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성당과 교회

category 친절한 구보씨 2019. 4. 8. 15:07

해가 인왕산 마루턱에 걸렸다. 종로 전선대 그림자가 길게 가로누웠다. 종현 천주당[명동성당] 뾰족탑의 유리창이 석양을 반사하여 불길같이 번적거린다. (이광수, 『무정』, 1917)


**
아침 여섯시면 종현鐘峴 천주교당에서 으례 종소리가 울려왔다. 뎅-뎅…… 단조한 금속의 소리나, 고통과 원망과 고독과 피곤으로 찬 송빈이의 귀에는 그냥 최고 최대의 음악이었다...

송빈이의 마음은 무엇에나 의지부터 하고 싶었다. 송빈이는 하루 아침 다섯시에 일어났다. 아침 미사종이 울리기 전에 천주교당으로 올라 왔다. 처음 와 보는 데다. 거의 남산의 중턱만큼이나 높은 지대여서 장안이 눈 아래 즐비하게 깔린다. 교당은 가까이 와보니 높으다는 것보다는 장엄스러운 편이다. 서울의 여명黎明은 먼저 이 교당 첨탑에 비치는 것이며, 좌우 남하의 홍예문들은 거기가 곧 천국에 들어가는 문처럼 위엄스러웠다. 새벽 하늘의 이슬이나 받아 먹고 사는 듯한 눈 맑은 신부神父들이 검은 법의자락을 끌며 깊은 사색에 쌓여 거닐었고 한두사람씩 모여드는 평신도들도 아직 먹고 자기는 항간에서 하되 언제든지 우리의 돌아올 데는 여기라는 듯이 뒤 한번 돌아다들 보지 않고 극히 평화스럽고 담박한 얼굴들이었다. 송빈이는 그네들이 다 회당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먼발치서 바라 보았다. 종이 울렸다. 각일각 어둠이 물러가는 장안은 돋아 오르는 해로 인해서가 아니라, 여기서 울리는 종소리 때문에 광명에 찾지는 것 같았다. 장안은 내려다 볼수록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연기가 일어나고 가진 수레가 달리고 즐비한 기와집들. 거만스럽게 울둑 불둑 솟은 고층 건축들.

'모두 사람들은 사는 거다! 현실적으로 굳세게 사는 거다! 유팔진이와 장은주도 저 아래서 현실적으로 행복을 경영하며 있다! 사람은 물론 너 나 할 것 없이 죽고 만다. 죽을 바엔 애써 무엇 하랴? ...

송빈이는, 한폭의 지도처럼 서울을 짓밟는 기세로 종현을 뚜벅뚜벅 내려 왔다.

'지금은 첫째도 공부요, 둘째도 셋째 넷째도 공부다!" (이태준, 『사상의 월야』, 1941. *위 내용의 시간적 배경은 1923년경)

 

**

▲ 영화 『미몽』(1936) 중에서 (경성전기 옥상에서 바라본 명동성당)

벌써 라일락 나무는 가지마다 눈마다 버들개지만큼씩 꽃망울이가 부르터 올랐다. 완호는 이 날 아침에도 종현鐘峴 성당 마당에 올라 이슬 머금은 라일락의 꽃망울을 한참이나 서서 들여다보았다.
"봄!"
그에게 더 다른 생각이 일어날 새 없이 면류관처럼 아침 햇발을 이마에 인 성당 첨탑에서 아침 '앤절러스'가 울리기 시작했다. 완호는 이 날도 남보다 가장 황급히 층계를 뛰어올라 간 것이다. 제일 먼저 제일 앞 자리로 나아가야 남순 아니 포리나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포리나는 아직 수련시대였다. 아직 수녀의 제복을 입지 못하였고 그냥 검은 저고리 검은 긴 치마에 혹호접과 같은 검은 수건을 쓰고 제대를 향하고 제일 앞줄에 나와 앉는 것이었다.
다른 수녀들도 모두 그랬거니와 포리나도 오직 엄숙의 황홀경인 제대를 향하여만 얼굴을 들고 얼굴을 숙이고 할 뿐 조금도 한눈을 팔거나 고개를 돌리는 일이 없었다. 한번 꼭 한번 성당 안으로 들어서는 길에서 마주치는 곳에 완호가 섰었으니 무심코 눈을 들어다가 한 번 시선이 부딪쳤을 뿐, 그러나 그 시선은 섬광과 같이 보이던 그 순간에 사라진 것이요, 결코 안색을 붉히거나 다시 고개를 돌리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완호는 어떤 독실한 신자보다도 더 정성스럽게 매일 아침 여섯시 미사마다 참례하는 것이었다. 이 날 아침도 미사가 끝난 뒤 그림자의 무리처럼 수녀들의 고요한 걸음이 다 사라진 뒤 다가감한 서정시인의 눈으로 성당마당을 나설 때였다. 누가 어깨를 툭 치며,
"살베도미네"
하였다. 완호는 휙 돌아다 보았으나 입과 눈을 딱 벌리었을 뿐 '에-멘"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방협이었다.
[...]

"방군? 자넨 여기 남순씨가 와 있는 걸 알구 있나?"
"거야 자네보단 내가 아마 시골서라두 먼저 알았을 걸세. 저이 엄마 되는 사람이 와서 넣구 간 걸 알았으니까."
"그런 걸 다 알구 왜 가만 있었나?"
"그럼 어떡하나? 여긴 내가 대적할 데가 못 돼…… 또 포리날 위해선 지극히 안전지댈 걸세. 여긴 금렵구야, 이 사람."
"금렵구라니?"
층계를 앞서 내려오기 시작하던 완호는 잠깐 멈칫하며 방협을 돌아보았다.
"금렵구禁獵區 모르나? 총을 못 놓는 델세. 아무리 고운 새가 날려두 보기만 할 뿐이지 쏘지 못하는 데가 금렵구야…… 허! 그런데 아니 놀랄순 없는 일야."
[...]
완호는 성당쪽으로 섰던 얼굴을 돌려 자동차 소리, 전차 소리, 모-든 사람과 기게의 소리가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아침의 서울을 내려다 보았다. (이태준, '애욕의 금렵구', 『중앙』, 1935.3.)

**

▲ 정동교회

옛날 같으면 정동 대궐과 서궐, 미국 공사관, 아라사 공사관과 연락하던 복도가 있던 고갯마루터기를 영성문 쪽으로부터 허둥지둥 올라오는 검은 그림자가 있다. 그는 마치 포수에게 쫓겨오는 어린 사슴과 같이 비틀거리며 뛰어온다. 그 그림자는 고개 위에 우뚝 섰다.
“내가 어디로 가는 것이야?”
하는 듯이 그는 사방을 둘러본다. 그의 머리와 어깨에는 촉촉한 눈송이가 사뿐사뿐 내려와 앉는다.
그는 이윽히 주저하다가정동 예배당쪽으로 허둥거리고 걸어내려온다. 뒤에는 조그마한 발자국을 남기면서 그는 비탈을 뛰어내려오는 사람 모양으로 재판소 정문 앞까지 일직선으로 내려와 가지고는 또 이쪽 저쪽을 돌아보더니 무엇에 끌리는 모양으로 예배당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예배당 앞에 다다라서는 그는 예배당 문설주를 붙들고 쓰러지는 몸을 겨우 붙드는 자세를 취한다. 그의 머리와 어깨는 희다. 회색 하늘에서는 배꽃 같은 눈이 점점 더욱 퍼부어 내린다. 그는 정선이다.
“하느님, 나는 어디로 가요?”
하고 정선은 예배당 뾰족지붕을 바라보았다. (이광수, 『흙』, 1932)

 

▲ 안동교회

**

소학교에서 헤어진 지 3,4년이 되었고 그 후 덕기는 화개동에서 가까운 안국동 예배당[안동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오래 못 보았지만 그동안 경애는 놀랄 만큼 커져서 어른 꼴이 박히고 자기 따위는 어린애로 내려다보는 것 같아서 반가우면서도 말도 변변히 붙여보지 못하고 경애보다도 자기 편이 더 열없어 하던 생각이 난다. 그때 부친에게,
"그애가 왜 왔었에요?"
하고 물어보니까 제 어머니 심부름으로 왔단다 하면서 경애 모친이 남대문교회에 다닌다는 것과 또 부친은 가옥에서 나와서 근 일년이나 앓아 누웠는데 이제는 죽기나 기다리는 터라는 말을 간단히 들려주었다. 그때는 다만 가엾다고만 생각하고 신지무의 하였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때 아마 모친의 심부름으로 돈을 취하러 왔던 것 같았다. (염상섭, 『삼대』, 1931)

 

**
'빌어먹을…… 참말이지 오늘 같은 날, 계나 좀 빠졌으면……'
그놈이 '돌다가' '돌다가' 쏙 빠졌으면, 온 참, 얼마나 좋을꼬 하고, 마침 지내는 수표교 예배당안에서 풍금 소리가 들리는 것에,
'오, 참, 오늘이 공일이래서, 그래, 예배들을 보는군……'
그와 함께, 딸의 시집살이가 불쌍하고 자기 신세가 너무나 고독하대서 바로 한 달이나 전부터 뒷집 마누라를 따라 예배당 다니기 시작한 이쁜이 어머니를 생각해내고,
'그 마누라도 오늘 예배를 보러 갔겠군……'
예배당엘 다니면 참말 좋은 일이 생기고, 신세가 편안해질까?
그렇다면 자기도 지금 당장에 저 안에를 뛰어들어가 예수를 믿고, 그리고 오늘, 곗돈 좀 타 먹었으면 하고, 그러한 난데 없는 생각조차 하였던 것이나, 그 즉시 수표교 다리 모퉁이에 한 젊은 양복쟁이가 누구를 기다리기라도 하는지, 주춤하니 서 있는 것이 눈에 띄자,
'아니, 저게……'
하고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상고해 보니, 이쁜이 서방 강가가 분명하였다. (박태원, 『천변풍경』, 1936[2005], 문학과지성사, 344-5쪽)

**
만약 제군이 전도회관 앞을 지날 때 제군을 죄악의 구렁에서 구하려는 인사가 제군에게 잠깐만 안에 들어가 좋은 이야기를 듣고 가기를 요구하엿다 하면 그리고 불행히도 제군이 천국의 문전에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불신자였을 뿐 아니라 또 산보와 설교가 양립할 것 같지 않게 생각이 되었다 하면 제군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그 난관을 통과하여야 한다.
"○○교회로 가는 길이올시다." ─만약 목사 이름을 기억한 것이 있거든 "○○○씨도 가끔 이곳에 전도하십니까?"
─만약 교회나 목사의 이름을 제군이 아는 것이 없다 하면 또 설사 아는 것이 있더라도 순하게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는다 하면 방법으로는 매우 열등한 것이다.
"지금 의사를 청하러 가는 길입니다."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중 상책은 그의 앞에 은근하게 약례約禮를 하고서 "저, 신자입니다."─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 방법으로 전도사의 절대한 존경을 받은 일이 실로 한두 번이 아니다.

▲ 박공지붕 형태의 정동 구세군 중앙회관

만약 제군의 행로에 구세군영의 금주선전신문禁酒宣傳新聞이 앞을 기다리고 있다 하면 이에 대한 최선의 대책은 일금 2전을 투投하여 금주 선전에 찬의를 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제군의 재정이 1, 2전이라 할지라도 소홀히 취급할 수 없게스리 긴축을 요구한다면 제군이 상대자를 피한다든 상대자와 언쟁을 한다든 하는 추태를 연출하지 않기 위하여서는 다음과 같은 방책이 있다.

─만약 묵은 금주지를 소지한 것이 있거든 그 일단을 주머니에서 조금 꺼내 보이고 묵례로 그의 앞을 지나간다는 것.

─만약 불행히 그러한 것이 없을 때에는 그리고 다행하게도 구세군영에 있는 모든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있거든

"모某 씨와 각별하게 친한 사이지요." 하고 상대자가 어리둥절한 사이에 모른 척하고 지나가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책策의 가장 열劣한 자로 잘못한 당자에게 향하여 당자의 이름을 고하는 경우와 같은 위험이 없지 않다. 까닭에 주의를 요한다. (박태원, '이상적 산보법', 동아일보, 1930.4.15.)

'친절한 구보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방과 축음기  (0) 2019.04.08
요릿집- 명월관과 식도원  (0) 2019.04.08
화장품  (0) 2019.04.05
동경東京  (0) 2019.04.05
낙랑파라  (0) 2019.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