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정취는 밤에 있다. 도회고 향촌이고 산곡이고 수변이고 간에 여름밤은 봄 아침, 가을 석양, 겨울밤과 같이 헤일 것이다. 여름밤은 짧은 듯하면서도 긴 것이다. 새로 한 시, 두 시... 밤 가는 줄을 모른다. 뒤뜰에서 목물한 후 앞마당에 모깃불을 놓고 평상에 걸터 앉아 부채질도 한가로이 이 이야기 저 이야기에 반半 밤은 벌써 훌쩍 간다. 앞 발에 널어 달밤의 세찬 이슬 받은 푸지개를 주섬주섬 거둬들이어다가 마당에 채를 잡고 벌겋게 달아오른 다리미의 불똥을 날리면서 '속살속살' '깔깔깔' 하는 동안에 달 그림자가 담 밑에 이우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는 것도 조선의 여름밤 풍경의 하나일까? 반딧불을 동무 삼아 원두막 위에 동그란 목침 베고 데굴데굴 굴르며 앞 마을 처녀, 뒷동리 총각의 아기자기한 염문 타령에 얼이 빠지다가 수박, 참외 따가 놓고 단침으로 묵을 축이는 것이 농가의 젊은네의 여름밤이고 보면 우거진 고목 밑에 곰방대 불만 어두운 밤을 보살피듯 번뜩여가며 총총 두레박인 별 하늘을 이리저리 쳐다보고 연사年事를 염려하는 촌 노인의 여름밤도 짧으나 길고 무더우나 청신한 맛을 잃지 않으리라. 그 이상으로 로맨틱한 맛을 구하지 말라.
그러면 도회의 여름밤은 그 어떠한고? 도회의 여름밤은 가두街頭의 밤이요 가두의 밤은 사람 구경, 불구경이다. 대낮같은 큰 길거리에 흰 옷 입은 남녀노소가 정처 없고 취미 없이 오락가락하는 동안에 더운 김 서린 한 밤은 새이고 만다. 그러면 서울 사람이 여름밤에 모이는 곳은 어디인가? 우리는 종로 야시夜市로 비지땀을 흘리며 헤매인다. 그러나 "싸구려" 소리와 "한푼 줍쇼" 소리가 전원의 개구리 우는 소리보다 낫다 할까? 양복신사는 한강으로 모여 들어 쓰러질 듯한 철교 위, 자살자를 계칙戒飭하는 '一寸お待ち'(잠깐 기다리시오) 패牌 아래에서 배회하거나 서양여자洋女의 자리옷 입은 양장 소녀와 작은배 젓기短艇와 일본술 마시며 장고 치기로 넋이 빠진다. '一寸お待ち'에도 여름밤 풍치는 남았는가? 소위 풍류객은 악박골 약수를 마시려고 자동차를 몰아나간다. 물병 메고 콧노래 부르며 앞서 가던 사람은 입에서 욕이 아니 나올래야 아니 나올 수 없다. 물 마시기 전에 뽀얀 먼지를 무더기로 들이키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기껏 나가서는 수천의 생령生靈이 까닭 있고 없고 간에 신음하고 있는 붉은 벽돌집[서대문형무소]을 바라보며 김 나간 미지근한 물 한 잔에 생돈 주고 헛배 불러서 어깨로 숨을 쉬며 돌쳐서 온다. 우리는 한양공원으로 돌아 조선신궁의 삼백팔십 몇 계단이라는 돌층계를 한 층 두 층 정성껏 밟고 내려온다. 내려와서는 기진하고 '게다' 소리만 귀에 요란히 남을 뿐이다. 절 놀이도 여름 행락의 하나다. 그러나 여기에서 나라즈케奈良漬가 쫓아와서 풀나물 곁에 채를 잡고 있고 부처님은 무색한 듯이 이맛살을 찌푸리고 깜량 없이 모여드는 중생을 가엾이 비웃을 뿐이다.이러한 것이 도회의 정조- 도회인의 여름밤 기분이다.
봄소식을 우이동에 듣고 창경원의 야앵夜櫻[밤 벚꽃놀이]에게 꽃소식花信을 받는 서울 사람이라 여름밤을 이렇게라도 맞고 보냄이 팔자에 겨운 일이겠고 놀리는 세상이 아니고 보니 이도 저도 없은 들 어떠리요 마는 이러한 것을 가지고 제법 풍운이 진진한 조선사람의 살림이거니 하는 것만은 딱하다는 말이다. 우리의 도회가 퇴폐하였다는 것도 아니요 우리의 생활에 현대적 퇴폐의 기분이 넘친다고 개탄함도 아니다. 다만 이 딱한 몰풍취, 이 딱한 혼돈·난조를 드러내는 세대가 고금에 다시 없으리라는 말이다. 과연 우리는 절에 가서 나라즈케에 입맛을 다시고 한강에 그 소위 '모던걸파' 보트를 젓느니보다는 원두막에 누워 달을 벗삼아 개구리의 사랑가에 귀를 기울여나 볼까. 그것은 비록 간소, 단조하되 오히려 구차한 도회미가 없느니 만큼은 순수 단일한 조선 정서를 그 속에 찾을 수 있으리라. 그러나 나는 아무리 하여도 도회인이다. 도회를 완전히 떠나서 살 수도 없고 또 도회를 떠난다 손치더라도 몸에 베인 도회 기분은 어디까지 쫒아 다닐 것이다. 그렇다고 취미와 생활의 순수 단일을 요구하는 것과 모순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철두철미 도회인이니 만큼 도회의 여름- 도회의 여름밤에서도 일맥의 정취를 감각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여성미라는 것은 어떠한 경우, 어떠한 곳에서든지 빛이요 기름이거니와 조선 사람의 생활과 같이 이러한 무미건조한 속에서는 한층 더한 효과를 주는 것이다. 더구나 자유로운 사교가 허락되지 않느니 만큼 그러한 것이다. 여름의 여성 - 그것은 봄의 여성처럼 육체의 미를 더함은 아니로되 여름의 생활이 개방적이니 만큼 가두에 나타나는 여자가 많기도 하거니와 그 의상의 경쾌·정묘[淨妙]한 점으로 보아 나는 여름의 여성을 찬미한다. 그러나 의상이란 밤에 볼 것은 아니다. 가히 금의야행錦衣夜行이라고 비웃는 뜻을 알찌라. 그러므로 여름의 여자의 의상을 감상할 량이면 도회의 밤에 찾을 것이 아니라 밤보다는 석양 판에 엿볼 것이다. 사실 산뜻이 하고 곱게 꾸민 여자의 뒷모양을 석양판 햇발 밑에서 몇 곱이나 돋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요사이의 서울 길거리 같이 뒤숭숭 산란하여서는 그만한 정취나마 손상됨이 많지마는 그래도 육조六曹 앞에서 대한문大漢門으로 가는 길가에서 물을 뿌린 번지르르한 대로상을 옥색 생물 치마에 비단 적삼을 받쳐 입고 색 맞은 양산으로 지는 해를 가리며 거니는 여자의 뒷맵시를 건너다 보는 것은 일종一條의 양미凉味를 끼치여 주며 삽삽颯颯한 상미爽味를 깨닫게 한다. 그러나 보기는 보되 모름지기 멀리 뒤로 바라볼지니 무엇이나 가까이 보면 환멸을 느끼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잠깐 생각나는 것은 그리면 머리를 쪽지고 긴 치마에 소위 외씨 같은 발길이 나오는 여자의 자태姿態냐, 그렇지 않으면 서양머리洋頭 서양구두洋靴의 신여자新女子냐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의 조선 여자(남자도 그렇지마는)에게는 보법步法이 두 가지로 나누어 있다. 구조선 보법步法과 신조선의 보법步法- 말이 좀 우스운 듯하다. 하여간 전자를 극단으로 대표한 것은 기생이요 후자는 일반 신여성의 보조步調이다. 나의 주의상으로 보아서는 물론 신조선 보법步法에 찬성이나 취미로 보아서는 쪽진 머리에 조선신 신고 구조선 보법步法으로 걸어가는 것이 비위에 맞는다. 전자는 과도기에 있는 탓으로 균제均齊[균형 또는 대칭]의 미를 잃고 후자는 수 백 수 천년 이어진 세련된 보조步調이기 때문이다. - 이 말은 왜 하였느냐 하면 사람의 걸음걸이라는 것은 형자形姿의 미에 큰 관계가 있고 또한 그것이 시대상을 표백表白하는 것이며 그 사람의 성격을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여담으로 한 것이다. 사실 말이지 아무리 잘 생기고 아무리 곱게 꾸미었으되 걸음걸이가 제 격에 드러맞지 못하면 보고 싶지는 않다. 요사이 거리로 다니며 '여름 석양 판의 여자'의 미를 행여나 놓칠 세라고 유의하여 보지마는 멀리 뚝 떠어놓고 제법 구격[具格]에 맞게 걸어가는 여자가 여간 드물지 않다.
그러나 실상 여름 여성의 미는 그 용모에서는 물론이거니와 그 의상보다도 그 육체의 부분적 노출에서 발견할 것이다. 나는 서양풍洋風에 서투르고 그 부분적 정취도 이해하기 어렵거니와 나의 이해하는 범위 내에서는 여름의 일본 여자의 발의 미를 더욱 찬상[讚賞]하려 한다. 원래 나는 일본의 자연, 일본의 인물 또는 일부의 생활 상태와 취미를 싫어하지마는 다만 여자의 언어와 의복에 대하여는 하필 눈에 익었다는 의미로 뿐만 아니라 언어의 선율과 의복의 색채로 보아 마음에 든다. 그러나 그보다도 여름의 일녀日女의 벗은 발에서는 그 이상의 미를 발견할 수 있다. 여자의 맨발裸足의 곡선미- 그것은 반드시 일본 여성에게서만 구할 것은 아니로되 조선 여자에게서는 물론이요 서양 여자에게서도 구지부득求之不得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여름 여자의 발의 미는 미모 이상의 매력을 가진 것이다. 더구나 전등불 밑에서 보는 여자의 균제均齊 있는 맨발裸足의 곡선미, 혈색미는 다만 육체미, 감각미 뿐만이 아니다. 미의 앞에 일종一條의 경건미를 느끼지 않는 자가 그 누구랴.
나는 봄보다 가을, 여름보다 겨울을 즐긴다. 골격으로 보아서는 그다지 비만한 체질은 아니로되 여름은 즐기는 바가 아니다. 더구나 해수욕은 손방[서투름]이요 등산은 시험할 기회가 많지 못하고 보니 저변의 소식을 전할 수 없으나 조선의 여름에서는 의상의 미美, 일본에서는 발의 미를 발견할 따름이다.
-7월 14일 장마든지 닷샛날 (『동광』, 1927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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