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성촬영소는 일본에서 건너온 흥행사이자 경성연예관 주인인 와케지마 슈지로(分島周次郞)가 설립하였다. 경성촬영소는 영화제작 외에도 일종의 '영화아카데미'를 통해 영화인을 양성하기도 했다. '미몽'의 영화감독 양주남은 경성촬영소 소속의 이필우, 이명우 형제 감독에게 영화를 배웠다. 경성촬영소는 우리나라 최초의 발성영화(Talkie)인 '춘향전'을 제작하여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15세때 나운규와 주연한 '임자 없는 나룻배'(1932)로 데뷔한 문예봉은 18세에 '춘향전'의 춘향역을 맡아 최고의 여배우 반열에 올라섰다. 1938년에 고려영화협회에 흡수됨.
2. 설립당시에는 경성운동장 인근에 있었다가 1934년 12월 17일에 본정 3정목 49번지 경성연예관 부지에 터를 잡았다. '미몽'에는 스튜디오 촬영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데 이곳에 세트장을 만들어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춘향전'을 감독한 이명우의 글을 보면 당시 촬영소 스튜디오의 열악한 사정을 엿볼 수 있다.
스튜디오의 방음 설비가 되지 않아서 멍석 1600여매를 사다가 물을 축여 두겹으로 막아놓고 촬영을 하였으니 이것도 조선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얼마간 방음 장치를 하였으나 그 역시 바라크식 스튜디오에 다덱쓰를 입힌 데 불과하니 촬영을 조용한 밤을 타서 하는 수밖에 없고, 또 촬영 도중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자동차 소리, 새벽 두부 장수 소리에 촬영을 다시 하게 되는 등 그 고심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명우, ''춘향전'을 제작하며', 『조선영화』, 1936.10.)
3. 전작 '춘향전'이 남아 있지 않고 증언해 줄 인물이 생존해 있지 않지만 '춘향전'의 후속작인 ''미몽' 역시 '경성촬영소'의 스튜디오에서 많은 부분의 촬영이 이루어진 곳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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