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 장면에는 나오지 않지만 외박을 하고 들어온 애순[문예봉]은 선용[이금룡]에게 쫓겨나 밖에서 기다리던 창건[김인규/김한]과 함께 택시를 타고 한강으로 간다. 2019/07/06 - [영화와 경성] - [미몽 (6)] 파경의 과정 참조. 이들은 한강 '모처'에 숙박하게 되는데 이곳은 한강을 조망할 수 있으며, 다다미가 깔려 있는 휴양 겸 숙박시설임을 짐작할 수 있다.
2. 용양봉저정은 조선시대 임금 정조가 수원의 사도세자 묘소인 현릉원을 참배하러 갈 때 한강을 건너 잠시 쉬기 위한 행궁으로 유명하다. 선조 때 우의정을 지낸 이양원의 집으로 그 후손들이 살았으며, 정조 때 이양원의 후손 이승묵에게서 이 터를 사들여 개수하고 정조가 친히 용양봉저정이라 이름 짓고 행궁으로 사용한 유서깊은 곳이다. 구한말에 유길준이 이곳에 살았다고 하며 일본인에게 넘겨졌고 결국 지전장차량이 용양봉저정 일대를 인수하여 일종의 한강 리조트로 개발하게 된 것이다.
3. 일제강점기에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대표적인 휴양 겸 숙박시설은 1931년에 설립된 '용봉정'이다.
얼음을 채취해 빙과류를 제조.판매하는 조선천연수주식회사의 대표이자 경성부의회의원인 지전장차량池田長次郞이 노량진방면의 한강인도교와 가까운 곳에 있는 정자인 용양봉저정을 비롯해 일대 5,300평의 부지를 사들여 요리여관, 온천장 등의 시설로 개발하여 용양봉저정의 약자인 '용봉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4. 용양봉저정 건물 자체는 조선인 고경운이 운영하던 요릿집 태서관(경성부 공평정 소재)에 임대되어 태서관별장으로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동아일보 1936.4.2.). 대경성사진첩(1937)에 보면 '용봉정'의 사업내용 중 하나로 요리여관이 있는데 아마도 여기에 해당하는 듯하다.
5. 영화 '미몽'에 등장하는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숙박시설이 있는 장소가 요릿집으로 개조된 용양봉저정 건물인지는 확실치 않다. 영화를 보면 용양봉저정 앞쪽(지도상 북쪽)으로 한강에 더 밀착된 언덕 위치로 보이기도 한다.
6. 위의 두번째 사진을 자세히 보면 용양봉저정 옆(동쪽 방향)에는 비슷한 크기의 한옥 건물 한 채가 더 있다. 이 건물이 원래 존재하던 건물인지 새로 지어진 건물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요리여관으로서 용봉정저정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다.
7. 영화 '미몽'에서 등장한 휴양 및 숙박시설이 '용봉정' 또는 '태서관별장'으로 보이는 이유는 한강이 보이는 경성 교외에 '용봉정'(또는 태서관별장)외에 한강 위치의 휴양 및 숙박 시설로 알려진 것이 없다는 점이다. 노래와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태서관별장에 대해서는 김해송의 노래 '모던기생점고'와 이상李箱의 '봉별기'에서 각각 언급된다.
모던 기생점고 (김해송)
하이욥 아라아라욥
찌렁찌렁찌렁찌렁찌렁 인력거가 나간다
하이욥 아라아라욥
찌렁찌렁찌렁찌렁찌렁 기생아씨가 나간다
에헴 비켜라 안 비키면 다쳐 (헤이)
꽃 같은 기생아씨 관상 보아라
뾰죽뾰죽 오뚝이 기생
재수없는 병아리 기생
소다먹은 덴뿌라 기생
제 멋대로 쏟아진다 헤헤헤
명월관[돈의동]이냐 국일관[관수동]이냐 천양원 별장[정릉]이냐
음벽정[성북동]이냐 하이욥 아라아라욥
하이욥 아라아라욥
찌렁찌렁찌렁찌렁찌렁 인력거가 나간다
하이욥 아라아라욥
찌렁찌렁찌렁찌렁찌렁 기생아씨가 나간다
에헴 비켜라 안 비키면 다쳐 (헤이)
꽃 같은 기생아씨 관상 보아라
하야멀쑥 야사이 기생
열다섯자 다꾸앙 기생
동서남북 시가꾸 기생
제 멋대로 쏟아진다 헤헤헤
식도원[남대문로]이냐 조선관[서린동]이냐 태서관별장[노량진]이냐
송죽원[낙원동]이냐 하이욥 아라아라욥
하이욥 아라아라욥
찌렁찌렁찌렁찌렁찌렁 인력거가 나간다
하이욥 아라아라욥
찌렁찌렁찌렁찌렁찌렁 기생아씨가 나간다
에헴 비켜라 안 비키면 다쳐 (헤이)
꽃 같은 기생아씨 관상 보아라
꼬불꼬불 아리랑 기생
날아갈 듯 비행기 기생
하늘하늘 봄버들 기생
제 멋대로 쏟아진다 헤헤헤
남산장[장충동2가]이냐 백운장[청운동]이냐 가게츠花月별장[남산동2가]이냐
동명관[서린동]이냐 하이욥 아라아라욥
**
나는 정희 스커트를 잡아 젖혔다. 무엇인가 철석 떨어졌다. 편지나. 내가 집었다. 정희는 모른 체한다.
속달 - 'S와도 절연한 지 벌써 다섯 달이나 된다는 것은 선생님께서도 믿어주시는 바지요?' 하던 S에게서다.
'정희! 노하였소? 어젯밤[3월2일] 태서관별장의 일! 그것은 결코 내 본의는 아니었오. 나는 그 요구를 하려 정희를 그곳까지 데리고 갔던 것은 아니오. 내 불민을 용서하여 주기 바라오. 그러나 정희가 뜻밖에도 그렇게까지 다소곳한 태도를 보여주었다는 것으로 저윽히 자위를 삼겠오. 정희를 하루라도 바삐 나 혼자만의 것을 만들어 달라는 정희의 열렬한 말을 물론 나는 잊어버리지는 않겠소. 그러나 지금 형편으로는 '안해'라는 저 추물을 처치하기가 정희가 생각하는 바와 같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오. 오늘(三月三日) 오후 여덟 시 정각에 금화장金華莊 주택지 그때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겠소. 어제 일을 사과도 하고 싶고 달이 밝을 듯하니 송림을 거닙시다. 거닐면서 우리 두 사람만의 생활에 대한 설계도 의논하여 봅시다. 3월 3일 아침 S'
[3월3일 오전에] 내게 속달을 띄우고 나서 곧 뒤이어 받은 속달이다.
모든 것은 끝났다. 어젯밤에 정희는—
그 낯으로 오늘 정희는 내게 이상 선생님께 드리는 속달을 띄우고 그 낯으로 또 나를 만났다. 공포에 가까운 번신술이다. 이 황홀한 전율을 즐기기 위하여 정희는 무고無辜의 이상李箱을 징발했다. 나는 속고 또 속고 또 또 속고 또 또 또 속았다.
나는 물론 그 자리에 혼도하여 버렸다. 나는 죽었다. 나는 황천을 헤매었다. 명부冥府에는 달이 밝다. 나는 또다시 눈을 감았다. 태허太虛에 소리 있어 가로되, 너는 몇 살이뇨? 만 25세와 11개월이올시다. 요사夭死로구나. 아니올시다. 노사老死올시다.
눈을 다시 떴을 때에 거기 정희는 없다. 물론 여덟 시가 지난 뒤였다. 정희는 그리 갔다. 이리하여 나의 종생은 끝났으되 나의 종생기는 끝나지 않는다. 왜?
정희는 지금도 어느 빌딩 걸상 우에서 뜌로워스의 끈을 풀르는 중이요 지금도 어느 태서관 별장 방석을 베고 드로즈의 끈을 풀르는 중이요, 지금도 어느 송림 속 잔디 벗어 놓은 외투 위에서 드로즈의 끈을 성盛히 풀르는 중이니까다.
이것은 물론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재앙이다.
8. 도산 안창호(두번째 가운데)가 1936년경 노량진 용양봉저정에서 한강을 배경으로 주요한, 백인제 등 흥사단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 멀리 한강철교가 보인다.
9. 1918년경의 한강인도교와 노량진 수원지. 우측 나무들 사이로 용양봉저정이 보인다. 용양봉저정 옆에 나란히 한옥 건물이 보인다.
10. 용양봉저정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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