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 - 청춘무성 (3)] 은심의 진고개 나들이
은심은 오늘부터 방학이라 느직이 조반을 먹고 진고개로 나섰다. 눈이 아직 녹지 않은 것이 좋았다. 은심은 꽃집 앞을 지나다 발을 멈춘다. 얼음쪽 같은 유리창 안에는 희고 붉은 '카네이션'과 새파란 '아스파라거스'가 무데기무데기 어울어졌다. 발에서 꺾듯이 급하게 들어가 서너송이를 골라 샀다. 그 길로 찻집에 들어가 진한 '커피'를 한 잔 마시었다. 입에서는 '커피' 향기, 품에서는 '카네이션'의 향기, 은심은 더욱 '서양'이 문명'이 즐거워진다. 그 길로 '마루젠'[환선서점] 이층으로 왔다. 서양 잡지들이 꽃집처럼 색채 현란하게 꽂혀 있다. 은심은 이책 저책 뽑아보기 시작했다. 4·6배판보다도 더 큰 호화스러운 표지들, 매끄러우면서도 부드러운 고급 '아트'지의 감촉, 채색 잉크들은 새로 끓인 쵸콜렛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