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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 - 삼대 (11)] 효자동 전차종점

category 근대문학과 경성 2019. 5. 2. 09:55

"왜 무슨 일이 있어?……"
경애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올지 공연히 애가 쓰이면서 [상훈이] 또다시 물었다.
"글쎄, 학교를 어떻게 할지요... 다른 데로 주선해주실 수 없을지요?"
삼각산에서 내리지르는 저녁 바람이 영추문 문루의 처마끝에서 꺾이어서 경애의 말을 휩쓸고 날아간다.
두 사람은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왜 별안간 그런 생각이 든 거람?……"
물론 그 심중을 못 살피는 것이 아니나 이런 소리를 하였다.
"……"
말은 또 끊겼다. 총독부 앞으로 나오려니, 전등불이 환한 전차가 효자동서 내려와 닿다가 떠난다.

[...]

덕기는 오늘 병화의 상점 구경을 나섰다. 초상 이후로 처음 출입이다. 복재기지마는 상제 대신 노릇도 하여야 하고, 집안 처리도 할 일이 많아서 바쁘기도 하였고, 정초에 나다닐 필요가 없어서 들어앉았다가 오래간만에 길 구경을 하는 것이다. 전차가 효자동 종점에 가까워졌을 때 덕기는 차 속에 일어서서  박람회 이후로 일자로 부쩍 는 일본집들 유심히 보았으나 산해진이란 간판은 눈에 아니 띄었다. 차에서 내려서 되짚어 내려오며 차츰차츰 뒤지다가 좌등상점이란 간판이 붙은 가게의 유리문 안을 기웃해보니, 과실이 놓이고 움파니 미나리니 하는 것이 눈에 띈다. 담배도 있다. 담배나 한 갑 사며 물어보리라 하고 문을 득 여니 여점원이 해죽 나온다... 필순이다!

[...]
덕기는 그래도 그대로 갈 수가 없어서 잠깐 서성거리니까 문이 드르르 열리며 아까 왔던 청년이 문밖에 우뚝 서서 병화를 건너다보고 고갯짓으로 불러낸다.
병화는 기다렸다는 듯이 선뜻 나서며 덕기더러,
"그럼 자넨 어서 가게. 내일 모렛새 만나세."
하고 나가다가 문안에 진흙 발자국이 드문드문 몹시 난 것을 보자 필순을 돌아다보며,
"이거 웬 흙이 넉절했나. 좀 쓸어버려요."
하고 소리를 친다. 필순은 대답을 하며 쫓겨나왔으나 이런 것 저런 것 경황이 없었다.

밖은 한나절 녹인 땅이 벌써 꺼덕꺼덕 얼어간다. 두 청년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 눈치도 없이 넘어가는 햇발을 비껴 받으며 전차 종점으로 걸어간다. 필순과 덕기는 쓸쓸한 뒷모양을 바라보다가 전차 종점에서 오른쪽을 꼽드려 가는 것을 보자 덕기는 잠깐 다녀오마 하고 따라선다. 필순은 덕기마저 걸려들까보아 애가 쓰이기도 하나 말릴 수도 없었다. (염상섭, 『삼대』,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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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란 다 그런 겝니다. 난들 그런 것을 하기가 좋아서 하겠소. 어쨌든 지금 연말도 되구 했으니 교장한테 무어 과자라도 한 상자 사가지구 찾어가두시란 말이오." 
말해 던지고 T교수는 그대로 가버렸다.
[...]

김강사는 악마의 마음을 먹은 심잡고 과자상자를 들고 서대문행 전차를 탔다. 그러나 그의 결심은 오래 계속되지 못했다. 그는 광화문 정류장에서 전차를 내려 효자동 가는 전차를 타지 않고 천천히 종로로 갔다. (유진오, '김강사와 T교수',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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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련은 어느 날 준상과 함께 경무대 뒤로 돌아서 삼청동으로 내려오는 산보를 같에 하게 되었다. 문임에게도 말없이 혜련은 준상과 사오차 편지 왕복이 이썬 끝에 준상의 제의로 오후 일곱 시에 효자동 전차종점에서 만나기로 하였던 것이다. 혜련은 일생 처음의 랑데부라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전차를 타고 와서 약속한 시간보다 한 십 분 늦게 정한 처소에 왔다. 준상은 정복 정모로 전차 종점에서 연해 시계를 보면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광수, 『애욕의 피안』, 1936)

 


"당시 저는 대학 2학년이었습니다. 4·19데모는 주로 문리대 쪽에서 조직했고, 상과대학에서는 사전 조직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저는 저학년인데다 아르바이트 하느라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시위에는 물론 참가했지요.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연좌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지금은 청와대로 이름을 고쳤지만 당시의 경무대 앞 효자동 전차 종점에서는 이미 발포가 시작되어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고등학생 한명이 달려와서 피묻은 러닝셔츠를 펼쳐보이며 울면서 외쳤습니다. 텅빈 국회의사당 앞에 앉아서 뭘 하느냐는 거였어요.

그래서 우리들 사이에서는 경무대로 밀고 가자느니, 가서 개죽음 당할 필요가 없다느니 설왕설래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저게(피묻은 셔츠) 어째서 개죽음이냐”는 고함소리가 났어요. 돌아다 보았더니 의외에도 가까운 친구였어요. 그래서 더욱 충격이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경무대 쪽으로 달려갔어요. 저도 종암동의 학교에서부터 줄곧 저와 함께 스크럼을 짜고 시위에 참가했던 친구를 따라 경무대로 향했습니다. 그때 그의 애인이 달려와서 그의 팔을 잡고 매달렸습니다. 저는 붙잡는 애인이 없어서 그냥 경무대로 갔었어요. 저희 선배 한 분이 그 곳에서 숨졌습니다." (신영복, 계간 『이론』, 1992.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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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맑은 나라 거리와 거리

광화문 앞 마당, 효자동 종점에서

노도처럼 일어난 이 새피 뿜는 불기둥의 항거 ─

충천하는 자유에의 의지 ─ 

(신동엽, '아사녀',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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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로 지하도 공사를 위해 운행을 중단했던 남대문~효자동간 전차는 다시는 운행되지 않았다. 그해(1966년) 10월31일에 한국을 방문한 존슨 미국 대통령의 남대문~서울시청~청와대 행차의 길을 미화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전차궤도 위에 콘크리트를 퍼부어 덧씌워버린 것이다. 레일을 파내고 다시 포장하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손정목, 『한국 도시 60년의 이야기』, 1, 2005. 1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