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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씨의 정월대보름

category 친절한 구보씨 2019. 3. 15. 15:34

달맞이

 


금일은 정월대보름이다. 어제昨日 윳 놀고 남은 부름을 까먹으며 학우 수 명學友數名으로 더불어 달맞이하러 집을 나서기는 오후 일곱시 경이라. 흑연黑烟이 만천滿天한 시가市街를 지나 밭두렁 좁은길을 찬찬히 걸어 어둠침침한 산 길을 살피면서 그리높지 않은 산정에는 두어명의 노인이 한가히 팔짱을 낀 채 아무 말도 없이 서있을 뿐이다. 우리는 거기서 조금 떨어진 성城 문터진 곳에 가서 돌 위에 앉아 뜨기를 기다리며 이런말저런말 하는 동안에 둥글고 커다란 달이 동산東山에 얼굴을 내어놓았다. 나는 무엇이나 아는듯이 “참 그달 풍년豊年들일 달인걸”하면서 옆에 있는 김군을 돌아보았다.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박군이 복술자卜術者가 되었나”한다. 이 말을 들은 이군은 “물론이지. 박朴자에 나무목木자만 빼면 점칠 복卜자가 되니”하면서 김군을 따라 웃는다. 말 한마디 하였다가 동무에게 조롱을 받은  나는 무심히 하늘을 쳐다보니 작은달은 중천中天에 높이 있다. 쓸쓸한 바람이 우리들의 등을 치고 나아간다. 나는 깜깜한 山길로 터벅터벅 걸아가는 김군의 뒤를 따라 산을 내려갔다. 그와 동시에 이때까지 움직이지도 아니하고 움직이려도 하지않던 달이 갑자기 우리의 머리위로 쫒아온다. 중천에 뜬 채로-. <박태원, '달맞이'『東明』,1923.4.15.>


▶ "금년 정월 보름에는 부름과 같이 영양과자 불로초 카라멜도 잊지마시고 환영하십시요"


 

▲정월正月의 널뛰기 (출처: 조선총독부, 『조선의 풍속과 풍경 朝鮮の風俗及び風景』)



박단마, '대보름 달맞이' (이부풍 작사, 이면상 작곡, 1940.2. 빅터레코드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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