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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 - 모던 라이프 / 베이비 골프

category 근대문학과 경성 2019. 6. 3. 11:33

▲ 매일신보 1932.4.15.

…일요일

  

무릇 ‘모던’ 두 글자[二字]와는 인연이 먼 내가 이것을 쓴다는 것이 적지 아니한 외도外道인 성싶다. 그러나 ‘여왕님의 명령’이니 거역해서는 아니 된다. 써야지.

현대 도시의 ‘인텔리’ 등은 자극의 만성 중독자들이다. 색채는 강렬한 것을 구한다. 그 일례로 요즘 여자들의 의복의 빛깔과 무늬를 들면 그만이다. 음향은 소란騷한 것을 구한다. ‘재즈’가 성행하는 것은 그것이 가두街頭의 소음을 능히 이겨내는 때문이다.

‘스포츠’에는 모험성이나 살벌성을 띠운 것을 구한다. 그래서 등산과 ‘복싱’이 유행한다. 오락은 복잡하고도 아기자기한 것을 구한다. 그래서 ‘베이비 골프’가 ‘모던’ 가두의 일경一景을 이루게 된 것이다(고 나는 생각한다).

 ‘베이비 골프’라고 누가 이름을 지었든지 왜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나더러 이름을 지으라고 했으면 ‘소꿉질 골프’라고 했을 것이다. 훤하니 넓은 잔디 벌판에서 딱 힘있게 ‘골프’를 치는 흉내로 손바닥 만한 마당에 열여덟 개의 다 다른 ‘코스’를 만들어 놓고 조그마한 공채로 조그마한 공을 쳐서 구멍으로도 넣는 이 얄망궂은 장난이 ‘소꿉질 골프’다. 

일례를 들면 약 40도 가까운 경사진 ‘코스’가 있다면 이놈을 밑에서 딱 쳐올리면 공이 위로 올라가기는 하나 대개는 구멍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도로 다그르르 굴러 내려오곤 한다. 어느 ‘코스’든지 구멍에 집어넣기까지 친 횟수를 세어 ‘메모’에 적어 가지고는 18 코스를 승해서 점수가 적어야만 성적이 승편勝便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베이비 골프’니 ‘소꿉질 골프’니 또 얄망궂은 장난이니 한 말을 듣고 그러면 정말 아동의 유희장인가 여겨서는 오해다.

천만에! ‘베이비 골프장’에 모여드는 사람들이 누구라고! 적어도 조선 서울서는 1933년 식이라고 자랑하는 새로운 감으로 새로운 맵시로 지은 양복을 입고 얼굴이 해맑고 어제저녁에 ‘바’ ××에서 어찌어찌했다든가 쯤의 사교적 담화쯤은 척척 내어 놓을 만한 청년신사들이다. 개중에는 당당히 정식을 갖추어 ‘골프’바지를 입은 용사도 더러는 섞이어 있다. 또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얼굴은 몹시 익은 숙녀도 만록총중 수점홍萬綠叢中 數點紅으로 섞이어 있다. 또 무슨 꼬[××子]상과 동반해 온 이도 있고 ×홍[紅]이나 △월[月]이나 ○옥[玉]이를 데리고 온 이들도 있다.

일후日後에 내 친구가 경성부윤이 된다면 나는 그에게 권고하여 ‘모던 보이, 모던 걸 사절 - 가족동반자 두뇌노동자 대환영’이라는 패牌를 써 붙인 ‘베이비 골프장’을 부영府營으로 많이 만들어 놓게 하겠다. (『조선일보』, 1933.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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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스트리트 한낮을 속이는 숙난한 메인 스트리트

이곳을 거니는 신상紳商들은

관능을 어금니처럼 아낀다

밤이면 더더더욱 열란熱亂키를 바라고

당구장- 마작구락부- 베비, 골프

문이 마음대로 열리는 술막-

카푸에 - 빠- 레스트란- 차완茶碗-

젊은 남작도 아닌 사람들은 왜 그리 야위인 몸뚱이로 단장을 두르며

비만한 상가, 비만한 건물, 휘황한 등불 밑으로 기어들기를 좋아하느냐! (오장환, 수부首府, 1936 중)


▲ 경성 본정  미니(베이비) 골프장 (1930년대)

베이비 골프장 본정통에 개설  

시내본정 2정목 구舊경성전기 사옥터[일한와사 영업소]에 베이비 골프장을 설치하고 오는 9일부터 개장하기로 되었다 한다. (매일신보, 19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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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골프대회 

골프경기의 초보로도 볼 수 있는 '베이비 골프'는 바야흐로 대중화하여 가는 터인데 조선인 경영의 인사동 골프장에서는 돌아오는 9월30일, 10월 1,2일의 3일간 골프대회를 연다하며 용산철도국 골프장에서는 10월8일 오후 2시에 골프대회를 연다 한다. (동아일보 1932.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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