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사는 것 어떻게 보면 극단의 이기주의자들 같다. 한푼에 치를 떨고, 내 몸이라면 털끝만치라도 건드리지를 못하게 하며 가장 자기 자신을 위해서 충실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실은 너도 나도 그도, 모두 남의 장단에 춤을 추며 남을 위해 사는 가련한 존재라는 것을 나는 때때로 절실히 느끼게 된다.
어느날 나는 안국동 네거리에서 전차를 기다리다가 고함을 지르고 있는 한 청년을 보았다. 마음대로 내버려둔 머리는 어깨를 덮었고, 더구나 더운 날에 검정 바지에 솜이 삐져나오는 찢어진 저고리며, 얼굴마다 암쾡이를 그린 것을 보아서 그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광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저고리 앞자락에다가 자갯돌을 한아름 안았다. 그걸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던지며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다.
때마침 그 앞을 한 숙녀가 지나가니 그 광인은 눈을 무섭게 부릅뜨며 "너는 이 대포알을 받아라" 하며 가지고 있던 자갯돌을 그 여자를 향하여 던졌다. 그러더니 다시 "저게 내 누이야 저도 불쌍한 것이야" 하며 대소大笑하는 것이었다. 그 여자는 될 수 있는 대로 걸음을 빨리 걸었다. 나는 호기심에 그 여자를 한 번 다시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홍당무가 되었다. 그러자 전차가 와서 나는 얼른 그 자리를 떠나게 되었다. 과연 숙녀가 그 광인의 친누이인지 그를 누가 알 것이냐. 또 알 필요도 없다. 그러나 차에 오른 나는 미친 사람과 그 숙녀 두 사람을 대조해 보았다. 하나는 남의 눈치를 보며 사는 소위 정상의 인人, 또 하나는 아무 거리낌 없이 마음대로 사는 소위 광인이다.
결국 사람이란 남을 위해 사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떤 똑똑한 양반은 대노할지 모르겠으나 사실에 있어서 그는 남을 위해 살고 있다. 명예, 지위, 금전에 손발과 입이 얽매여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가만할 것이로되 하지를 못하며 해야만 할 일이로되 하지를 못함은 다 무엇 때문인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상할까봐서 시비를 두려워하는 가슴앓이 벙어리, 목내이木乃伊[미라]가 그 얼마나 많은가?
미친 사람을 보고 사람들은 자기들을 스스로 높이고 그를 조소한다. 그러나 성한 사람이 그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 미친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그 그누보다도 가장 행복인의 인이며, 자유의 인이며 거짓 없이 참되게 사는 사람일 것이다. 속에서 불덩이가 핑핑 돌아다니나 그것을 꿀꺽꿀꺽 삼킬지언정 진眞을 위해 그 불꽃을 한 번 마음대로 뻗쳐보지 못하고 영원한 가슴앓이 벙어리를 볼 때 자유의 인, 남의 눈가림을 안 하는 거짓 없는 광인을 나는 항상 다시 쳐다본다. (조선중앙일보, 1934.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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