(茶)와  '케이크', '푸룻'[fruit] 등을 판다. 
이 다실茶室의 주인이 연전年前 동경미술교를 마친 화가 이순석 씨다. 그는 서른 안팎의 청년예술가다. 그래서 그의 2층에는  '아트리에'를 꾸미어 놓고 제작에 늘 분주하다.
이 집의 감촉은 마치 파리 뒷골목(裏町)에서 청절淸節을 지켜가며 전심예도傳心藝道에 정진하는 예술가의 화실 같은 느낌을 준다. 
명화 '파리의  지붕 밑'에 나오는 세트 속의 한 조각 같기도 하다.

그가 이 낙랑파라를 시작한 것이 2년 전이었다. 그때는 종로에  '멕시코'와 '본아미'가 있어서 인테리 청년을 흡수하든 때이다, 북촌北村하고 떨어진 이 아스팔트 길 옆에 위치를 정하는 것이 성공하겠느냐 어쩌겠느냐고 퍽도 의구疑懼하였으나 경영자의 견식은 결국 탁월하였든 모양으로 전차의 소음을 피하여 강철과 석재石材로 지은 양옥洋屋의 이 삼림가에 조고마한 쉼터를 만든 것이 세인世人의 기호에 맞았었다. 
이리로 모여드는 인텔리는 점점 많아 간다, 아마 그의 사업은 이제는 터전이 서졌다고 보겠다. 그리고 티룸의 이름이 좋다. 낙랑파라! 이것은 강서 고구려 문화의  정화精華를 따다가 관사冠辭를 붙였는데 그 뜻도 무한히 좋거니와 음향이 명랑한 품이 깎은 참배맛이 난다.

그가 처음 이 다실茶室에 투하扱下한 자본은 약 2,000원이란 말이 있다. 설비비 1,100원 유동자본 500원 선전비 30원. 지금 매기每朔의 수지收支는 이러하다. 매상고 300원 원가 및 잡비 200원 순이익 불명 ('인테리 청년 성공 직업', 『삼천리』, 19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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