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용과 애순이 파경을 맞이하고 예순이 집을 나간 후 딸 정희[유선옥]는 방황하기 시작한다. 이웃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하며, 학교에서도 마찬가지.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는 운동장 한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는 정희. 담임교사 승옥[나웅]이 정희를 발견하고 사정에 대해 묻는다.
승옥: 너 누구하고 싸웠구나.
정희: 아니요.
승옥: 왜 그러니 응? 어디 말해봐라. 옳지 정희는 착하지. 어디 말해봐.
정희: (흐느끼며 한참을 망설이다) 어머니께서 나가셔서 안 돌아 오세요. 흑흑.
'정희의 학교'와 혜화보통학교 교사校舍의 현관 위쪽의 아치형 문양과 창문의 배열, 형태가 매우 비슷하다. 경성부 혜화정 12번지 혜화(공립)보통학교는 1927년에 개교하였으며, 1937년 당시 일본인 교장 외 교직원 수가 14명, 학생수 985명이었다 (『대경성사진첩』, 1937)
혜화보통학교가 영화 '미몽'의 '정희의 학교'가 맞다면 선용, 애순, 정희가 살던 집 역시 혜화동 부근이었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1930년대 중반의 혜화동은 이웃한 성북동, 돈암동 등과 함께 경성 동부의 교외 신흥주거지로 부상하고 있었다. 이태준의 '집이야기'라는 수필에 보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요즘 성북동과 혜화동에 짓느니 집이다. 작년 가을만 해도 보성고보에서부터 버스 종점까지 혜화보통학교 외에는 별로 집이 없었다. 김장 배추밭이 시퍼런 것을 보고 다녔는데 올 가을엔 양관洋館, 조선집들이 제멋대로 섞이어 거의 공지 없는 거리를 이루었다. 성북동도 지형이 고르기만한 데는 공터라고는 조금도 없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만 집을 나서도 안 볼래야 안 볼 수 없고 새로 짓는 집들이 자꾸 눈에 띄는 것이다. (이태준, '집 이야기', 『삼천리』, 1935.9)
현재에 혜화동에는 1930년대에 지어진 개량한옥들이 몇 곳 보존되어 있다. 김상협 가옥과 장면 가옥이 대표적인데 두 곳 모두 현재의 혜화초등학교 인근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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