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나 되어 천변에는 행인이 드물다. 이따금 기생을 태운 인력거가 지나가고, 술 취한 이의 비틀걸음이 주위의 정적을 깨뜨릴 뿐, 이미 늦은 길거리에, 집집이 문들은 굳게 잠겨 있다. 다만, 광교 모퉁이, 종로은방 이층에, 수일전에 새로 생긴 동아구락부라는 다맛집과 마지막 손님을 보내고 난뒤, 점 안을 치우기에 바쁜 이발소와 그때를 만난 평화카페가 잠자지 않고 있을 뿐으로, 더욱이 한약국집 함석 반지는 외등 하나 달지 않은 처마밑에 우중충하고 또 언짢게 쓸쓸하다. (박태원, 『천변풍경』, 1936)
▲ 광교 위에서 바라본 삼각동 천변풍경 (해방 이후)
창 바깥 천변길을 오전에는 무장수 배추장수 오후에는 전화 교환수 그리고 밤에는 기생 아씨를 태운 인력거가 끊임없이 오고 갔다. 그 속에 [방이 북향이어서] 햇빛 잘 안 들어오는 이 칸 방 - 소설책이라 시집이라 잡지라악보라 화투짝이라 담배합이라 성냥통이라.... 머릿살 아프게 어수선한 책상 앞에 앉아 나는 소설 하나 쓰기 위하여 끙끙대고 있었던 것이다.
[...]
그 동안에 태운 담배로 하여 방 안에 연기가 숨막히도록이나 가득하였으므로 나는 일어나서 창문을 열어 젖혔다. 싸늘한 바람이 밤을 새워 가며 창 열어 주기만 고대하고 있었던 듯이나 불어 들어왔다. 바깥에는 '꿈을 차차로이 깨어 가는 우리의 서울'이 오전 여섯시 이십 분 전에 하품하고 있다. 나는 이윽하니 창 밖 청계천 빨래터에 새파란 손을 찬물에 담그고 아주 무표정한 얼굴로 빨래를 하고 있는 오십 넘은 아낙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박태원, '적멸', 동아일보, 1930.2.15~3.1.)
▲ 청계천 빨래터 (일제강점기)
대수롭지 않은 병으로 말미암아 2, 3일간 자리에 누운 몸이 되었다. 들창 밖으로 들리는 단조로운 빨래터의 소음을 귀애하며 천정을 쳐다보고 생각나는 바를 그대로 적어 놓은 것이 이 글이다. (박태원, '병상잡설', 『조선문단』, 19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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