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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category 친절한 구보씨 6년 전

비누가통과하는혈관을투시하는사람.
지구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의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
거세된양말.(그여인의이름은워어즈였다)
빈혈면포,당신의얼굴빛깔도참새다리같습네다.
평행사변형대각선방향을추진하는막대한중량.
마르세이유의봄을해람한코티의향수의마지한동양의가을

(이상李箱, '건축무한육면각체',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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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부터 두 아이의 연애는 급속도로 발전을 해갔습니다. 무대는 이 집의 뒤채 경손이의 방과, 영화 상설관과 안국동에 묘한 뒷문이 있는 청요릿집과, 등이구요.

그 사이에 경손이는 춘심이한테 코티의 콤팩트와 향수 같은 것을 선사했고, 춘심이는 하부다이 손수건에다가 그다지 출 수는 없으나 제 솜씨로 경손이와 제 이름을 수놓아서 선사했습니다. 두 아이의 대강 이야기가 그러했습니다. (채만식, 『태평천하』,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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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드름바가지는 이 귀퉁이에서 저 귀퉁이까지 한 바퀴를 다 돌고 나더니 되짚어 가운데께로 올 듯하다가 말고서 손가락으로 진열장 유리 위를 짚어 보인다. 으레 입 대신 손가락질을 하는 게 맨 첨 오던 날부터 하던 버릇이다.

계봉이가, 그가 짚는 대로 들여다보니, 이십오 원이나 받는 '코티'의 향수다.

계봉이는 이 도련님 아무거나 되는 대로 짚은 것이 멋몰랐습니다고 우스워 죽겠는 것을 참아 가면서 향수를 꺼내 준다.

여드름바가지는 바르르 떨리는 손으로 물건을 받아 들고 한참 서서 레테르를 읽는 체하다가 계봉이를 치어다본다. 이건 값이 얼마냔 뜻이다.

"이십오 원입니다."

여드름바가지는 움칫하더니 그래도 부스럭부스럭 십 원짜리 석 장을 꺼내어 향수병에다가 얹어 내민다. 언제든지 십 전짜리 비누 한 개를 사도 빳빳한 십 원짜리만 내놓는 터라 그놈이 석 장이 나왔다고 의아할 것은 없다.

"고맙습니다!"

계봉이는 향수와 돈을 받아 들고 레지로 오면서 눈을 찌긋째긋한다. 동무들 모두 웃고 싶어서 입이 옴츠러진다.

계봉이는 향수를 제 곽에 담고 싸고 해서 검인을 맡아 주근깨가 주는 거스름돈과 표를 얹어다가 내주면서,

"고맙습니다!"

하고 한번 더 고개를 까딱한다.

여드름바가지는 먼저보다 더 떨리는 손을 내밀어 덥석 받아 들고 이내 돌아선다.

"안녕히 가십시오!"

계봉이는 등뒤에다가 인사를 하면서 동무들한테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얼굴을 돌린다.

그러자 마침 단발쟁이가 기다렸던 듯이 오르르 달려오더니 여드름바가지가 서서 있던 진열장 위로 또 한층 올려논 진열대 밑에서 조그마해도 볼록한 꽃봉투 하나를 쑥 뽑아 들고 돌아선다. 나머지 두 여자는 손뼉이라도 칠 체세다.

계봉이는 그것이 여드름바가지가 저한테 주는 양으로 거기다가 놓고 간 편진 줄은 생각할 것도 없이 대번 알아챘다. (채만식, 『탁류』,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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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날 서울에 계시렵니까?"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화제에 궁하다. 묻고 나서 남자는 제 자신을 비웃는다. 
"글쎄요……." 
모리쓰 흘 앞에서 여자는 걸음을 멈추고, 그 맞은편, 일본 술집 외등 밑으로 갔다. 핸드백 속에서 콤팩트를 꺼내 들고, 이렇게 밤늦은 거리에서 화장을 고치고 있는 여자의 모양이, 또 그 심정이, 퍽으나 딱하고 천박한 것같이 생각되었다. 그는 우울하였다. 
"실례 했습니다." 
여자는 말하고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팔을 끼는 일 없이 큰 길로 걸어갔다.

 

[...]

전화를 끊고 한참이나 소리가 없기에 살짝 들여다 보니까 화장을 고치고 있다. 분첩을 손가방에 넣고, 비로소 점 안을 둘러보더니, 
"저 그림, 누가 그렸어?" 
"선생님이요." 
"하웅 씨? 누구 얼굴이게?" 
"선생님이요." 
여자는 웃고, 다시 그림을 보며, 무슨 말인지 알 수는 없어도, '곡케이[こっけい 재밌다]……’ 그런 말을 한 듯싶다. 
생각난 듯이 명함을 꺼내, 뒤에 무어라 적어 주며,

"들어오시거든 디려." 
여자가 간 뒤에 명함에 쓰인 글자를 보려니까,

"어디, 이리 가져오너라." 
부엌으로 통하는 위킷으로 주인 선생님의, 무섭게 창백한 얼굴이 내다보고 있었다.

(박태원, '애욕', 1934)

 

**

아내가 외출만 하면 얼른 아랫방으로 와서 그 동쪽으로 난 들창을 열어 놓고, 열어 놓으면 들이비치는 햇살이 아내의 화장대를 비쳐 가지각색 병들이 아롱이지면서 찬란하게 빛나고, 이렇게 빛나는 것을 보는 것은 다시 없는 내 오락이다. 나는 쪼꼬만 ‘돋보기’를 꺼내 가지고 아내만이 사용하는 지리가미(휴지)를 끄실려 가면서 불장난을 하고 논다. 평행광선을 굴절시켜서 한 초첨에 모아 가지고 고 초점이 따끈따끈해지다가 마지막에는 종이를 끄실르기 시작하고 가느다란 연기를 내이면서 드디어 구멍을 뚫어 놓는 데까지에 이르는, 고 얼마 안되는 동안의 초조한 맛이 죽고 싶을 만치 내게는 재미있었다.
이 장난이 싫증이 나면 나는 또 아내의 손잡이 거울을 가지고 여러 가지로 논다. 거울이란 제 얼굴을 비칠 때만 실용품이다. 그 외의 경우에는 도무지 장난감인 것이다.
이 장난도 곧 싫증이 난다. 나의 유희심은 육체적인 데서 정신적인 데로 비약한다. 나는 거울을 내던지고 아내의 화장대 앞으로 가까이 가서 나란히 늘어놓인 고 가지각색의 화장품 병들을 들여다본다. 고것들은 세상의 무엇보다도 매력적이다. 나는 그 중의 하나만을 골라서 가만히 마개를 빼고 병 구멍을 내코에 가져다 대이고 숨 죽이듯이 가벼운 호흡을 하여 본다. 이국적인 센슈얼한 향기가 폐로 스며들면 나는 저절로 스르르 감기는 내 눈을 느낀다. 확실히 아내의 체취(體臭)는 파편이다. 나는 도로 병마개를 막고 생각해 본다. 아내의 어느 부분에서 요 냄새가 났던가를...... 그러나 그것은 분명치 않다. 왜? 아내의 체취는 여기 늘어섰는 가지각색의 향기의 합계일 것이니까. (이상李箱, '날개', 1936)

 

**

"그렇지! 서울이게 저런 인물이 있지!"
하고 혀를 차고,
"이렇게 하이칼라루 집을 짓구, 저런 꽃송이 같은 색시를 데리구, 이 댁 나리는 무슨 복력이실까…… 하늘 파충을 하실 복력이시지……"
하면서 보퉁이를 끄른다.
"그런데 그건 대체 무어요?"
아씨는 몸까지 이리로 돌려 앉으면서 깨어졌던 기분이 다시 들어맞은 듯 목소리가 명랑해졌다.
"박물[외제]입죠 아씨, 박물…… 분도 있고 향수도 있고 구리무도 있고 바늘, 실, 실에도 무명실, 색실, 여러 가지죠, 호호."
"그런 것 다 있다우."
"그럼요, 이런 댁에서야 어디 없어야만 사시나요. 미리 사두셔도 좋구 또 비누 같은 건 늘 쓰시지 않어요. 세숫비누, 빨랫비누, 왜밀, 빗치개 없는 것 없죠. 아씨? 좀 사슈."
"박물, 난 박물장사란 말만 들었지 첨이야, 그런데 맨 화장품이 많은 게로구료. 요즘 바르기 좋은 지방질이 적은 크림이 있소?"
"그리무요. 그럼 있구말굽시오. 어서 좋은 걸로 사서 바르시구 향수도 좀 사서 뿌리슈. 서방님이 더 대견해 하시게 호호……"
[...]

"[...] 이게 요즘 새루 났다니요. 아주 썩 좋은 구리무랍니다."
하고 종이갑에도 들지 않은 것을 하나 집어내 보인다.
"이까짓 거! 조선서 맨든 거로군……"
"아이구! 이까짓 거라뇨. 이게 값두 제일 비싸구, 이제 저 아래서두 낼모레 혼인할 색시가 샀답니다."
"값이 얼만데 제일이란 말요?"
"사십 전요. 이건 사십 전을 받어도 사 전밖에 못 남는다우. 이렇게 이구 다니구 아씨……"
"우린 이런 건 그냥 줘두 안 써요. 그래 이런 것밖엔 없수?"
"아규머니나! 이게 제일 좋은 건데 어쩌나!"
"폼피엔[Pompien] 없소?"
"뭣이요? 아씨?"
"폼피엔 데이 크림이라구 폼피엔…… 요만한 한 병에 일 원 오륙십전 하는……"
늙은이는 입을 딱 벌렸다.
"그건 구리무가 아니라 무슨 불사약인가요? 원! 일 원 오륙십 전이 어디야?"
"겨울 같으면 이런 건 손등 터지는 데나 발르자구 하나 사겠는데…… 끌르라구 해서 끌른 건 아니라두 이왕 끌려놓았으니 아무거나 하나 사긴 사야겠는데…… 저어 여보? 뻬이람[Bay Rhum] 있소?"
"그게 무슨 소리야요? 뻬…… 호호호 난 이름두 옮길 수가 없네."

"뻬이람 왜 머리에 윤끼도 나고 향내도 나라고 뿌리는 물이 있지 않우?"
"오! 원 아씨두 있구말구 화류수 말이로군! 화류수라고 해야 알아듣지……"
"화류수요?"
"그럼, 그걸 화류수란답니다."
"화류수! 아이 이름두 치사하긴 허우."
"자 이런 거 말씀이죠. 머리에 뿌리는 향수물, 화류수."
하고 노파는 정말 뻬이람병 하나를 집어내었다. 아씨는 그것을 받아 들고 상표부터 들여다 보았다.
"이것두 조선 거로군. 병은? 오─라 서양 것 빈 병을 갖다 넣었군……"
하고 아씨는 연지같은 붉은 물을 짤락짤락 흔들어 해에 비춰 보더니, 
"아이 치사스러 뭬 저렇게 뜨물처럼 뿌─옇게 떠오를까."
"아니야요 아씨. 이건 정말 비싸구 또 삼오당이라구 조선서 제일가는 화장품회사서 나온 거라우. 아씨가 모르시지 원!"
"그러우, 내가 몰루."
하고 아씨는 조소에 가까운 웃음으로 그 화류수라는 물병을 아무렇게나 노파에게로 밀어놓았다. 그리고 결국 아씨가 산 것은 빨랫비누 두 장이었다.
"그저 그래. 이런 하이칼라 댁에서들은 사느니 빨랫비누뿐이야……"
"물건을 좀 조촐한 걸 가지구 다니죠. 그거 어디 하나 살 것 있수? 그래 이런 크림두 얼굴에 사 바르는 사람이 있소?"
노파는 슬그머니 화가 나는 듯,
"장사하는 살마은 물건도 자식 같답니다. 내 눈엔 내 자식이 제일이듯이…… 그런데 그런 말씀을 아씨두……"
하고는 얼른 아씨의 눈치를 살피나. 그리고 이내 딴전을 울리었다.
"집두 참! 이 성북동엔 느느니 하이칼라집들이야. 그래 언제 이렇게 드셨나요?"  ...  (이태준, '박물장사 늙은이', 『신가정』, 1934.2.)

 

**

"사실 그런 겁니다. 생각험 사는 사람들은 알맹이보다도 포장과 선전비에 대한 부담이 더 큰 겝니다."

"아니, 비밀이시겠지만 좀 알려주세요. 크림하면, 실비가 일원이 먹는 크림이라면, 그 속에 포장비와 선전비가 몇 퍼센트나 들어 있습니까?"

"뭐 다 아는 사실인걸 비밀될 거야 없지요. 실비 일원이 먹는 상품이라면 알맹이는 삼십전, 칠십전은 포장비와 선전비지요. 게다가 이익을 붙여야 하지 않습니까? 또 소매상에게 이익을 줘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실비 일원이면 오륙십전 더 얹어 일원 오륙십전이란 정가가 나오는 거지요."

"아유! 그럼 사는 사람은 결국 크림 삼십전어치 사기 위해 일원오륙십전을 내야 되는 거죠?"

"그렇습니다."

하고 그는 허허 웃었다.

"왜 포장본위로 말고 내용본위로 않는 건가요?"

"사지 않는 걸 어떻겁니까? 쌀과 나무와는 달릅니다. 내용은 비록 나쁘더라도 외장이 화려해야 삽니다그려."

"그건 중대헌 문젠데요. 아무 소용도 없는 장식을 위해 육십퍼센트의 노력과 물질을 바친다는건!"

"그 점엔 화장품의 고객인 여성들 자신의 반성부터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모든 사치품이란건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발달되는 거니까요." (이태준, 『행복에의 흰손들』,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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