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보씨 집 앞 천변풍경
자정이나 되어 천변에는 행인이 드물다. 이따금 기생을 태운 인력거가 지나가고, 술 취한 이의 비틀걸음이 주위의 정적을 깨뜨릴 뿐, 이미 늦은 길거리에, 집집이 문들은 굳게 잠겨 있다. 다만, 광교 모퉁이, 종로은방 이층에, 수일전에 새로 생긴 동아구락부라는 다맛집과 마지막 손님을 보내고 난뒤, 점 안을 치우기에 바쁜 이발소와 그때를 만난 평화카페가 잠자지 않고 있을 뿐으로, 더욱이 한약국집 함석 반지는 외등 하나 달지 않은 처마밑에 우중충하고 또 언짢게 쓸쓸하다. (박태원, 『천변풍경』, 1936) 창 바깥 천변길을 오전에는 무장수 배추장수 오후에는 전화 교환수 그리고 밤에는 기생 아씨를 태운 인력거가 끊임없이 오고 갔다. 그 속에 [방이 북향이어서] 햇빛 잘 안 들어오는 이 칸 방 - 소설책이라 시집이..